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돌아보면, 오래된 서원 하나가 있었다. ‘언젠가 기회가 오면 원불교다운 건축물, 원불교의 표준 건축물을 지어보고 싶다.’ 그런데 몇십 년 후 정말로 그 기회가 주어졌다. 여러 차례 고사하다 결국 맡게 된 일에 감선진(본명 진성) 원남교당 건축위원장(이하 위원장)은 5년여간 그야말로, 전심전력했다.

“사대문 안에, 고건축과 현대건축이 조화를 이루면서도 원불교에 걸맞는 교당이 될 거예요.” 감 위원장은 10월 30일 봉불식을 앞둔 원남교당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곡선미를 살린 현대건축과 한옥이 함께 어우러진 데 대한 자부심도 가득 묻어있었다.
 

꼼꼼한 사전 기획과 설계
원기103년(2018) 3월에 건축위원장을 맡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유럽, 캐나다 등 세계적 종교건물 답사였다. ‘교당은 종교건축물로서, 확고한 철학과 방향이 담겨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나선 길이었다. 그렇게 12주 동안 살핀 것들을 교당 설계에 세밀히 반영했다. 그의 모든 초점은 ‘종교건축물로서의 교당’에 있었다.

감 위원장은 삼성그룹 임원으로 퇴직한 후 해인사 고불암 건축 책임자를 5년간 했던 바 있다. 당시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건축에 손대지 않겠다’ 했지만, 결국 오래전 서원 하나가 그로 하여금 이 일을 맡게 했다. 

그는 “건축은 빠른 판단력과 추진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기로 했다면 하루라도 빨리 하는 게 시간도 비용도 모두 아끼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부지 추가 매입을 시작한 것부터 계산하면 원남교당 신축 공사에는 총 4년 7개월이 소요됐다. 그중 2개월은 사대문 안 궁궐지로서 문화재 발굴조사에 반드시 써야 했던 시간이라, 실제 계획한 공사 기간은 거의 초과되지 않았다.

그의 꼼꼼한 사전 기획력은 곳곳에서 빛을 발했다. 설계를 100% 완료한 후, 즉 벽에 쓰일 못 하나까지 모두 결정한 후 시공에 들어간 것도 그중 하나다. 그렇게 해야 추가 비용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이는 주효했다.
 

‘원불교 건축’에 대한 오랜 서원 실현 기회
전심전력으로 공덕주·교무·교도 마음 하나되게
실력있는 설계사와 시공사도 주인 역할 함께해

win-win, 상생 전략
빠른 판단력과 추진력의 기저에 그가 놓치지 않으려던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소통’이다. 

감 위원장은 원남교당 신축 불사에 큰 염원을 가졌던 공덕주(故 신타원 김혜성 종사) 가족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것은 물론, 세대 간 갈등 요소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조화롭게 담아내고자 노력했고, 건축주(원남교당 재가출가 교도)와 업체 간 의견 조율에도 힘을 쏟았다. 특히 설계사와 시공사가 가진 실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데 갖은 지혜를 발휘했다.

생각해보면 원남교당 신축 기간의 절반 이상은 코로나19 상황이었다. 그런데 새 교당은 노출콘크리트 시공에 실내 기둥이 없고 층고도 12미터나 되는 터라, 철근과 콘크리트가 대량 소비돼야 했다. 철근값만 해도 톤당 65만원 하던 것이 140만원으로 껑충 뛰었고, 콘크리트, 유리, 인건비 등도 평균 40%가량 인상됐다.

어느 날 시공사 대표가 찾아와 “지금 계약된 금액으로는 도저히 어렵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예산은 한정되어 있었다. 함께 사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최종적으로 감 위원장과 시공사는 서로 조금씩 양보해 25% 인상에 합의했다. 윈윈 전략이었다. 그 자리에서 그의 지혜는 또 발휘됐다. 시공사에게 상승분 비용을 바로 지급해 신뢰와 협력,  합심을 얻은 것이다. 그렇게 했어도 총 예산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건축은 순간의 판단이 중요할 때가 많은데, 이에 대해 감 위원장은 “사리연구를 아무리 해도 작업취사가 안 되면 실패하기 십상”이라고 표현했다.
 

‘사람’을 담았다
올해 들어 원남교당은 전 교도가 매일 일원상 서원문을 7독 이상 하고 있다. 형상 있는 일원상만 모시지 말고, 각자의 마음에 참 일원을 모시자는 의미다. 이미 그는 위원장을 맡은 날부터 매일 참회문 20독, 일원상 서원문 50독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제는 일원상 서원문을 하루에 100독 넘게 한다. 오직 ‘이 건축이 잘 이뤄지도록’ 하는 마음이다.
그러한 정성에 여러 기적 같은 순간이 따라왔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설계사와 시공사를 만난 것도 그중 하나다. 원남교당 건축을 담당한 설계사(메스스터디스(주))와 시공사(다산건설엔지니어링)는 지난해 한국건축대상에서 큰상을 받았을 정도로 실력 있는 업체다. 감 위원장은 “이들이 ‘종교건축물로서의 교당’을 만드는 데 마음을 기꺼이 합해주고 주인처럼 일해준 덕분에 오늘의 건축물이 탄생했다”고 말했다.

공덕주의 가족·교무·교도의 혼연일체 된 지원 역시 큰 힘이었다. 사실 위원장으로서 얼마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지, 그는 몸무게가 11㎏이나 감소했고, 당뇨 수치는 450까지 올랐다(정상 수치 100~150). 이는 그만한 정성을 쏟았다는 증거이기도 한 셈. 그 정성이 구성원들에게 감동으로 전해지지 않을 리 없었다. 공덕주 가족들은 그의 치료를 적극 지원했고, 여기에 식이조절과 운동 등 그의 노력이 붙어 4개월 만에 수치를 정상 회복했다. 병원에서는 “기적”이라 했다.

그는 이 수많은 기적의 원인을 ‘사람의 조화’라고 설명했다. “서로 도와주고 거짓말 보태지 않고 솔직하게 다 들어주면 (일이) 돼요. 사람이 하는 것이니까, 될 수밖에 없어요.” 여러 사람의 조화로운 마음이 담긴 원남교당이 곧 사대문 안에 곧게 선다.

[2022년 10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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