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가슴의 정중앙에 대고서, 맥박이 뛰는 손가락으로 음을 만드는 악기 첼로. 

쇠처럼 단단한 현을 누르는 손가락은 물집이 몇 번이나 터지고 나서야 굳은살이 생겨 선율을 만들 준비를 마친다. 여느 악기보다 원초적 경계에 마주하는 일이 많은 그 악기로 늘 법회를 여는 김명진 교도(한강교당). 그는 첼로가‘경계를 이겨내는 원불교 공부를 닮았다’고 했다.

일원가정에서 자랐지만 그리 성실한 교도는 아니었다. 소원했던 그의 마음에 다시 종교생활의 불을 지핀 이는 병석에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았던 아버지다. “결혼하고 오랫동안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늘 ‘이 다음에 꼭 우리 명진이와 인연 맺게 해주세요’라며 법신불 사은께 기도하셨어요.” 그리고 아버지의 그 절박한 서원은 정말 이뤄진듯, 아버지가 열반하시고 이듬해에 아들이 생겼다. 모두들 ‘아버지가 오셨다’고 믿게 됐다. 

그렇게 원불교의 은혜에 대해 깨달은 그는 매일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일기는 그의 일상 속 감사한 순간들로 빼곡히 채워진다. “운전하다 사고날 뻔 했을 때, 작은 문제로 원망심이 들어 싸울 뻔 했을 때 등 그 ‘뻔한’ 일들을 감사로 돌리니 더 감사한 일이 계속 생겼어요.” 그 감사는 베푸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자신의 재능을 살려 성가 첼로 반주를 자청했다. 그가 마음을 내자 주변 이들이 마음을 보탰고, 매주 교당 일요법회는 그들의 첼로연주로 풍성히 채워진다. 

원망을 감사로 돌리는 믿음의 뿌리는 어딜까. 그는 그것을 어릴 적 그의 마음속에 내려앉은 원불교 정서라고 생각한다. “교구가 뭔지도 모르던 때, 교당 위 충북교구에 김법종 교구장님이 계셨어요. 그때는 교구장님이란 말을 몰라서 그저 교무님이라 불렀지만요.” 사춘기를 보내며 삶에 의문이 생길 때면 그는 김법종 교무를 찾아갔다. 그때마다 늘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찬찬히 설명을 해주던 교무님의 모습이 생생하다. “당시 질문은 <원불교교전> 속 내용일 때도 있었고, 일상의 고민일 때도 있었어요.” 뚜렷한 가르침은 바로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였다. 

“원불교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와 같은 방관과 달라요. ‘그럼에도 감사합니다’죠. 원망과 경계 속에서도 ‘그럼에도’를 실천하는 것은 오직 원불교 감사생활뿐인 것 같아요.” 
혼자서는 절대 음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악기 첼로, 첼로를 ‘켜는’ 것은 활이다. 첼로처럼 그의 삶을 켜는 활은 바로 원불교. 원불교가 켜내는 선율에는 늘 은혜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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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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