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초입이다. 추석 문턱이다. 달이 둥글게 떴다. 그리움도 익어가는 계절이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환한 달이 떠오르고/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간절한 이 그리움들을/사무쳐 오는 이 연정들을/달빛에 실어/당신께 보냅니다//세상에,/강변에 달빛이 곱다고/전화를 다 주시다니요/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문득 들려옵니다.’(김용택 시인)

세상이 험난하다고 마음까지 험난해질 필요는 없다. 아니, 마음이 험난하니 세상이 험난하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가을하늘을 올려다본다는 건 내 마음거울을 비추는 일이다. 잊고 살았던 추억들이 책장처럼 들추어지고, 스쳐지나간 수많은 얼굴들이 잘 익은 곡식처럼 고개를 숙이고 다가온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 보물이 있지만 ‘그리움’만큼 아름다운 보물은 없다. 형체도 없는 그리움이 우리 마음에 차오르면 설렘은 아름다운 보석처럼 빛을 밝힌다. 누군가 보고 싶다는 것은 사람 사이의 가장 큰 위안이기도 하다. 이건 수직과 수평의 관계를 벗어난, 기찻길처럼 늘 함께 가는 평행선이기에 더 짙어지는 그리움이다. 가족이 그렇고, 연인이, 친구가, 낯선 누군가도 그렇다. 

그리움에도 색깔이 있다. 어릴 적 대상이 그려지지 않은 누군가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 하얀색 도화지라면, 철이 든 어느 시절의 그 연인은 달콤한 보랏빛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자칫 그리움이 너무 타올라 뜨거워지면 빨간색 불꽃이 되어 위험해지고, 태풍이 한번 훑고 지나간 자리를 조용히 지키고 선 나무색 같은 그리움이라면 늘 든든하지만, 혹 무심히 떠나보내고 뒤늦게 한숨짓는 막막한 검은 그리움은 애잔하다. 이리저리 싱숭생숭 알 수 없는 길 잃은 회색빛 그리움이 있는가 하면, 차분하게 존경의 뜻을 가득 담은 짙은 감색 그리움이 있고, 오직 자식 걱정에 내 한 몸 살피지 않는 어머니 같은 파란 그리움이 물결치기도 한다.

“우리 교무님도 저 달을 보면서 나를 떠올리실까요. 보름달이 휘영청 떠오르는 날이면 마당에 서서 두 손 모아요.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우리 교무님 모든 일이 원만히 잘 이루어지게요.” 교당이 먼 시골 외딴 마을에서 살았던 어느 할머니의 그리운 기도가 가끔 귓가를 울린다. 그리웠기에 아름다운 기도소리였다. 

“너희들이 잘 있으면 나는 잘 있는 것이다. 내 걱정 말고 너희들이나 행복하게 살아라. 그래야 내가 안심하고 살지.” 전화를 걸 때마다 똑같은 소리지만, 하루 이틀 전화가 울리지 않으면 이내 걱정에 그리움을 가득 묻힌 전화는 자비의 바다처럼 평온하다. 간절한, 사무쳐오는, 그리움이 있어 세상은 정으로 익어간다.  

다시, 추석이다. 가을이다. 그리움을 담아내기 좋은 계절이다. 어디 전화라도….

[2022년 9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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