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교당에 한 가족 13명, 우리네 가장 보통의 가족

[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이것은 아주 보통의 가족 이야기다. 누구는 아프고, 누구는 사고를 치고, 또 누군가는 실패한다. 이는 개인의 일이기도 하지만, 때로 가족 모두의 문제가 된다. 흔히는 부끄러워 숨기고, 싸우고 원망하며, 서로를 모른 척도 한다. 당신에게는 가족이 안전하고 따뜻한 낙원인가. 누구나 자신만의 지옥 하나를 안고 산다. 여주교당 박성원·윤보현 부부(본명 박정배 ㈜세종D&L 대표·윤성희) 가족 역시, 가족 안에 아픈 손가락이 있다.

또한 이것은 아주 특별한 가족 얘기다. 사돈에 팔촌까지 뒤져도 원불교와 인연 없던 부부가 입교를 한 뒤, 부모 형제는 물론 사돈끼리도 교당에 나온다. 그렇게 입교한 가족이 4대에 걸쳐 13명, 토요일이면 법회의 꼭 절반을 채운다. 모든 가족모임과 경조사가 교당에서 열리니, 교당 일은 곧 이 가족의 일이다. 그리고 따로 또 같이 사업실패, 이혼, 알코올중독, 치매, 암투병, 혼전임신, 대인기피증 등을 넘어 일원가정을 이뤄가고 있다.
 

“우리는 일원상으로부터 여주에 발령받았다”
조선의 왕비 7명을 배출한 왕후의 고장이자 신륵사, 대순진리회 등 큰 종교터가 모여있는 신성한 땅 여주. 이곳에서 “우리는 일원상으로부터 여주에 발령받았다”고 말하는 이 가족의 시작은 안주인 윤보현 교도였다. 지인이 준 책 <원불교에 대한 이해>를 남편 박성원 교도에게 주니 무릎을 치며 읽는 게 아닌가. 자타공인 ‘행동보살’ 윤 교도는 멈추지 않았다. 그 길로 여주교당으로 달려가 <원불교 교전>까지 받아왔다. 남편은 돌아본다. 

“사실 친구 중에 목사도 있고 신부도 있지만 종교 얘기 한번 한 적 없거든요. 교전을 출퇴근하며 한두 장씩 읽는데, 그 희열이 정말 어마어마했어요.”

그 길로 여주교당에서 입교한 부부. 가보니 어르신 서너명에 어렵게 교당을 꾸려가는 가운데 정우진 교도회장이 있었다. 박 교도는 정 회장과 금세 쿵짝이 맞아 낮밤으로 법담을 나눴다. 이 열기가 소문나 이항진 전 여주시장(법명 도원) 등도 합세, 40~50대의 젊은 남자 교도들이 주인으로 훌쩍 컸다.
 

가족의 경계 함께 넘어서며 
은생어해 찾는 공부

가족, 너무나 잘 알기에 진심이어야
“인상 깊었던 법문이 있었어요. ‘저 바위에 금이 들었으니 부수라 한들 안 듣는다. 내가 먼저 캐내야 된다’는 말씀이죠. 가족교화에 앞서 먼저 금을 캐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다 캐기도 전에 어느새 모여들더군요.”

딸들, 사위, 손자(박현민·박지윤·김상현·김강희)를 시작으로, 부모님(박선문·권수진행), 형제들과 그 가족(박성원·이선우·박세연·윤도준), 그리고 식당 아르바이트생이다 수양아들이 된 중국인 여일기까지 13명이 교도가 됐다. 이 부부가 한 일은 딱 두 가지였다. 자신 스스로가 진심일 것. 그리고 힘들어하는 가족에게 “그럼 교무님을 한번 만나보면 어때?”라고 말한 것. 

“가족교화가 그래요. 서로 너무나 잘 알기에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어렵죠. 그리고 제가 그랬듯, 힘들고 막막할 때 무심히 툭 던졌어요. 다만 때가 안됐다 싶으면 재빨리 뒷걸음질쳤죠. 요즘 말로 밀당이랄까요.”

교당 문턱으로, 교전 첫 장으로 모셔오기만 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됐다. 사업실패나 이혼 같은 상황적 경계는 물론, 치매나 알코올 중독, 공황 장애와 같은 정신적 경계에 더 도움이 됐다. 형이 변하고, 자식이 변하며, 누구보다도 내 부모가 변했으니 그 믿음에 티끌도 없었다. 

“가족 중 문제가 있으면 그걸 내 입장에서 화내고 윽박지르거든요. 사실 ‘너 때문에 내가 힘들다, 부끄럽다’는 마음이더라고요. 마음공부로는 그게 보여요. 그 뒤론 그것이 의지 문제가 아니라 병인 줄도 알고, 본인은 얼마나 힘들까부터 생각합니다. 이럴 때 믿음과 지지를 전하면 그게 큰 힘이 돼요. 역경을 순경으로 만드는 은생어해죠.”
 

“형, 나 입교할까?” “나도 원불교 이름 받고 싶어”
허나 이치를 알아도 아픈 건 아픈 거였다. 최근 동생 박성덕 교도(본명 승배) 일도 그랬다. “나 암이래” 뒤에 “형, 나 입교할까?” 할 때만 해도 큰일 아니려니 했다. 허나 치료 중 세균 감염으로 패혈증이 발병, 지금은 치료도 중단하고 하루 두 번 진통제만 맞고 있다. 형은 30년 넘은 습관이자 마지막 경계이던 담배를 끊었다. 

“기도해야 하는데 모자라요. 뭘 더 해야 하는 데 걸리는 게 담배 하나 뿐이었어요. 제가 뭐가 어렵겠습니까, 지난 3~4개월 힘든 고비를 동생이 잘 버티고 있는데요.”

가족들의 문제는 현재진행형이지만 새록새록 깨치는 화두가 된다. 지난주에는 공황 장애, 이번 주는 치매, 또 다음 주는 무슨 경계가 올지 모르는 삶. 허나 “정법이기에 내 가족이 함께 좋아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믿음이 있다.

돌아보면 재미있는 장면들도 있었다. 한원회와 서울교구 대학생 연합회 임원도 맡았던 첫째 딸 현민이에게는 이런 장면이 남아있다. 

“어느 날은 이랬어요. 먼저 할머니 성당 모셔다드리고, 동생 교회에 내려주고 엄마, 아빠, 저, 외삼촌은 교당으로 왔죠. 그러다 동생이 슬쩍 말하더라고요 “나도 원불교 이름 하나 받고 싶어”라고요. 무엇보다도 아빠엄마의 기도하는 모습, 말 하나도 다르게 하는 변화, 교법에 감탄하는 감동의 순간들이 가족들에게 ‘금’이 된거죠.”

입교 이듬해, 당시 운영하던 한식집 마당에 컨테이너 박스를 심고 일원상을 모셨다. 100일 참회기도로 시작한 가족의 기도는 이 회상과 지역, 나라와 인류 등 주제가 하나씩 늘었고 이제는 2,600일에 다다른다. 3년 전 사무실을 옮길 때도 법당부터 모셔왔다. 부부가 주로 기도하고, 나머지 가족들은 틈틈이 와서 고락을 기댄다. 

신앙수행에 장소가 따로 없고, 도반에 가족이 따로 없는 하나된 삶. 매주 교법 어린 꽃자리에서 가족을 만나는 은혜. 13명은 둥글게 손을 잡고 오늘의 경계를 함께 넘는다. 누구보다도 아프고 누구보다도 행복한 우리네 보통의 가족, 이것은 이들의 특별한 이야기다.
 

[2022년 11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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