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국내 1호 평화학 박사 정주진. 박사학위 취득 당시, 한국에는 ‘평화학’이라는 학문이 없었다. 지금도 국내 평화학 박사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정도. 캐나다(워털루대학교)에서 평화갈등학 디플로마(졸업), 미국(이스턴메너나이트대학교)에서 갈등전환 석사, 영국(브래드포드대학교)에서 평화학 박사를 취득한 그는, 평화학을 전공한 것은 ‘사고 같은 일이다’고 말하며 웃는다. 그가 최근 <평화학>을 펴냈다. ‘평화학은 무엇인가’를 첫 질문으로 저자와의 대화가 시작됐다. 
 

평화학, 좀 생소하게 느껴지는 학문입니다.
“평화학은 평화 자체에 대한 연구와 주장을 (학문적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평화학 안에서 평화의 필요와 정당성을 논의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어떤 평화를, 어떻게 만들고 정착시킬 것인가, 평화학 연구를 기반으로 어떻게 사회변화에 기여할 것인가가 평화학의 핵심 명제입니다.” 그는 ‘평화학은 이론과 실행이 같이 가는 학문’이라며 평화학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평화를, 정확히는 평화의 실현방법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가 평화학이네요.
“평화의 실현방법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평화로운 공존에 도전이 되는 갈등, 그러니까 국가 사이 무력 충돌부터 개인 사이 갈등까지를 다룰 수밖에 없어요. 때문에 ‘평화학’을 ‘평화갈등학’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물론 평화학이라 불러도 그 안에는 갈등과 갈등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연구가 포함되어 있고요.” 

‘평화’는 사회적 언어라고 그는 설명한다. 평화의 반대개념은 ‘폭력’으로, 평화 실현의 과정에서 반드시 다뤄야 하는 것이 폭력과 갈등의 관계다.
 

“전략적 평화구축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모든 층위와 영역, 그리고 개인과 집단이 
가능한 평화적 방식을 모색하고 합의하는 것” 

결국 평화학은 사회 전반에 존재하는 폭력과 갈등의 문제에 닿아있군요.
“갈등과 폭력의 문제를 분석하되 평화적 공존을 염두에 두지 않거나, 문제해결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이 없다면, 현상이나 문제의 분석으로만 그칠 뿐입니다. 평화적 공존과 변화에 기여할 수 없다면 평화연구로 보기 힘들죠.”

“또 하나 평화는 평화적 방식을 통해 성취되어야 한다는 것이 평화학의 대전제이자 거부할 수 없는 원칙입니다. 문제해결 과정에서 폭력을 줄이고, 어떤 환경과 조건에서든 평화를 추구하며, 관계의 개선과 회복을 통해 모두의 안전과 평화로운 삶을 보장해야 합니다. 이런 평화적 방식에 대한 이해와 동의가 없다면 평화연구로 볼 수 없습니다.”
 

평화연구의 원칙에 공감하면서도, 특히 극단적인 대규모 형태의 폭력이 동반되는 국가 간 전쟁에 평화연구가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전쟁은 반드시 인명 손실과 사회적 파괴를 낳는다는 점에서 이것은 구조적 폭력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전쟁에 대한 결정권을 한 사람의 권력자 또는 소수에게 부여한 데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를 직시해야 합니다. 전쟁 개시와 종식의 결정 권한을 분산하고, 무력 대응의 조건과 방식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세밀하게 규정하며, 국민의 참여를 합법적이고 체계적으로 보장할 방법을 찾아야 전쟁 가능성을 줄이고, 나아가 제거할 수 있습니다.”

“평화학자나 평화시민이 개입해서 전쟁을 해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전쟁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으니까요. 특히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참여와 공동 성찰을 독려하고 보장하는 새로운 구조, 문화, 사회적 환경이 필요합니다. 평화연구는 이런 구조와 문화의 문제를 다루지 않고는 전쟁 없는 평화가 가능하지 않음을 성찰하고 구체적 방식의 계획과 적용을 시도합니다.”
 

사회 내에서 발생하는 개인과 집단 사이의 갈등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갈등은 개인 및 집단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갈등이 발생하는 이유는 개인과 집단, 사회가 현재보다 나은 삶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갈등 해결의 궁극적인 목표는, 갈등에 직면한 개인, 집단, 사회의 안전하고 편안한 공존의 삶을 만드는 것입니다. 평화연구는 불가피하게 생기는 갈등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변화와 나은 미래를 위한 하나의 계기로 이해합니다.”
 

사회갈등은 변화를 위한 중요한 기회가 되는군요. 
“갈등은 평화실현을 위해 거칠 수밖에 없는 단계로 여겨집니다. 갈등이 다양한 개인과 집단의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해 상호 이해를 향상시키고, 공동 대안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갈등 해결 과정에서는 특정 개인 및 집단 사이의 대립과 충돌을 개인 또는 집단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고, 근본적 원인인 폭력적 상황에 주목하는 사회적 대응과 성찰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평화를 이야기할 때 중요한 것은 ‘참여’일까요. 평화를 실현하는 방법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전략적 평화구축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모든 층위와 영역, 그리고 개인과 집단이 가능한 평화적 방식을 모색하고 그에 합의하는 것입니다. 한국사회에는 다양한 평화의 이해가 존재합니다. 그것이 이론적이고 보편적인 정의에 합당한지에 상관없이 그렇게 다른 이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대화와 합의는 참여를 통한 사회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의사 결정 방식입니다. 폭력의 중단, 피해의 규명, 정의의 실현 등을 위한 원칙적 접근으로, 절대 간과되지 않아야 합니다.”
 

‘평화학은 평화를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다’는 책 머리말이 마음에 남습니다. 끝으로 개인적인 바람을 전하신다면.
“평화학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이론과 실천을 동등하게 강조하고 커리큘럼에 포함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평화학이 연구의 궁극적 목표를 실천, 다시 말해 현실 적용에서 찾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개인적 바람은 이 책이 평화학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각자의 위치에서 평화적 공존의 사회실현을 위해 구체적인 실행방식을 고민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2022년 10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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