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원 교도
이준원 교도

[원불교신문=이준원 교도] 인류의 역사는 지속적 진화의 과정이다. 진화에는 ‘은생어은의 순수적 진화’와 ‘은생어해의 역수적 진화’가 있다. 동남풍에 새싹이 돋고 꽃이 핀다. 북서풍에는 뿌리가 더욱 강해지며 봄을 준비한다. 코로나19는 인류지성을 각성시키는 매서운 북서풍이다. 2002년 사스,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2015년 메르스에 이어서 왔다. 

코로나19는 대면적 사회 활동과 세계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편으로는 잊고 지낸 자아의 존재를 재발견하고, 비대면 디지털 세계의 진화가 촉진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홀로서기를 학습하고,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는 디지털 산업의 발달을 촉진시켰다. 코로나19는 악마의 얼굴을 한 천사인가?

미국 서부 개척이 한창이던 1860년대 ‘시애틀’이란 이름의 인디언 추장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을 강제로 팔게 되면서, 당시 피어스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다. “사람과 자연은 본래 한 몸이다. 흐르는 강물은 조상의 피와 같다. 사슴과 꽃은 형제자매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 않는 공기와 시냇물을 어떻게 사고팔 수 있는가?”

코로나19는 소태산 가르침을 세상에 드러내는 기회다. 왜 그런가? 18세기 이후 진행된 산업혁명은 자연파괴의 결과 지구 생태계의 교란을 가져왔다. 기후변화와 아울러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시작했다.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적 시장침탈과 글로벌 독점자본은  국가간·지역간·개인간 빈부 양극화를 가속시켜 왔다.
 

과학 없는 도학은 무용하고,
도학 없는 과학은 
맹목적이다.

관점에 따라서 문제의 진단과 처방이 달라진다. ‘사은사상’은 천하만물과 세상사는 ‘서로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은혜의 관계’로 보고 있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상생 생태계로 보고 있다. 팬데믹과 기후변화는 ‘생태 문명’으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자력양성은 교육으로 실현된다. 능력주의는 시대 변화에 따라 역량을 육성하는 교육의 기회균등을 전제로 해야 유효하다. 경제적 가치만이 아닌 사회적 가치, 생태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공도자가 주도하는 ‘공동체 자본주의’로의 전환이 ‘사요사상’이 지향하는 방향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스스로 자전하듯이, 인간은 공존의 존재이자 자존의 존재다. 소태산의 인간관은 ‘너의 조물주는 너, 나의 조물주는 나’이다. ‘삼학공부’를 통해 깨친 십인일단의 집단지성이 인공지능과 창의적으로 협업하는 ‘슈퍼지능’이 되어 인류의 진화를 선도하게 될 것이다. 

소태산 사상을 요약하자면, 물질개벽과 정신개벽을 병행하는 슈퍼지능이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태 문명으로 전환시키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자본주의를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사상은 시대의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한 해법이다. 혁신은 그 해법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장애요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소태산이 대각을 하는 과정도 어려웠겠지만, 전무출신 제자들을 만나 제생의세를 위한 회상을 만드는 과정은 더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정전>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상 대립과 일제 탄압을 피하기 위해 언어 선택에 심혈을 기울였을 것이고, 교단의 재정적 기반을 다지기에도 참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의식주와 삼학공부 병진의 영육쌍전 ‘육대강령’을 다시 본다. 

소태산은 의·식·주와 수양·연구·취사의 삼학을 육대강령이라고 했다. ‘수도인 가운데 놀고 먹는 폐풍’을 지적하여 ‘수도와 생활이 둘이 아닌 산 종교’를 지향했다. 개인의 삶에서 육신과 정신이 하나의 생명선으로 보는 영육쌍전을 강조한 것이다. 이와 아울러 인류의 삶에서 과학과 도학의 병진을 주창했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의 동기다. 소태산 사상은 도학에 바탕한 과학의 응용으로 실현될 것이다. 과학 없는 도학은 무용하고, 도학 없는 과학은 맹목적이다.

/솔로몬 경영개발원 소장

[2022년 11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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