우정화 교무
우정화 교무

[원불교신문=우정화 교무] 여름 피서 다녀오셨나요? 피서는 더위를 피하여 시원한 곳으로 가는 여행입니다. 무더위를 피해 산, 바다, 계곡 등 자연 바람을 찾는 분들도 있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즐기며 백화점, 영화관, 서점 등을 방문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도 더위를 피할 겸 서점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지만 가끔 서점에 가면 우연히 만나게 되는 책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행이라고 말합니다. 여행처럼 예상하지 못했던 것과의 만남이 때로는 삶에 환희심을 주기 때문입니다. 마침 교보문고에 원불교 코너가 생겼으니 시간을 내 꼭 가보시길 추천합니다.

이번 서점여행에서는 나이와 관련된 책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마다 그 나이의 고민거리를 책 제목으로 정한 듯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저도 제 나이에 읽어야 한다는 책을 한 권 펼쳤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읽어가는 중에 공자님 말씀을 만났습니다. (子曰: 人無遠慮, 必有近憂.(공자왈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가까이에 근심이 있다.’))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가까이에 근심이 있다’니,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데 어떻게 멀리 내다보는 삶을 꿈꿀 수 있단 말인가요? 멀리 본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코앞만 보지 말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대산종사께서는 “하루살이는 어제도 없고 내일도 없고 오늘 하루뿐이다. 요즘 어떤 사람들은 내생이 없다고 하는데 그 사람은 하루살이다. 우리가 진리적으로 볼 때 어제가 있기에 오늘이 있고, 오늘이 있기에 내일이 있다. 내일을 생각해서, 내년을 생각해서, 내생을 생각해서 깊이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영생이 있음을 아는 우리는 멀리 보며 살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현실은 눈앞의 이익에 마음이 흔들리고, 서로 이해하지 못하여 생기는 오해들, ‘나’라는 것에 사로잡혀 욕심에 불타는 집에 있으면서도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삽니다.

코앞만 보며 사는 우리에게 대산종사께서는 “우리는 항상 심사(深思)로서 원려(遠慮)를 불러일으켜 만반의 대비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심사(深思)는 깊이 생각하는 것이고, 원려(遠慮)는 먼 앞일을 미리 헤아린다는 뜻으로 멀리 내다본다는 것을 말합니다. 심사(深思)로서 원려(遠慮)를 불러 일으킨다 했으니, 깊이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멀리 내다 볼 수 있는 방법인 것입니다. 이번 서점여행에서 만난 단어는 원려(遠慮)입니다. 여름 내내 시원한 피서가 될 듯싶습니다.

그럼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무엇을 깊이 생각한다는 말입니까? 현재 성황리에 전시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입구에는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터널같이 어두운 복도를 지나면 만나게 되는 사유의 방은 삼국시대 6세기 후반과 7세기 전반에 제작된 우리나라의 국보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두 점이 나란히 전시된 상설공간입니다. 뛰어난 주조기술을 바탕으로 간결하면서도 생동감 넘치고,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근엄한 반가사유상의 모습은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한 깊은 고뇌와 깨달음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 속에 저도 반가사유상을 마주해 보았습니다. 반가사유상을 바라보며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생각을 떠올려 봅니다. ‘왜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할까? 오늘은 뭐 먹을까? 저 사람은 왜 저럴까? 난 왜 이것밖에 안될까?’ 수많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갑니다. 사유의 방에 관람을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 반가사유상은 말없이 미소지으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

‘무슨 생각을 저렇게 하고 계실까? 얼마나 깊은 생각이기에 6세기 후반에 제작된 불상 앞에서 우리는 그의 깊은 생각을 궁금해하고, 그의 깊은 생각에 공감하고 있는 것일까?’

부처님 사유의 시작을 수하관경에서 찾는다고 합니다. 수하관경은 잠부나무 아래에서 싯다르타 태자가 첫 선정에 빠진 사건을 말합니다. 성 밖으로 나갔다가 인간의 생로병사를 목도하고 이에 대하여 고민하지요. 그리고 깊은 생각에 잠깁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도 병에 걸리고 병을 피할 수 없는데도 남이 병에 걸린 것을 보면 싫어하면서 자기 일을 돌이켜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도 언젠가는 병에 걸릴 것이고, 병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므로 남의 앓는 것을 보고 싫어하지 않는다. 나 자신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이 깊은 사유의 시작이고 중요한 성찰의 순간이라고 합니다. ‘나 자신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우리의 마음을 웅장하게 하고, 뭉클하게 합니다. 나 자신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남을 싫어하지 않고, 자신을 돌이켜 본다는 이 깊은 생각을 우리는 반가사유상을 통해 만나고 있고, 생각 또한 깊어지고 있습니다. 불생불멸과 인과보응의 진리에 대한 통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생을 멀리 볼 수 있는 깊은 생각이란 영생이 있음을 알아 그 진리를 믿고 생활 속에서 하나하나 깨치며 실천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심사(深思)를 해야 합니다. 옅은 생각, 단촉한 생각으로는 대사, 큰일을 그르치기 쉽다고 했습니다. 또 대산종사께서는 “사람의 선악 간 모든 행동은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 한 생각이 선하면 그 행동 또한 선해져서 한없는 복덕이 쌓이고 그 한 생각이 악하면 그 행동 또한 악해져서 한없는 죄벌이 쌓이는 것”이라며, 그러므로 행동으로 나타내기에 앞서 반드시 그 생각을 깊고 넓고 밝게 함으로써 먼 뒷날까지 헤아릴 수 있어야 영생의 대업에 지장이 없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행동에 앞서 반드시 생각을 깊고 넓고 밝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생각이 깊다는 것은 경계에 끌리지 아니하여 두렷하고 고요한 정신을 늘 챙기고 있다는 것이고, 생각이 넓다는 것은 나만을 위한 욕심에서 벗어나 시방일가를 모두 나와 한 몸임을 아는 것이며, 생각이 밝다는 것은 불생불멸과 인과보응의 이치를 확실히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심사(深思)를 통한 원려(遠慮)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번 생만 생각하는 우리의 얕은 생각, 단촉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하며, 현실의 내 생각으로 사는 것의 한계를 인식해야 합니다. 대산종사께서 “우리는 시방세계에 빈틈없이 얽혀졌고 또 장차 맺어질 모든 인연과 깊이 상생, 상극의 업연을 초월하여 좋은 인연들로 모든 일을 원만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하셨듯, 인연과의 진리를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곧 법인절이 다가옵니다. 구인선진님들이 매일 산을 오르며 했을 깊은 생각을 헤아려봅니다. 몸이 죽어 없어지더라도 우리의 정법이 세상에 드러나서 모든 창생이 도덕의 구원을 받는다면 조금도 여한 없이 죽을 수 있는 그 깊은 생각을 감히 헤아려봅니다. 
거룩한 백지혈인의 법인성사로 교단의 미래를 멀리 내다본 그 깊은 생각에 우리의 서원을 합합니다. 

/원불교 서울교구사무국

[2022년 8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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