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성’과 ‘온라인’으로 마음공부 대중화 연구
“‘각자도생’의 시대, ‘일인일기’ 필요해”
‘안 해야지 했던 행동을 계속하는 나’ 발견하고 출가 서원

보산 최경도 원로교무
보산 최경도 원로교무

[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1999년 밀레니엄이 다가오던 때, 세상은 디지털을 외치기 시작했다. 그때 다큐멘터리와 광고에서 영감을 얻었다. 현각스님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서구사회에 명상바람이 분다는 것과 할머니들이 ‘디지털? 돼지털!’을 외치는 광고를 보며 ‘앞으로는 영상과 디지털 시대가 오겠다’는 생각에 바로 캠코더를 구매했다.

그렇게 당하는 곳마다 영상을 찍으며 교단 역사를 기록하는 숨은 사관 역할을 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보산 최경도 원로교무(補山 崔敬道·72). 그는 방 안에서 세계를 보는 요즘 시대에 맞게 익산시 삼기면에서 심계원(心啓園)을 운영하며 온라인 세계를 종횡무진한다. 
 

모두가 ‘감독’ 될 수 있는 세상
최 원로교무는 그렇게 기록해온 영상자료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예전에 송관은 교무님 제자들이 기념 음악회를 할 때 찍어뒀는데, 거기에 음악과 육성이 다 남아있어요. 나중에 송천은 교무님이 보고 많이 좋아하셨죠”라며 “모두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지금은 이런 영상자료를 누구나 만들어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어디 그뿐인가. 그는 KBS가 2022년 5월에 진행한 ‘5.18 이야기 프로젝트’에 5.18과 광주교당을 엮어낸 짧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영상자료에 대해 “나중에 기록물관리실에 기증해 더 널리 활용됐으면 한다”는 기대를 갖는다.
 

마음밭 계발하는 곳, 심계원
현재 그가 운영하는 심계원은 원광대학교에 근무했던 선배교무들에게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퇴임 후 연구소를 개소하는 선배들을 보며 갖고 있던 땅에 황토집을 지었다. 퇴임 전 근무지였던 문화교당에서 마음공부대학을 운영했던 경험을 살려 이곳에서의 활동도 ‘마음공부를 주제로 하자’고 결정했다. 그렇게 이름 붙여진 것이 ‘심계원(心啓園)’이다. 심전계발원(心田啓發園)을 줄인 말이다.

이곳에서 그는 다시 한번 시대를 살폈다. 대중이 좋아하는 TV나 유튜브 프로그램들이 ‘수다 떠는 프로그램’임을 읽어낸 후 심계원에서 마음공부를 가지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팟빵(온라인 라디오 애플리케이션)과 유튜브로 방송된 그의 프로그램은 최고 시청자가 1천 명을 넘기도 했다. 그러나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패널들은 점점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데 어려워했고, 때마침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운영에도 차질이 생겼다. 이에 최 원로교무는 ‘익명성’과 ‘온라인’에 주목해, 보이는 라디오에서 메타버스로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아바타를 통해 마음공부 이야기를 나누고,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활용한 문답방을 열어 익명성을 지키며 개인의 마음공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마음공부’로
최 원로교무가 생각하는 마음공부는 무엇일까. 그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마음공부’라고 말했다. “세상에 수많은 마음공부가 있지만, 종합적이지 않거나 체계적인 부분이 모자라요. 하지만 소태산 대종사님의 마음공부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데다가 단계적이죠”라며 “마음공부는 결국 <정전>과 <대종경> 수행편을 가이드 삼아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마음공부에 있어 강조하는 것은 ‘상시일기’다. 일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마음을 챙겼나 챙기지 못했나를 아는 것부터가 마음공부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또 ‘원불교 마음공부’에 대해서는 “교단적으로 합일된 의견이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장님이 코끼리를 설명하듯 개개인별로 마음공부를 다르게 인식하고 있어요. 종합적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공부인 스스로 어느 등급에 있고, 진급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야 공부하는 교단 풍토를 조성할 수 있죠.”
 

‘마음’을 만나 전무출신 길에 나서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시절 어머니를 따라 원불교를 만났다. 그렇게 학생회까지 다니던 중 <대종경> 요훈품 16장 법문을 듣게 됐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마음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이란 법문이 뇌리에 새겨졌다. 그 순간 ‘안 해야지 했던 행동을 계속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게 마음을 제대로 쓰는 일에 대해 관심을 두고 출가의 길을 걷게 된 최 원로교무. 그 관심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중이다.

출가 후에는 포항원광보은원, 순창다문화가족지원센터, 명상치유생명의 숲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했다. 이에 대해 그는 “모든 일은 인연들 덕분에 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포항교당에 부임했을 때 전임이 폐원한 유치원 자리에 “이제 어린이에서 노인으로 스위치 할 때”라는 말로 교도들을 설득해 노인요양원을 개원했다. 이후 노인 다음은 무엇인지를 찾았다.

그리고 ‘다문화가정’을 발견해 순창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운영을 맡았다. 그는 “학생 때 숭산 박길진 총장께서 법회를 봐주신 적이 있어요. 그때 숭산님께서 ‘여기 한 송이 꽃이 피어있다. 최선을 다해 피어있다. 최선을 다해 피어있다…’고 했는데, 그 말이 잊히지 않아요. 덕분에 평소에 ‘난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나?’를 늘 생각했죠”라며 담담히 지난 세월을 회고했다.
 

‘각자도생’의 시대, ‘일인일기’ 필요
최 원로교무는 기자에게 “젊은 교무들 사는 것이 걱정이다”고 인사했었다. 시대 변화가 빠르고 종교에 관심이 없어지는 지금을, 그는 교법적으로 맞진 않지만 ‘각자도생’의 시대가 됐다고 본다. 이어 대산종사의 ‘일인일기’를 언급하며 “앞으로 누구나 직업을 갖고 전무출신을 하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요”라고 되물었다. 

그가 말하는 ‘직업을 가진 전무출신’은 전무출신으로서 직업을 갖는 것이 아니라, 직업이 있으면서 전무출신을 하는 시대에 대한 전망이다.

“앞으로의 원불교는 출석 교도 수, 입교 수가 어떻다는 개념이 아니라 재가출가를 떠나 단장으로서, 단원으로서 공부와 교화를 열심히 하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해요. 그게 소태산 대종사께서 <대종경> 서품 18장에 말한 ‘미래세상’ 아닐까요.”

[2022년 11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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