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판의 추태가 꼴불견이다.

여당이나 야당을 막론하고 ‘국민’을 들먹이며 서로를 비난하기에 바쁘다. 하지만 그 지향점이 ‘권력’에 있음을 누구나 안다. 합리적인 정치나 상생의 정치보다는 ‘갈등의 정치’를 조장하며 분열로 그 이득을 취하려는 모습에 국민들은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며 분노하고 있다. 인간의 역사가 늘 갈등을 발판으로 발전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나라 정치상황은 여와 야, 여와 여, 남과 여, 세대 간 끊임없이 갈등을 부채질하며 편 가르기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국가관마저 흔들고 있어 우려스럽다. 

대체로 정치가 갈등을 매개로 하여 자란다면, 종교는 화합을 자양분 삼아 나아간다. 그러기에 종교가 지향하는 은혜나 자비나 사랑은 ‘나를 넘어선 너’를 우선하고 배려하는 것을 지향점으로 삼는다. 곧 화합의 종교는 늘 조화와 배려를 우선하기에 위안을 준다. 하지만 갈등은 반목과 배척으로 ‘오직 나’만을, ‘권력’만을 지향하기에 그 끝이 늘 비참하고 나락이다.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 중 그 말로가 온전한 사람이 몇이나 있었나를 돌아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숲을 보자. 일생을 가만히 바람에 흔들리며 제 자리를 지키고 선 나무들이지만 이들에게도 원칙이 있다. 가지를 뻗되 옆의 나무와 겹치지 않은 상태로 자기의 자리를 확보하여 공간을 배려하고 있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만약 나무들이 이를 무시하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해 갈등한다면 이는 불씨가 되어 숲을 온통 태워버리는 커다란 불행을 가져올 수 있다. 갈등의 숲에서 살아남을 나무는 없다.

흔히 원불교를 화합의 종교라고 한다. 배려하고 감사하면서 상생을 지향하기에 원불교의 땅에서는 모든 종교가 평화를 얻는다. 비록 그 규모는 작으나 4대 종교에 원불교가 위치할 수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헌신적이고 드러내지 않는 원불교인들의 모습이 종교화합을 이끌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원불교에도 사회현상과 맞물려 ‘갈등’을 조장하며 그것을 밑천으로 삼으려는 사람이 없는지 주의가 요청된다. 우리나라 정치의 광풍이 교단에도 그대로 반영된다면 이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화합과 나눔이라는 종교의 큰 본질보다는, 모든 것을 권력구조로 개념화해 갈등과 분열을 조장한다면 종교위기 시대에 더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오랜기간 교세확장의 정체현상은 교단구성원들의 피로감과 열등감이 불만으로 쌓이면서 이런 갈등에 노출되기쉬워졌다. 자칫 종교마저 이 갈등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다면 교단의 미래는 희망을 찾기가 힘들어진다. 

따라서 교단 구성원 각자나 지도부는 이런 현상에 각별히 주의하며, 모두가 함께 위기를 극복해내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교단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2022년 8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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