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희 교장 
이진희 교장 

[원불교신문=이진희 교장] 어릴 때부터 축구를 그다지 즐겨보지 않았다. 전후반 각각 45분이라는 긴 시간, 패스 미스로 상대팀에게 공을 뺏기면 여태 뛰어다닌 노력은 모두 허사가 되고 공수가 다시 바뀐다. 하프라인을 넘나들다가 한 시간 반을 훌쩍 넘기고도 무승부로 끝나기도 한다. 그래서 경기를 끝까지 봐도 허무할 때가 있다. 

그런데 월드컵 시즌만큼은 달라진다. 평소에는 우리 선수 이름도 모르지만 이때는 우리 선수는 물론이고 외국 유명 선수들의 국적이나 이름을 알게 된다. 반복해서 보여주고 들려주는 방송의 힘이다.

2002년, 우리는 안방에서 월드컵 4강 신화를 경험했고, 축구에 대한 우리 국민의 기대와 열망은 더욱 커져만 갔다. 이에 부응하고자 선수들도 열심히 뛰었지만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특히 손흥민, 황희찬 등 주전 선수들의 부상으로 전력에 차질을 예고했었다. 안와골절의 부기가 남아있는 모습으로 보호마스크까지 써야했던 손흥민과 햄스트링 부상에도 불구하고 출전한 황희찬은 보는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우루과이와의 1차전에서 무승부로 비기면서 순조롭게 시작된 경기는 가나와의 2차전에서 아쉽게도 패배의 쓴맛을 봤다. 이때 일부 사람들이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에게 보여준 몰지각한 행태는 씁쓸함을 넘어 공분을 유발했다. 
 

칭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패하고 좌절했을 때 
격려하고 용기 잃지 않게 
응원하면서 기다리는 것.

필드에서 직접 뛰는 선수들보다 더 절실하게 승리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이날을 위해 4년을 기다리고 맹렬히 연습한 그들에게 승리의 의미는 경기장이나 TV 앞에서 열광하고 응원하는 관중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승리에 대한 기쁨도, 패배의 쓰라림도 당사자들이 가장 더한 법이다. 

관중의 응원은 즐길 정도에서 멈춰야 한다. 과하면 착심이 돼 때로는 훌리건이 되고 때로는 악플이 된다. 2차전에서 패하고 나서,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들이 그동안 애쓴 노력과 쌓아온 성과는 물거품처럼 다 사라진 듯, 악플러들은 16강이 이미 물 건너갔다며, 도를 넘어 함부로 질러대고 떠들어댔다. 무례를 넘어 무법하기까지한 이들의 만행에 선수들은 위축됐고, 외국 언론은 이들의 행위를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우리 태극전사들은 이런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또 16강에 합류할 수 있는 험난한 경우의 수가 거론되는 상황에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포르투갈전을 치렀다. 악플에 이어 패색이 짙은 경기에 나가는 것만큼 선수들에게 기운 빠지는 일이 또 있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극적으로 16강의 배에 올라탔다. 

갑자기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악플은 선플로 변했지만,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에게 남은 씁쓸함이 다 사라졌을까? 상처가 아물어도 흉터는 남는 법이다. 브라질과의 8강전에서 4:1로 패한 이후, 악플러들을 의식한 듯 손흥민 선수는 “성원해준 국민의 기대에 못 미쳐 죄송합니다”라는 멘트를 두 번이나 반복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30년 넘게 교육이라는 업에 종사하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일희일비하지 않고 믿고 기다려주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비단 교육뿐 아니라 월드컵도 마찬가지다. 잘했을 때 하는 칭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패하고 좌절했을 때 토닥토닥 격려하고 용기를 잃지 않게 응원하면서 기다리는 것이다.

“손흥민 선수를 비롯한 태극전사들은 절대 죄송하지 않습니다. 그대들로 인해 우리는 잠시나마 일상의 근심과 걱정을 내려놓고 붉은 악마로서 열렬히 응원할 수 있는 에너지로 충만할 수 있었고, 16강의 기쁨까지 보너스로 안겨줬습니다. 4년 후에도 진심을 다해 더 힘차게, 더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한겨레중고등학교

[2022년 12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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