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종교인들은 원불교에 대체로 호의적이다. ‘꼭 원불교만’을 고집하지 않는 원불교의 포용성은 이웃 종교인들로부터 ‘원불교라서요’라는 말로 협조를 얻는다. 이는 ‘모든 종교의 교지를 통합 활용하여 광대하고 원만한 종교의 신자가 되라’는 소태산의 사상에 기인한 면이 크다. 

곧 이웃 종교인들에게 원불교는 ‘포용적이다’는 측면과 ‘열려 있다’는 의식이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또 원불교 사람의 이미지로 ‘착하다’거나 ‘희생적이다’거나 혹은 ‘화합을 잘한다’와 ‘겸손하다’는 표현도 중요한 덕목으로 따라붙는다. 원불교를 좀 안다는 이는 ‘청교도적이다’는 표현도 여기에 덧붙인다. 이 역시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강조한 개교의 동기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외부적 호평이 교단 내부로 들어오면 그 평가는 사뭇 달라진다. ‘독단적이다’거나 ‘권위적이다’거나 혹은 ‘적극성 부족’과 ‘무사 안일주의’를 지적하기도 한다. 또 ‘기회의 불균형’과 ‘제도주의 및 구태스러움’ 역시 돌아봐야 할 사항들이다. 이런 우려는 원불교의 새로움을 더 크게 바라는 아쉬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교단을 자세히 살펴보면 원불교에는 아직도 그 어느 종교 못지 않은 ‘상생정신’이 살아 있음을 보게 된다. 원불교인들의 이런 화합은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을 은혜롭게 섬기며 살아가는 감사의 마음이 그 원천이다.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관계를 알기에 나 외의 다른 이를 인정하고 서로 나누며 사는 것이다. 이것은 원불교의 가장 큰 자산이기도 하다.

이 정신이 살아 있기에 외부적으로는 상생이지만, 내부적으로는 대동화합과 일치단결을 통해 함께 한길을 걷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이러한 정신은 위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 원불교소태산기념관의 모태가 된 남한강사건의 위기를 기회로 넘길 수 있었고, 2008년 국제적 금융위기로 촉발된 교단경제 어려움도 모든 교당과 기관이 똘똘 뭉쳐 무난히 넘길 수 있었다. 이는 ‘나’ 대신 ‘우리’가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불교는 열악한 교세에 비해 훨씬 높은 평가를 받는다. 

또 하나, 원불교의 중요한 자산을 꼽자면 공의(公義)정신이라 할 수 있다. 백인백색은 인간 삶의 원형이다. 따라서 복잡다단한 생각을 끌어내 정리하고 그것을 다시 하나로 뭉쳐 질서를 이뤄내는 지혜가 대중공사라 할 수 있다. 그 과정은 치열해야 제맛이고 그 결과에는 누구나 수긍할 때 가치를 발한다. 결과에는 변명과 핑계가 있을 수 없고 방관과 불화는 용납의 사안이 아니다. 대중공사는 모두가 주인 되는 방정식이기 때문이다. 원불교에는 아직 이 정신이 맥맥히 살아 있기에 희망이 있다.

세상 위기와 교단 위기가 이중 파고로 다가오고 있다. 숙명적 ‘개벽형 인간’으로 참여한 우리이기에, 나로부터의 혁신으로 미래를 준비하자.

[2022년 10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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