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공동답사단으로 떠난 특별한 답사
‘생명 사상가’로 다시 읽는 전봉준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열망을 어떻게 이어갈까

[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근대한국개벽종교답사단(이하 답사단)의 6차 답사에는 특별한 손님들이 함께했다. 바로 2006년부터 ‘한일시민이 함께하는 동학농민군의 역사를 찾아가는 여행’을 이끌어 온 나카츠카 아키라 나라여대 명예교수와 그 일행들이다. 

2006년부터 한국을 찾아 ‘역사’와 ‘동학’의 흐름을 쫓아온 나카츠카 교수의 여행단은 지난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고 매년 이 행사를 진행해왔다. 10월 20일 아침, 한자리에 모인 한일 답사단은 동학농민들이 최초로 혁명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던 정읍시를 찾았다. 동학과 전봉준 장군, 그리고 이름 없이 스러져간 무명 농민군의 흔적에서 생명과 평화, 평등의 정신을 공유했다. 답사지는 동학혁명모의탑, 무명동학농민군 위령비, 전봉준 고택, 황토현 전적지(갑오동학혁명기념탑, 동학농민혁명 동상, 동학농민혁명기념관) 등.
 

최초의 혁명, 불씨를 틔운 땅
정읍시 고부면 신중리는 동학농민혁명 당시 고부군으로, 전라도 53개 군현 중 전주부 다음으로 큰 군이었다. 하지만 1910년 일제가 이곳을 ‘반란’을 일으킨 동네라며 3개로 구분해 고창군, 부안군, 정읍군의 일부로 나눠 현재의 고부면이 됐다.

이곳에서 동학농민군은 최초의 혁명을 모의하고, 사발통문을 작성해 회람하며 혁명의 불씨를 틔웠다. 이런 선조들의 위업을 잊지 않기 위해 1960년대 후손들과 유가족들이 힘을 모아 자체적으로 탑을 세웠다. 바로 ‘동학혁명 모의탑’이다. 여기엔 사발통문에 서명한 스무 명의 이름과 서명 후 어떻게 됐는지의 내용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인근에는 정읍시민들이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세운 전국 유일의 ‘무명동학농민군 위령탑’이 있다. 설치 후 새로 발견된 사료에 따라 위령탑에 ‘여성 농민군’의 비석을 추가로 설치하는 등 동학농민군의 후손들은 아직도 선조들의 얼을 기리고 있다.
 

무명동학농민군 위령탑에 새롭게 추가된 여성농민군비 앞에서 여성 답사단이 기념촬영을 했다.
무명동학농민군 위령탑에 새롭게 추가된 여성농민군비 앞에서 여성 답사단이 기념촬영을 했다.

‘유랑 지식인’이자 ‘생명 사상가’인 전봉준
답사단이 두 번째로 찾은 곳은 전봉준 고택이다. 실제 건물은 고부 농민봉기 실패 후 불타 없어졌고, 지금 건물은 1970년대에 복원해 유지 중이다. 

이곳에서 답사단은 전봉준은 ‘유랑 지식인’이라는 새로운 인식을 접했다. 이곳저곳 거처를 옮겼던 전봉준은 유학과 전통 의학에 밝았다. 그렇게 머무는 곳마다 ‘유의(儒醫·유학자 의사)’로서 고부에서 서당을 운영하며 후학 양성과 지역민에게 의료혜택을 제공했다. 전봉준의 이런 인간적인 면모들은 전봉준의 제자 박문규의 <석남역사>와 기쿠치 겐조의 <근대조선사>에 상세히 기록되어 전해졌다. 또 전봉준은 민중들의 어려움을 글로 적어 관청에 진정서를 작성해 진정 운동을 벌여 체포를 당하기도 했다. 결국 백성의 고통은 해결되지 못하고 1894년 2월 11일경 고부 말목장터에서 ‘고부농민봉기’가 일어나게 된다.

박 총장은 유랑 지식인의 특징으로 “사회문제에 대한 시점이 아래에서 위를 향하는 것과 신분과 지위, 성별과 관계없는 네트워킹 소통의 달인”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지금껏 저항가, 투쟁가로만 읽혔던 전봉준을 ‘생명 사상가’로 다시 읽어내자”고 제안했다.
 

황토현 전적지, 갑오동학혁명기념탑.
황토현 전적지, 갑오동학혁명기념탑.

‘지키는 자’의 위대한 승리와 그 흔적
황토현 전적지는 1894년 5월 11일 새벽 민초의 군대인 동학농민혁명군이 최초로 관군(전라감영군)에 승리를 거둔 곳이다. 이들의 싸움에는 ‘이유’가 있었다. 도저히 살 수 없도록 수탈해가는 관리에게 진정도 해보고 애도 써봤지만, 결과는 허탕이었다. 또 그런 그들을 잡으러 온 군대에 ‘삶을 지켜내기 위해’ 일어선 것이다. ‘지키기 위한 자’들의 정신력과 사기, 그리고 목표의식 앞에 봉건 왕국의 관군은 무너져 민중 의식 발전의 거름이 됐다. 답사단은 이 자리에서 함께 ‘새야새야 파랑새야’ 노래를 부르며 잊혀진 이들을 위로하고, 기억하기에 노력하자는 다짐을 나눴다.

황토현 전적지에서 내려오면 동학농민혁명 동상이 있다. 그동안 설치되었던 동상은 친일파 작가의 작품이어서 최근 철거 후 새롭게 동상을 조성했다. 새로 조성된 동학농민군 동상은 선두에 전봉준 장군과 그 뒤를 따르는 농민군으로 구성돼있다. 원동호 주무관(정읍시 동학농민혁명선양사업소)은 “이 동상들은 1차 봉기와 2차 봉기를 아울러 표현했고, 구성에 남성만 포함된 게 아니라 여성과 아이도 뒤쪽에 함께 세웠다. 또 동상들은 높이 보이는 위치에 두지 않고 직접 그 사이로 들어가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구조로 설치됐다”고 설명했다.

황토현 전적지와 동학농민혁명 동상,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은 그 부지를 아울러 동학농민혁명 기념공원으로 불린다. 공원 내에 2022년 5월 11일 새로 개관한 동학농민운동 추모관 전시관을 찾은 답사단은 추모관 벽에 새겨진 이름들을 바라보며 이들과 함께 이름조차 남지 않은 이들을 생각하며 추모의 꽃을 올렸다. 전시관에서는 우리 공동체를 더 좋은 공동체로 만들겠다는 조선 후기 민중의 ‘보국안민’, 관리와 백성이 함께 나아가는 ‘관민상화’ 정신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 중국, 일본에 남아있는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다양한 사료들은 그들의 정신과 열망을 우리에게 면면히 이어지게 한다. 함께, 더 나은 삶을 누리고자 새로운 세상을 꿈꾼 동학농민군의 정신은 파편화된 현대사회의 후인으로 하여금 어떻게 이어받아 살아야 할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2022년 10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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