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진 레크리에이션 지도자
김대진 레크리에이션 지도자

[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해봐! 너도 할 수 있어! 용기를 내면 돼!” 응원을 들은 여섯 살배기 아이가 뜀틀을 향해 뛴다. 그리고 이내 자신이 해내지 못할 줄 알았던 그 벽을 넘은 후 벅찬 마음에 환하게 웃는다. “선생님, 제가 넘었어요!” 아이의 웃음에 선생님도 기뻐한다. 4세부터 7세까지, 영유아와 어린이들에게 그는 영웅이다. 

첫인상부터가 밝은 웃음이었던 김대진 교도(장유교당). 그는 영유아와 어린이들을 지도하는 생활체육 선생님으로, 때론 어린이 학예회지도자, 그리고 원불교 교도로서 교구의 신임을 톡톡히 얻고 있는 레크리에이션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진솔하면서도 특유의 유쾌함 때문인지, 그는 많은 인연들에게 웃음과 용기를 전하는 행복전문가의 활기찬 모습이 보였다.

자신감을 키워주는 선생님
영유아의 체육활동과 초등학예발표회 등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일이 김 교도의 생업이다. 원래 사회복지사 일을 했던 그였지만, 왠지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에서 큰 생동감을 느껴 힘이 났고, 순수한 아이들에게서 자신도 힘을 얻는 것 같았다. 

“거창하게 어떤 교육을 한다기보다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일이죠.” 그 때문인지 아이들은 김 교도를 무척 잘 따른다. 또 함께 놀아주는 가운데서도 김 교도의 가르침은 분명했다. 아이들은 행복해야 하며, 또한 자신감을 키워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줄넘기, 훌라후프 등의 운동부터 평균대 같은 대도구 운동을 지도합니다. 아이들이 겁을 내기도 하지만 자신감을 심어주는 일이 제가 하는 일입니다. 기구나 운동 등에서 성공하게 되면 그 아이는 큰 자신감을 얻습니다. 그 순간만큼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 없습니다.”

아이들과의 체육활동과 함께 자연히 레크리에이션이나 여러 놀이 활동도 함께 한다. 특히 어린이들의 단체활동 등을 전문적으로 하기에, 경남교구 내 교당들은 김 교도에게 어린이 훈련 등의 조력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영유아·어린이들의 생활체육 지도… ‘자신감 심어주는 영웅’
경남교구 대표 레크리에이션 지도자 “출가 심법 보은자 되겠다”

화동한마당에서 김 교도가 레크리에이션으로 화합의 무대를 선보였다.
화동한마당에서 김 교도가 레크리에이션으로 화합의 무대를 선보였다.

교구를 대표하는 레크리에이션 지도자
5년여 전쯤, 김 교도가 레크리에이션 지도자로 활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교구 교무님이 화동한마당의 레크리에이션을 부탁 해왔다. 하지만 선뜻 ‘하겠다’고 대답하지는 못했다. 1,000여 명이라는 너무 많은 인원이 모인 자리, 또 다양한 연령층, 아무리 생각해 봐도 본인에게 무리라는 생각이 앞섰다.

“제가 오히려 일을 망치지는 않을까 걱정이 먼저 앞섰습니다. 그렇게 큰 행사는 해본 적이 없어서요.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도전해보게 됐습니다.” 그렇게 엉겁결에 일을 맡았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그날 행사장의 분위기는 좋았다. 행사 진행도, 준비된 프로그램도 모두 성공적이었다. 또 오히려 이렇게 큰 무대를 경험해 보는 것이 자신에게 더 없는 발전의 기회이자 자신감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오히려 이런 큰 무대를 통해 제가 더 많이 배우는 기회가 됐습니다. 언제 이런 큰 무대를 경험해 보겠습니까. 제가 더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이후 김 교도의 이야기가 이곳저곳에 알려지면서 그를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동창원교당과 밀양교당에서 작은음악회를 열 때 특별무대 출연자로 초대받았고, 동진주교당의 3040세대 교화프로그램과 배내청소년훈련원에서의 어린이 훈련에도 조력했다. 그렇게 김 교도는 교구 내에서 든든한 교화 조력자로 알려지게 됐고, 지금도 그를 찾는 교당과 기관이 많다. 

“개신교나 다른 이웃 종교는 레크리에이션 프로그램이 상당히 발달돼있어요. 단체활동과 전도에 큰 도움이 되죠. 원불교도 그런 문화의 발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단에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저도 하고 싶고, 교단의 일이라면 조그만 힘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요.”
 

배내 어린이훈련에 초대, 단체 게임을 진행하고 있다.
배내 어린이훈련에 초대, 단체 게임을 진행하고 있다.

받은 은혜만큼 베풀고 싶다
약 15여 년 전, 김 교도는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불안장애 우울증을 앓게 됐다. 그로 인해 영산성지를 방문해 며칠을 요양차 생활하게 됐을 때, 교무님으로부터 쌀수매 일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아 직접 운전을 하게 됐다.

하지만 운전 부주의로 뜻하지 않게 교구 차량과 부딪쳐 두 대의 차가 크게 파손되는 상황이 벌어졌고, 설상가상으로 두 차량은 같은 법인 명의의 차라서 보험처리가 되지 않았다. 괜히 나서다 폐를 끼쳤다는 생각에 상심이 깊었다. 

“제가 사비를 들여서 해결해 드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공중사를 하다 발생한 일이니, 사무소에서 처리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고마운 마음, 그리고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미안함에 그치지 않고, 받은 은혜만큼 나도 베풀고 살겠다는 다짐이 더 커졌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항상 교당과 교구의 활동에 정성이 깊다고 주위 인연들이 말한다.

“제가 학생회와 청년회를 다니던 시절, 담당 교무님이 출가를 권하셨어요. 출가할 자신이 없어서 다른 약속을 했죠. 교무가 되지 못해도 나중에 꼭 교도회장이 되겠다고요. 교무님들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교무님들을 따라 항상 보은하고 살겠습니다.”

[2022년 12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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