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사람에게 시의 진실성,
시문학이 지닌 깊이는 어쩌면
글 쓰는 이의 가슴과 맞닿아있는 것

이름 없는 별들의 시… 찬란하게 빛나기를

[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중부로 들어서자 점점 더 눈발이 거세진다. 안동에 근 10년 만의 눈이란다. 길이 미끄러워 오는 길이 염려된다는 시인의 전화. 말끝에 온기가 실리는 걸까. 목소리 너머 시린 손을 녹여 줄 훈훈한 입김 불어온다. 그 온기 실어 달려온 곳, 안동시 남선면 놉실로 146. ‘421번 버스가 시간을 정해 하루 여섯 차례 다니는’ 시골 마을에 ‘시집작은도서관 포엠’이 있다. 이곳을 운영하는 이는 피재현 시인(56)이다. 

어릴 적 ‘원더우먼’이 부러웠던 건 머리에 쓴 왕관도, 팔찌도, 별무늬 반바지도 아닌 ‘무적’의 힘. 모든 악당을 물리치는 무적의 힘이 부러워 빌려 쓰는 꿈을 꾸기도 했다. 또 다른 ‘원더우먼’이 있다. 그녀는 ‘하루종일 밭일을 하고 돌아와서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밥을 안치고 마당에 난 풀을 뽑고… 잠깐 적의 공격을 받은 양 혼절했다가 새벽닭이 울면 일어나 밥을 안치고 들에 나가 일을 하고 밥을 하고 일을 하고 빨래를 하고 또 밥을 하는’ 원더우먼. 아들 피재현, 그는 ‘가장 가난하고 연약하고 안쓰러운 어머니’를 시집 <원더우먼 윤채선>에 담았다.
 

피재현 시인
피재현 시인

시집작은도서관 포엠(Poem·詩)
“거창하지 않아요.” 여기서부터 대화가 시작됐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 백일장에서 장원을 한 피 시인. 그러나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워낙 가난했으니까요. 결혼하고 먹고 살아야 하니 열심히 돈 버는 일을 했어요.”

20대는 시가 전부인 양 살았던 그였지만 ‘먹고 살아야’하는 존엄한 현실이 우선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월급을 받았던 대안학교 교사’ 일을 접고 지금 이곳에 들어왔던 해가 2010년. “상처투성이의 몸이 되어 노암마을에 스며들었다”고 그는 그때를 표현했다. 

그렇게 스며든 고향 땅에 작업실인 공방을 지었다. 그 한켠에 자신이 읽었던 시집을 꺼내놓았다. 먹고 사느라 시를 쓰지는 못했지만, 독자로서 읽었던 시집이 1,500여 권. 이 시집들을 자신의 서각 작업실 공간에 내어줬다. 

시집전문도서관 포엠의 출발점이 되었을까. “마을 쓰레기장에 시집이 버려져 있었어요.” 시를 쓰는 시인이 시집을 두고 올 수는 없었다. 주워왔다. 그는 누군가의 삶이었을 시집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소셜미디어에 시집도서관을 열겠다는 글을 올렸고, 기증이 잇따랐다. 그렇게 모아진 시집이 1만3천여 권. 3년 만에 작업실 사방이 시집으로 채워졌다. 2020년 4월, 전국에서는 유일하게 사립인 시집전문도서관 포엠의 문이 이렇게 열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시를 쓰셨는데 혹시 그 시집이 있을까요?” 어느 날 한 독자는 부친의 시집을 이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시를 써서 유명해지고 회자되는 시인이 몇 명이나 될까요. 이름 없는 시, 시집 한 권 내고 주목받지 못하는 시인들도 소중하잖아요.” 말끝에 그는 “무명시인의 시집을 찾아볼 수 있는 도서관이 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의 바람대로 ‘시문학의 거점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그렇게 이름 없는 별들의 시들이 ‘포엠’에서 찬란하게 빛나기를.
 

다시, 우리들의 엄마 <원더우먼 윤채선>
“우리 부모세대가 정말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신 세대죠. 굉장히 성실하게 사셨는데 평생을 가난하게 살아야 했어요. 엄마는 학교도 못 다녔고 글도 몰라요.” 시인의 표현대로라면 ‘별이 그려진 몸빼 바지를 입고’ 일만 하던 ‘촌부’ 엄마. 

<원더우먼 윤채선>은 엄마 윤채선의 죽음에 대한 기억과 기록이 담긴 ‘피재현의 사모곡’이지만, ‘촌부’인 엄마의 정서와 언어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엄마의 모습 그대로를 숨김없이 기억하고 애도하는 아들은 이렇게도 고백한다. ‘엄마가 오래오래 살면 어쩌나’ 그러다가 ‘봄꽃 지듯 덜컥 죽으면 어쩌나’ 그리고는 ‘내 마음이 꼭 봄바람처럼 지맘대로 분다’고.

그 아들, 엄마가 서운해할 때 즈음, ‘짠’하고 나타나 병실에 복숭아 통조림 한 통씩 돌리고 엄마 위세 세워주며 ‘밀당’을 한다. ‘기지떡을 왜 좀 안 줘서’ 삐지다 못해 분해져서 돌아누운 엄마에게 ‘내 담에 올 때 기지떡 한 말 해 올게’라고 달랠 줄 아는 아들은, 엄마를 병실에 두고 돌아와 혼자 먹어 보는 포도는 ‘맵다’는 말로 지극한 애잔함을 삭힌다. 

그에게 좋은 시는 뭘까. “내 마음이 잘 표현됐다, 언어로 잘 옮겨졌다 그런 시라고 할까요.” 글을 쓰는 사람에게 시의 진실성, 시문학이 지닌 깊이는 어쩌면 글 쓰는 이의 가슴과 맞닿아있는 것. 그래서다. ‘여리고 고운’ 그의 마음 옮겨진 <원더우먼 윤채선>이 우리를 뭉클하게 울리는 이유. 
 

에필로그
대화 도중 시인에게 걸려온 전화. 한참 동안 상대의 말을 경청하던 그의 대답은 ‘휴.’ 또다시 한참 동안 상대의 말을 경청하던 시인의 대답은 (깊은 공감의) 외마디 ‘휴’다.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는 깊이는 내 내면의 깊이다.’ 그가 통화하는 사이, 그의 시집에 감상 하나 적어 놓는다.

[2022년 12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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