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도영 교무
류도영 교무

[원불교신문=류도영 교무] 번개교당에 부임하고 매년 식목일이면 교당에 나무를 심는다. 교당 앞 잔디밭은 넓지만,여름철 뜨거운 햇볕은 가려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당을 지나는 사람들이 봄에는 꽃을 즐기고 가을에는 열매를 따먹을 수 있는 쉼터가 되길 바라며 나무를 심는다. 작은 나무가 자라 그늘을 드리우고 과실을 맺는다는 게 한두 해에 이루어질 리는 없지만, 훗날을 기약하는 것이다.

식재는 호두나무, 체리나무, 자두나무, 앵두나무 등 여러 종류의 과실 나무와 화초들이다. 적당한 터를 잡고 구덩이를 파서 어린 묘목을 심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생명을 이식하는 일이기에 정성 어린 마음이 절로 생긴다. ‘나무들아 이곳에 뿌리를 잘 내리거라’, ‘내가 없더라도 이곳에서 꽃과 그늘이 되고 열매를 나누어라’라고 중얼거리며 한 그루 한 그루 기도하는 심정으로 나무를 심는다.

식재를 했던 첫해에는 작은 나무들이 온 힘을 다해 여린 잎을 틔우고 가녀린 가지를 한 마디씩 뻗어내는 모습이 무척 신기하고 애처롭기까지 했다. 그렇게 새로운 땅에 적응해서 뜨거운 땡볕을 견디고 매서운 겨울바람을 이겨내더니,이제는 꽃을 피우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둘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무릎 높이만큼 자란 호두나무에 달린 호두를 볼 때마다 저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무럭무럭 커가는 열매들을 보며 소소영령한 인과의 이치를 실감하고 있다.

얼마 전 신병들을 대상으로 종교소개 교육을 했다. 태어나서 처음 접한 원불교는 용사들에겐 그야말로 신비하고 궁금함, 그 자체다. “원불교는 대체 뭘 믿나요?”, “원불교는 불교와 뭐가 다르죠?”, “원불교는 신이 있나요?” 등의 질문들이 쏟아졌다. 질문에 답을 하면,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각자 나름대로 교리를 흡수하고 원불교를 이미지화한다. 이제 막 심은 묘목이 새로운 곳을 탐색하며 뿌리를 내리는 것처럼 저마다 마음속에 원불교를 심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17사단 번개교당에 부임하고 어려운 군 교화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아쉬움과 희망이 교차한다. 교당 앞 군인관사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저 아이들이 교당에 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을 가지고 용기를 내 다가갔다. “새로 온 원불교 교무님이야”라고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홈런볼·뿌셔뿌셔 등 간식을 챙겨준 인연을 시작으로 지금은 군인 자녀 아이들이 어린이 법회를 보러 교당에 온다. 아이들이 교당에 오면 좋겠다는 바람이 이제는 현실이 되어 교당이 어린이들의 놀이터이자 마음공부방이 되었다.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심어놓은 씨앗은 어김없이 싹을 틔우고 자라고 있다. 어린이들의 교육은 뭐든지 빠를수록 좋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 형성된 습관과 배움이 평생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러 조기교육 이상으로 중요한 게 마음공부를 일찍 시작하는 것이다. 기본 인성이 틀 잡히는 유아·청소년기에 마음공부를 하고 원불교에 친숙해지면 성장 과정에서 혹여 교당을 떠나 있더라도 다시 원불교를 찾게 되는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마치 바다로 나간 연어가 태어난 고향으로 회귀하듯 과거에 믿고 따르던 종교로 돌아오는 것이다.

뜨거운 태양이 만물을 자라게 하는 이때, 교당에 나무를 심듯 만나는 사람마다 원불교와의 인연이 깊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오늘도 마음공부에 정성을 다하고 있다.

/번개교당

[2022년 8월 8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