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광 명예교수
김혜광 명예교수

[원불교신문=김혜광 명예교수] <원불교교사>에서는 교단의 삼대 목표를 교화, 교육, 자선으로 적고 있다. 소태산 대종사는 “우리의 사업목표는 교화, 교육, 자선의 세 가지니 앞으로 이를 늘 병진하여야 우리의 사업에 결함이 없으리라”(<대종경> 부촉품 15장)고 했다. 소급하면 이미 초기 교단의 인재양성소 기성연합단 개칙에서 교화, 교육, 자선의 인재양성을 밝힌 바 있다(<월말통신> 제3호, 원기13년(1928) 7월).

공교롭게도 이 땅에 서양 선교사들이 발을 디디면서 활동한 바도 교화, 교육, 자선이다. 비록 표현은 가르침, 치유, 전교(傳敎)로 다르게 했지만, 의미상 별다른 차이는 없다. 

개화기에 우리나라 최초 주미 대사로 파견된 민영익(1860~1914)은 미국에서 감리교 선교사인 가우처를 만나 조선의 사정을 교감했다. 이를 바탕으로 가우처는 1884년 1월 당시 일본에서 감리교 선교사로 있던 맥클레이에게 한국 선교를 위한 사정을 알아보라는 전문을 보낸다. 이리하여 맥클레이 선교사는 1884년 1월 24일 인천에 도착했다. 그는 인천에 도착하자 교분이 있던 김옥균을 통해 고종으로부터 교육과 의료사업에 대한 선교 윤허를 받았다(1844년 7월 3일). 이후 1884년 9월 22일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이자 의사인 알렌이 조선 땅을 밟았다. 이것이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조선에 파견한 최초의 선교 역사다.

이후 조선 땅에 발을 디딘 서양 선교사들은 <성경>(마태복음, 9:35) 말씀을 따라 가르치고(Teaching), 병들고 허약한 이들을 치유해주며(Healing), 복음을 전파(Preaching)했다. 성경 말씀은 공교롭게도 당시 한국 정서에 걸맞은 복음이 됐다. 조선에 파견된 선교사 대부분은 당시 조선이 필요로 했던 의료와 교육 분야에 집중했다.

그러면 왜 소태산 대종사는 교단의 목표를 교화, 교육, 자선으로 정하고 이를 병진하라고 했을까? 우리에게 익숙한 ‘교화를 주로 하고 사업은 종으로 보는 관점(敎化爲主 事業從)’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까? 소태산 대종사가 직접 제시해 준 교단 삼대 목표는 적어도 종교가 이 지구촌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맞춤형 교화, 교육, 자선은 어떻게 전개돼야 하는지를 암묵적으로 가르친다. 

때로는 위의 세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 강조될 수 있다. 하지만 ‘병행하라’는 가르침에는 종교의 본질적 역할이 그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물론 지금 이들 삼대 목표가 함께 병행되려면 변화가 불가피한 부분도 있다. 예전에는 교화, 교육, 자선을 가리지 않고 인사도 역할도 부과될 정도로 단순한 사회구조였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다른 세상에 와 있다. 한마디로 교화, 교육, 자선은 각기 영역이 다른 만큼 전문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시대에 교화, 교육과 자선을 병행하라는 이 법문을 어떻게 받들어야 하는가? 전문성을 요구하면 할수록 교무의 양성, 인사, 제도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그렇지 않으면 종전처럼 대응하는 것이 여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소태산 대종사의 본의는 교역자의 역할기대도 어떻게 달리해야 할 것인가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종교의 본질적 역할기대는 아프면 치유해주고, 모르면 가르쳐주고, 성현의 말씀을 깨닫고 내면화하는 인간화 과정이다. 다만, 지금 여기서 그것을 실천에 옮기자니 보다 전문화된 역량이 요구될 따름이다.

/원광대학교

[2022년 12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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