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상현 교무
라상현 교무

[원불교신문=라상현 교무] 요즘 다니는 미용실의 미용사는 손님들과 대화를 잘한다. 마치 십년지기 친구와 수다를 떠는 듯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동네 이야기,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주제로 이야기할 수 있는 미용사가 정말 신기하다.

어느 날 미용사가 나에게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었다. 내가 “원불교 교무”라고 답하자 깜짝 놀라며 “사람이 달라 보인다”고 한다. ‘나’는 그대로 ‘나’인데 ‘교무’라는 말에 어떻게 전과 후가 달라졌을까? 미용사는 새로운 정보를 얻고, 내게 성스러운 직분을 맡은 성직자의 이미지를 씌워 바라봤을 것이다.

나도 상대의 형식만 보고 ‘어떨 것이다. 그럴 것이다’ 하는 분별로 속단할 때가 있다. 나중에 “알고 보면 어떤 사람이다”는 말을 듣고, 그로 인해 상대방을 다르게 보게 된 적도 종종 있다. 내 눈을 사용할 때 관찰대상을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 지식과 믿음 등에 따라서 분별하는 것이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 아닐까. 누군가를 판단할 때 평판이나 소문으로 결정짓는 경우가 많다. 이 또한 사실이란 보장이 없는데도 말이다. 자신이 직접 얻은 정보와 관찰이라도 오류일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래서 “남에게 들은 말은 절대로 믿지 말고, 직접 본 것도 반만 믿어야 한다”는 격언이 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분별주착과 선입견 속에서 대상을 보고, 판단하고, 오류를 범하고 있을까? 이를 알아차리면 다행이지만, 그런 줄도 모르고 지나가는 경험은 또 얼마나 많을까?’ 〈정전〉 일원상 법어에서 ‘이 원상은 눈을 사용할 때에 쓰는 것이니 원만구족한 것이며 지공무사한 것이로다’고 가르친 소태산 대종사의 법문이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내 생각과 내 분별로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자. 경계마다 일마다 한시라도 한 번이라도 온전함 속에 대상을 보려고 하고, 텅 빈 허공 같은 마음으로 늘 분별하는 마음을  챙기자. 그 마음을 끊임없이 챙기는 것이 진짜 공부 아닐까.

/수원교당

[2022년 10월 17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