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요?”
“아이고 고향사람도 못알아봐요?”
“고향 어딘디?”
“고창이요 고창.”
“아이고 고창사람이고만. 반가워라.”
“우리 고향사람끼리 산책할까요?”
고창사람이 되어 어르신과 중정을 도는 박종현 사회복지팀장(정토회교당). 이 어르신에게 어제의 그는 직원이었고, 그제는 친구였다. 또 내일은 누구로 만날지 모를 일, 치매어르신들이 대부분인 원광실버의집의 일상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는 정성심
“치매는 보통 최근의 기억부터 잃으니, 옛 일은 또렷하죠. 최대한 많은 정보를 꼼꼼히 외우고 있어요. 문득 낯설어하실 때 친근하게 다가가려고요.”

귀엽고 서글서글한 인상이라 다들 신입인 줄 안다는 박 팀장. 허나 올해로 10년 된 어엿한 중견복지사다. 나름 ‘천의 얼굴’이다 보니 수십 명 어르신에게 수백의 인물로 변신한다. 인천 태생이지만, 익산, 전주 등 도내 어르신들이 많은 덕에 전라북도 사투리도 장착했다. 노인은 수명이 길어 80~90대 이르는데 그는 이제 30대 중반. ‘어머니 아버지’가 아닌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는 손자의 정성심으로 어르신들을 만난다.
요양원 및 어르신 복지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젊은 남자. 그가 원광실버의집으로 오게 된 것은 마치 기다렸던 듯 풀린 인연이다. 원광대학교 법대생이었던 그는 주변에서 ‘너는 사회복지가 어울린다’는 말에 고민했다. 그러다 김세연 교무의 명상수업을 듣게됐고, 이로부터 인생이 바뀌었다. 

“교무님께서, 원하는 사람은 한시간 일찍 와서 명상하자고 하셨어요. 1학기 내내 했고요, 그 다음 학기 수업도 찾아 들었습니다. 많이 졸기도 했고 싫기도 했는데 교무님이 잘 다독여주셨어요.”

인연은 위기에 빛을 발했다. 한 달 실습을 해야 했는데 갈 데가 없어 발을 동동 굴렀다. 급하게 김 교무에게 연락했더니 효도마을에 연결됐다. 수양의집에서 실습하며 그는 생각했다. ‘음, 역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군. 나는 어르신들과 있어야 해!’

대다수의 젊은 복지사는 어린이나 학생들이 있는 시설을 원한다. 노인시설은 소위 ‘기가 빨린다’는 이유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어르신들을 원했고, 매일 기운을 한아름 받아 퇴근했다. 실습 기간 동안 그는 얼마나 큰 주인이었던지, 학기 중 스카웃 연락이 왔다. 자리가 사람을 알아본 셈이다. 

“기말고사 마치고 다음날 첫 출근했어요. 김 교무님이 취업선물로 교도증을 주셨고, 김도호 원장님이 정토회교당 청년회에 연결해주셨어요.”

어르신들만 만나다 보니 교당 청년들이 너무 반가웠고, 박진도 교무의 교리공부도 재밌었다. 몹시 기다려 법회에 가곤 했더니 친구들이 ‘어디가냐’고 묻기도 했다. 그렇게 교당으로 이끈 친구만도 4명, 지금은 그보다 더 잘 다녀 긴장 중이다. 
 

대학 때 실습 후 스카웃, 원광효도마을 10년차
공부하는 재미, 모시는 재미, 예쁨받는 재미
요양원은 남은 생 품위있고 안전하게 누리는 곳

어르신 본인이 가장 힘들고 위험한 상황
힘들 때 수없이 되뇌이는 일상수행의 요법 1조. 인터뷰하는 날 아침에도 그는 1조를 수없이 암송했다. 그에게 ‘어어~ 오셨어?’라고 인사해주던 어르신이 이날 떠났다. 어르신들 곁에 10년을 있었건만 열반 소식에는 늘 서툰 법. 백 개의 인연에 백 개의 이별, 어떤 헤어짐도 늘 초면이다. 그때마다 그는 ‘마음은 원래 요란함이 없건마는’을 눈물처럼 삼켜왔다. ‘가시기 전에 한 번만 더 뵐걸’ 하는 간절함이 맞잡은 두 손에서 배어나온다.

그의 이 간절함에 속 깊은 이야기가 더해진다. 입소상담을 하다 보면, 위험한 상황의 치매어르신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 기저귀를 채워놓고 자식들이 출근하면, 퇴근할 때까지 그대로라 흔히 짓무르거나 욕창이 생기곤 한다. 

“요양원은 남은 생을 행복하고 안전하게 누리는 곳이에요. 흔히 요양원을 ‘죽으러 간다’고 생각해 대소변을 못가릴 때가 돼서야 오세요. 어르신 본인이 가장 힘들고 위험한 상황인데 가족의 죄책감 때문에 고민하실 때 참 안타까워요.”

2시간 동안 이어진 입소상담. 그렇게 어렵게 결정한 뒤, 입소한 부모의 편안한 표정을 보고 가족들은 ‘실버의집에 모시기 잘했다’고들 말한다. 
 

내 부모님이 훗날 살고 싶은 요양원
“실버의집은 위급상황이 발생하면 인근에 효도마을병원, 원광대학교병원이 있어 신속히 대처할 수 있고요, 교무님, 정토님, 교도직원들이 마음도 잘 챙겨드립니다. 중정이 있고 천장이 높아 쾌적한 데다, 배회할 때 벽을 마주하지 않도록 곡선으로 설계했어요.”
많은 자랑 중에서도 으뜸은 원불교 중앙총부의 이웃이라는 것. 남은 생을 교단과 가까이 살며 기운 받고 싶은 교도들이 멀리서도 찾아오는 이유다. 직원들 역시 부모은(恩)과 공도자숭배 정신으로 모시니, 여러 요양원을 알아본 가족들도 실버의집에 정착하곤 한다.

노인 비율에 따라 치매 등 노인성질환도 늘어나는 시대, 그는 “내 부모님이 훗날 살고 싶다고 먼저 말할 수 있는 곳”을 표준삼아 매일을 산다. 법대에 갔던 아들이 요양원에서 일한다니 걱정을 했다는 그의 부모님. 몇 년 전 부모님이 “우리는 나이들어 요양원에서 맛있는 밥 먹고 재미있는 프로그램 하면서 살거야”라고 했을 때의 감동도 늘 되새긴다. 아내 김은성 교도(정화수도원 근무)에게 몇 번이고 했던 자랑 멘트도 덧붙이는 그.

“제가 좀 힘들어 보였나 봐요. 한 어르신이 저를 붙잡고 ‘내 방에서 좀 쉬다 가~ 아무도 안 보니까 누워서 눈 좀 붙여~’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를 기억하진 못하셔도 아껴주는 그 마음이 느껴졌죠. 다들 이렇게 예뻐해 주시니 제가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2022년 8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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