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흐름이 예사롭지 않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사람들의 입에 자주 쉽게 붙어 다니는 언어 중 하나가 ‘위기’다. 학자들이나 연구자들의 어지간한 담론 뒤에는 ‘위기’란 언어가 마치 약방의 감초처럼 붙는다. 이런 전조현상에 많은 사람들이 인류미래와 지구적 위기를 걱정하며 불안해한다. 

흔히 거론되는 세계적 경제거품은 퍼펙트 스톰으로 삶의 위기에 다가서고 있다. 또 지구 환경의 변화에 따른 기후위기 역시 미래 세대들의 삶을 황폐화시킬 요인이 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의한 세계적 핵전쟁 공포 역시 인류멸망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어 걱정이다.

국내적으로는 최근 한반도 전쟁 위기를 비롯 오랜 숙제인 인구감소 위기나, 지방소멸 위기, 세대 갈등 위기, 그리고 자산버블의 붕괴에 따른 금융 위기를 심각히 우려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일상 삶과 필히 연계성을 가지기에 조금이라도 안목을 가진 사람이라면 걱정을 보태지 않을 수 없다. 위기가 무서운 건 우리의 일상을 흔들기도 하지만 자칫 생명의 희생을 먹잇감으로 삼기에 더 염려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위기는 인간 스스로가 자초했음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위기의 가장 큰 용광로는 ‘인간의 이기심’이라 할 수 있다. 좀 더 나은 삶을 넘어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동족의 희생까지도 발판 삼는 욕심은 사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인류 재앙의 뇌관이다. 이걸 통제하지 않는 이상 인류는 언젠가 넘지 말아야 할 경계선을 기어이 넘을 수밖에 없는 필연성에 닿아있음을 우린 알고 있다.

또 하나는, 위기를 감지하면서도 아직 칼날에 묻은 꿀을 빨기 위해 혀를 날름거리는 안일에 기인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 일상의 위기는 항상 안일을 이불 삼는다. 이는, 순경이 밀려올 때 더 조심할 것을 당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구성원들 간의 갈등, 곧 불통은 대수롭지 않은 것을 덧나게 만들어 큰 상처로 키우는 빌미가 되기도 한다. 서로를 적대시함으로써 생기는 원망심의 발로는 어리석음으로 이어져 감당하기 힘든 대재앙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가에 이미 불어 닥친 종교위기 또한 심각히 염려되는 이유다. 지금 세상 위기가 어디에서 왔는지 살펴본다면 결국 인간의 마음에 기생함을 알 수 있다. 물욕에 경도된 현대인들이 부나방처럼 금권주의를 추앙하면서 세상위기는 마치 악마의 불처럼 타오르고, 이는 브레이크가 파열된 자동차가 내리막길을 달리는 것처럼 위험스럽다. 마음을 일깨우는 종교의 붕괴가 가져올 마음의 빈곤이 현대인들을 정신적 절망으로 몰아간다면 이보다 더 비극적인 것은 없다. 그러기에,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며 탄생한 원불교에는 지금이 위기이자 기회다.

[2022년 10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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