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전, 호주에서의 원불교 역사 첫걸음 딛은 주인공
현지 초등학생에게 전하는 ‘한국의 새 부처님 소태산’

호주선문화원 장인명 교무
호주선문화원 장인명 교무

[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딱 1년, 휴식과 어학연수를 겸해 가볍게 다녀오려던 호주였다. 그러나 호주는 당시 원불교 교당이나 기관이 하나도 없는, 완전 무연고지. 그러니 허락이 쉬울 리 없었다. 결국 대산종사가 머무는 왕궁에 찾아가 직접 설명도 하고, 다짐도 했다. “종법사님. 호주에서 1년만 어학연수하고, 돌아와서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일주일 내내 대산종사는 손만 꼭 잡아주었다.

그러다 왕궁에서 나오기 전날 저녁, 대산종사가 말했다. “가거라, 가서 3년만 고생하면 될 것이다.” 올해로 33년째, 장인명 교무(호주선문화원·고스포드교당)와 호주의 깊은 인연은 그로부터 비롯됐다. 

 
인연에 인연이 더해지고
돌아보면 기다리고 있었던 듯, 모든 게 수월했다. 애초 해외교화 서원이 있어 내딛으려던 걸음이 아니었음에도 대산종사의 한마디가 왜인지 가슴 깊이 새겨졌고, 항산 김인철 종사는 “전국을 뒤져 찾은 ‘시드니 인연’”이라며 다섯 개의 주소를 출국 직전인 그의 손에 쥐여줬다. “이 인연들을 만나서 법인 창립을 해라” 하는 말과 함께. 홀가분히 다녀오려던 호주행에, 두 어른의 말씀이 동승했다. 원기74년(1989) 11월이었다.

도착한 다음 날부터 전화를 돌렸다. “한국에서 온 장인명 교무입니다. 이렇게 주소와 연락처를 받아 연락드립니다. 원불교 법인 창립을 하려는데, 어떨까요.” 누구도 ‘안 된다’ 하지 않았다. “교무님, 오신 김에 법인 창립을 하시죠.”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들의 말은 미리 짠 듯, 똑같았다.

다음 해(원기75년) 2월, ‘시드니 인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곳에서 법인 창립이 결정됐고, 서로의 집에서 돌아가며 법회를 보기로 했다. 그때의 인연을 통해 그레이엄 라이얼 호주불교협회장을 만났다.‘한국의 원부디즘’을 알고 있던 라이얼 협회장은 원불교 법인 창립에 필요한 법규 준비 등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종교 법인 설립 조건 중 하나인 영주권자 숫자(50명)도 인연에 인연이 더해지며 해결됐다. 연고가 전혀 없던 곳에서 ‘인연’을 통해 이뤄진 이 일들을, 장 교무는 ‘스승님의 위력’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으로 보낸 편지 네 통
그는 현지에서 일이 진행될 때마다, 한국으로 편지를 네 통씩 써 보냈다. 편지의 도착지는 종법사, 교정원장, 항산종사, 국제부장 앞. 상서를 올리면 당시 법무실장이었던 장산 황직평 종사가 하서를 보내주었는데, 언젠가는 ‘대산종법사께서 어느 교도가 올린 거액의 시봉금을 호주의 교당 창립 기금으로 묻어놓으라 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덧붙는 말도 있었다. ‘종법사께서 이렇게 원력을 세우고 밀어주시고 격려해주고 계신다. 무연고지 개척 교무 1호로서, 열심히 해서 호주 원불교 창립의 선구자가 돼라.’ 장 교무는 “늘 스승의 지도를 받고 살았던 게 나의 힘이자, 교화현장에서 큰 문제 없이 살 수 있는 근간이 됐다”고 했다. 

그렇게 원기75년(1990) 11월에 원불교 최초의 호주 법인 허가가 이뤄졌다. 원기77년(1992) 8월 9일 이뤄진 시드니교당 봉불식은 장 교무가 호주에 발을 디딘 지 꼭 3년 만이었다. 그는 ‘성자의 말씀은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구나’를 그대로 실감했다.
 

한국의 새 부처님 소태산
어느 날 정복을 입고 있는 그에게 한 교포가 물었다. “북조선에서 왔어요, 남조선에서 왔어요?” 이는 한국 종교인 원불교를 교민 사회에 알려야겠다는 발상의 계기가 됐다. 이때부터 국악 공연, 한국화 전시회, 영어학교, 바자회 등을 통해 ‘작지만 큰 원불교의 힘’을 보여줬다. 한 행사가 끝나기 무섭게 “교무님, 우리 다음에는 또 뭐해요?”를 묻는 교도들이 있어 가능했다.

하지만 교민 교화는 한계가 있었다. 임시 비자로 들어온 이들은 정착할만하면 한국으로 돌아갔다. 현지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화로 확장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섰다. 그러던 중 현재의 호주선문화원 건물을 만났다. 호주선문화원은 현재 고스포드교당을 겸하며, 리트릿(휴식 명상), 선방, 문화 체험 등을 통해 현지인들을 만나고 있다.

장 교무는 요즘 고스포드 초등학교 불교 수업에서 ‘한국의 새 부처님 소태산’을 전하며 ‘이 아이들 가운데 출가 인연이 나오기를, 이 아이들이 성장해 원불교를 찾는 날이 있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희망한다. 그 꿈을 꿔가는 데 있어 호주에 첫발을 내딛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그의 가족들과 한국의 재가출가 교도들은 감사함 그 자체다. 

앞으로도 호주에 살 계획인지 물었다. “이곳에 처음 온 내가 할 수 있는 역량만큼의 역할을 (후진들을 위해) 더 해주고 싶어요.” 

[2022년 9월 26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