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두 광부가 지하 190미터 갱도에 갇혔다.

칠흑 같은 막장은 탈출구가 없어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살아 돌아갈 확률을 계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 깊은 지하에 절망만이 차올랐다. 목숨을 부지할 길이 있을까?

갱도가 무너져 내려 사방이 막혀버린 이들의 10일 생존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다행히 기적은 있었다. 그 보잘 것 없던 비닐 조각이 버려져 있었고, 흩어진 젖은 나뭇조각과 산소 용접기, 어둠을 비추는 헤드랜턴이 이들의 심장박동을 듣고 있었다. 믹스커피 30봉지는 이들의 유일한 식량이 되었다. 커피포트는 덤이다. 흔한 이것들이 이들의 생명을 살릴 줄 누가 알았을까. 

이들은 비닐로 지하수가 떨어지는 갱도에 텐트를 치고 젖은 장작에 불을 피워 체온을 유지했다. 물을 끓여 커피로 끼니를 때우며 무한정 어둠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문득 헤드랜턴의 마지막 불빛이 끊어지는 순간, 이들의 희망도 잠시 꺼졌다. 다행히 이들은 둘이었기에 서로를 의지하고 격려하며 그 긴 시간을 지켰을 것이다. 너와 내가 함께였기에 희망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지하의 10일은 그렇게 흔한 것들이 희망으로 뭉쳐 생명의 불꽃이 되었다.

밖에서의 시간도 간절했다. 

모든 것이 무너져 폐쇄된 지하를 뚫는 일은 막막하기만 했다. 잘못된 설계도로 인해 헛된 시간이 소모되었다.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바빠졌을 것이다. 그럴수록 간절함은 더해진다. 다시, 다른 갱도로 구출통로를 파기 시작했다. 또다시 갱도를 막은 낙석과 암석으로 인해 시간이 지연되고, 작업 중 천장이 무너져 위험천만한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얼마나 애가 탔을까. 

하지만 한시도 쉴 수 없었다. 두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믿음,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밤낮 없는 24시간의 시간이 일각의 지침도 없이 10여 일 간 반복되었다. 포기하지 않는 그 마음, 그것이 희망이 되었다. 한순간, 뻥하고 구멍이 뚫리면서 희망과 간절함은 생명의 환한 불꽃이 되었다. “형님~~.” 누군가 나를 불러 준다는 건 참 아름다운 일이다.

만약, 두 광부가 어둠에 갇혀 희망을 포기했다면 얼마나 허망했을까. 또, 밖에서 갱도길이 험난하다 하여 주저했으면 얼마나 절망했을까. 희망은 혼자서 꾸는 꿈이 아니다. 희망은 일방적으로 닿을 수 있는 길은 더더욱 아니다. 희망은 너와 내가, 그리고 우리가 ‘함께 포기하지 않을 때’ 가치를 더한다. 

요즘, 우리 교단뿐만 아니라 종교계를 비롯 사회 전체가 암울해 하고 있다. 다시 또 ‘남탓’이 기승을 부리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자칫, 원망은 절망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기에 그렇다. 지금은, 우리가 ‘우리’로, 중앙총부와 지방현장, 재가와 출가, 지도부와 일반 대중, 나와 내가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그래야 난항의 길에서도 희망이 솟는다.

[2022년 11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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