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부터 기상과학연구원까지 ‘기본에 충실한’ 공직생활
‘하늘을 친구처럼 국민을 하늘처럼’ 캐치프레이즈 보람
“기후변화 가는 길목에서 탄소 감축은 사실상 유일한 대안”

[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관심 있는 사람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무엇일까. ‘밥 먹었어?’, ‘오늘 기분 어때?’ 가 아니다. 정답은 ‘날씨’다. 만약 눈 소식, 비 소식을 전한다면, 그 상대를 좋아할 확률은 무려 7.3배나 높다. “내일 눈 온대”, “오늘부터 춥다니까 옷 따뜻하게 입어.” 상대는 날씨를 말해도 나는 관심과 안부로 듣는 우리끼리의 마법. 그래서 그 흔한 날씨 얘기에 우리는 수줍은 연정을 실어보내곤 한다. 

어색한 사이, 대화를 부드럽게 시작하는 ‘스몰토크’로의 주제로도 날씨는 으뜸이다. 김성균 국립기상과학원장(법명 성균·여의도교당)과의 대화도 그렇게 시작했다. 남쪽의 따뜻한 섬 제주, 1년에 며칠 없다는 서귀포의 눈 내린 날이었다. “서귀포에도 눈이 다 오네요”라고 하니 “재미있는 날 오셨네요”라고 답했다. 금세 정겨웠다.

국민이 원하는 바가 기상청의 기준
스물일곱살에 기상청 공무원으로 하늘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부산지방기상청장, 본청 기후과학국장, 기획조정관, 수도권기상청장을 거쳐 지난해 4월 제3대 국립기상과학원장으로 취임해 이제 마지막 몇 개월만을 앞뒀다. 

“2007년 전략기획담당관 시절 기상청 캐치프레이즈를 공모했습니다. 공모작을 선정하긴 했는데 확 와닿지 않더라고요. 머리를 맞대고 수상작들을 이리저리 붙여봤죠. 그렇게 탄생한 것이 지금도 쓰는 ‘하늘을 친구처럼 국민을 하늘처럼’예요.”

그것은 또한 그의 자세이기도 했다. 그 자신이 서울대에서 기후학을 전공한 과학자로 ‘하늘을 친구처럼’ 탐구하는 한편, 공무원으로는 ‘국민을 하늘처럼’ 높여왔다. 그 어떤 요구라도 국민이라면 정답이자 과제가 됐다. 이를테면, 서운할 법도 한 ‘날씨예보정확도’ 같은 경우다.

“사실 우리나라 예보는 꽤 정확한 편입니다. 일반적으로 90%가 넘는, 세계 6~7위 수준이에요. 다만 대륙 동쪽 기상이 드라마틱하다 보니 한국이나 일본, 중국 같은 곳의 예측이 어렵지요. 산이나 바다와 같은 복잡한 지형도 한몫해요.”

허나 우리나라는 기상예보에 그렇게나 깐깐할 수가 없다. 조금의 오차도 용납않는 것. 세계적으로도 특이한 이 냉담, 아마도 ‘밥 먹고 축구만 했는데 저것밖에 못 하냐?’와 같은 맥락일까.

“하지만 국민이 원하는 바가 그렇다면 그것이 기상청의 기준이 되어야겠죠. 국민의 기대와 예측 수준 차이를 줄이는 것이 늘 우리의 임무였습니다.”

하늘만큼 높은 눈높이도 맞춰내고야 말겠다는 의지. 김 원장은 이를 위해 ‘항상 기본에 충실하자’는 서원으로 일해왔다. 임기제 원장으로서는 드문 조직개편도 그 때문이다. 이름만으로도 임무와 기능이 한 눈에 보이도록 직제를 바꾼 것이다. 예보와 관측, 기후, 기상응용 외에 인공지능과 기후변화팀을 따로 꾸렸다. 먼저 AI 이야기부터 들려준다. 

“인공지능은 기상연구에 있어서는 걸음마 단계입니다. 주의보나 경보와 같은 특보는 여러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 종합적인 결정이거든요. 이를 AI가 인간처럼 부드럽게 판단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과학원에선 서귀포 앞바다가 바로 보인다. 은퇴 후, 그는 날씨 이야기를 쉽게 푼 책을 펴낼 계획이다. 
과학원에선 서귀포 앞바다가 바로 보인다. 은퇴 후, 그는 날씨 이야기를 쉽게 푼 책을 펴낼 계획이다. 

뜨거운 감자, AI와 기후변화
기후변화 얘기를 시작하자, 그는 노트에 그래프부터 그린다. 사실 공직 인생 절반을 기후변화에 써온 그다.  

“최근의 가뭄이나 한파의 원인이 모두 기후변화라고는 볼 수 없어요. 다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후변화로 가는 길목에 있고, 충분히 우려할만한 증거들이 있다고요.”

가뭄과 홍수, 폭염과 한파의 반복 역시 이 증거다. 대안은 두 가지 뿐이다. 탄소를 더 이상 배출하지 않는 것과 대기 중의 탄소를 걷어서 없애는 것. 후자인 탄소제거는 몹시 어렵기에 우리는 감축에 의존해야 한다.

“탄소는 한번 배출되면 대부분 100년을 넘게 갑니다. 지금 당장 탄소배출이 0이 돼도, 1세기 넘게 고온은 이어지는 거죠. 이 때문에 감축과 동시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여기에서 원불교를 비롯한 종교계에 대한 그의 기대도 드러난다.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을 넓히며 환경운동에 참여하는 길을 터주는 일. 이 천지보은은 그의 아내 전시경 원불교봉공회장(여의도교당)이 오래 해오던 일이기도 하다.

“아내의 봉공은 당연한 느낌입니다. 결혼해서 계속 장인·장모님(故전벽운·배자원)과 함께 살았는데, 장모님은 더 바쁘셨어요. 아내가 네 딸 중 첫째인데 신앙부터 봉공까지 어머님께 이어받았지요.”

그는 법회는 못 챙겨도 책상에 늘 <원불교교전>을 둘만큼 법문이 가깝다. 조언을 청하니 조심스레 아쉬운 점을 건네는 김 원장. 

“출가가 아닌 재가가 속명과 다른 법명을 일반적으로 쓰는 것이 과연 맞나 싶을 때가 있어요. 너무 복잡한 등급이나 법복까지 굳이 필요할까요. 책임과 형식에 매인 부분이 안타깝습니다.”  

교전을 볼 때도 가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과연 이 어려운 한자를 누구나 다 이해할수 있을까?’ 배운 사람만을 위한 종교가 아니라면, 쉬운 교전이나 각주를 다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원불교, 모두를 위한 종교가 되길
국립기상과학원 너머 서귀포 앞바다에 눈구름이 두터이 흘렀다. 고근산을 등지고 바다 한가운데 이중섭이 그린 섶섬이 떠있다. 원산에 살던 이중섭은 1·4후퇴 때 다섯 살, 세 살 아이들을 업고 여기까지 내려왔다. 단칸방에 간난한 삶이었으나 이후 가족과 떨어져야 했던 그는 평생 이곳을 그리워했다. 

김 국립기상과학원장 역시 제주의 시간이 이미 그립다. 4월이면 33년의 공직을 마무리하고 가족에게 돌아간다. 서울에 가지 않는 주말이면 오름들에 오르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텅빈 제주의 하늘에 남은 시간을 그린다. 하늘과 국민만 보고 달려온 그의 1막, 이제 펼칠 인생의 다음장은 ‘더욱 맑음’이겠다. 

[2022년 12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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