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전 교도
이양전 교도

[원불교신문=이양전 교도] 저는 백일도 되기 전, 뇌성마비의 판정을 받아, 오른쪽 다리에 장애를 갖게 됐습니다. 장애는 제 인생을 불행으로 몽땅 뒤덮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나 자신도 싫었고, 이 몸을 낳아준 부모도, 내 옆에 있는 모든 인연들도 다 밉고 원망스러웠습니다.

이러한 저를 지켜보던 부모님은 안타까워하며 법회 보기를 권유하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내 안에서 맴돌던 원망심은 더 크게 요동치며 밖으로 뛰쳐 나왔고, 부모님의 마음을 어떻게 하면 더 아프게 할까? 하는 말들을 찾아 생각나는 대로 쏟아냈습니다. 이러한 나의 반발심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은 기회만 있으면 원불교 법회 참석을 꾸준히 권유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교당에 새로운 교무님이 오셨으니 법회에 가보자고 합니다. 자꾸 권하니까 효도하는 셈치고 한번 가볼까 하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며칠 후 교당에 갔더니 은쟁반에 구슬 구르는 듯한 목소리로 교무님은 저를 반겨 주셨습니다. 저는 교무님의 미소와 목소리를 들으러 매주 법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내 안에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하루는 저의 안사람에게서 묘한 행동을 발견했습니다. 일하다가 연장을 가져오라고 부탁하면 연장 가지러 갈 때는 빨리 걸어가고 올 때는 천천히 걸어오는 것입니다. 또 물건을 줄 때도 저 멀리서 전해주고 돌아서 가버렸습니다. 매번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기분 좋을 때 그 연유를 물었더니, 제 얼굴이 무서워서 그렇답니다.
 

나도 하면 되는구나!
이렇게 공부하면 변하는구나!
내가 변하니 
상대도 변해 있었습니다.

저와 일생을 함께 살아주겠다고 온 사람에게, 제가 공포의 대상이 된다니 스스로의 모습에 용납이 안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얼굴에서 무서운 독기를 빼내는 일로 풀베기를 선택했습니다. 분노가 일어나면 빨리 그 장소를 피해 밭으로 나가 풀을 베었습니다. 마음에 분노가 사라질 때까지 낫질을 했습니다. 낫으로 풀을 배며 마음속에 원망심과 분노도 함께 쳐냈습니다.

치고, 치고, 또 치고, 베고, 베고 또 베어냈습니다. 이렇게 3년째 공부하고 있을 무렵, 평온한 얼굴로 화분에 담겨 있는 꽃을 바라보는 부인에게 제가 말을 건넸습니다. “꽃이 그렇게 좋아?” “응” “왜 그렇게 좋은데?” “당신 닮았어.” 

엉! 이게 무슨소리, 저는 다시 한번 더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이 전에는 내 얼굴이 무섭다고 했는데.” “응! 그때는 당신 얼굴이 무서웠는데, 지금은 이 꽃 같아.”

법신불 사은님 감사합니다. 저는 춤추게 기뻤습니다. 삼세 업력이 다 풀려나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아하! 나도 하면 되는구나! 이렇게 공부하면 변하는구나! 내가 변하니 상대도 변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유무념 공부를 모르면서 유무념 공부를 했습니다. <정전> 일기법에서 ‘유무념 공부는 하기로 한 일과 안 하기로 한 일을 스스로 조목을 정하여 하자는 조목과 말자는 조목에 취사하는 주의심을 가지고 한 것을 유념, 취사하는 주의심 없이 한 것을 무념으로 처리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안하기로 한 일을 유무념으로 정하여 소득을 얻었습니다.

/수계교당

[2022년 12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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