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자, 42.195㎞에서 가장 큰 위기가 30~35㎞다. 지방을 다 태우고 탄수화물까지 다 태운 상태라 너무 힘들지. 70%를 오고도 대부분 여기서 포기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끝까지 달릴 수 있을까?”

트레이닝복을 입고 런닝화를 신은 아이들이 일순 조용해진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생에겐 아직 어려운 퀴즈. 잘 뛰기만 하면 될 줄 알았건만 한필석 감독(법명 원종·영등교당·익산시 육상연맹 부의장)은 반복해서 질문을 던진다. 단지 ‘좀 달리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대한민국 육상계를 키우고 있다.  
 

한필석 익산시 육상연맹 부의장
한필석 익산시 육상연맹 부의장

반백년 학교체육 현장의 전설
꿈나무들의 재능을 선수의 프로의식으로 만드는 일, 한 감독은 이를 47년째 해왔다. 선수를 선출하고 가르치는 일만이 아니다. 18년 동안 아이들을 먹이고 재운 수기당(현 체육영재원)은 직장이나 훈련소가 아닌, 집 자체였다. 그는 지도자였고, 사감이었으며, 그 전에 아버지였다.

“합숙훈련이 많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리면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들어와요. 고작 열 살 남짓한 해만 지면 웁니다. 그럼 옆에 눕히고 토닥토닥하며 재웠지요.”

부창부수였다. 서른 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밥과 생활은 아내 성도은 교도(본명 은경)가 챙겼다.  인건비 아껴 고기 한 번이라도 더 먹이고 싶어 무보수로 삼시 세끼 ‘엄마밥’을 했다. 그들의 두 아이도 같이 키웠건만, 좋은 반찬은 선수들 숟가락 위에 더 올라갔다. 아픈 아이는 부부 사이에 눕혀 밤새 지켰다. 남의 자식부터 나무랄 수 없어, 먼저 내 자식을 혼냈다. 일부러 덜 주고 더 혼냈던 그 마음을 자식들은 알까. 돌아보면 그 세월, 아내와 자녀들의 아량이 없었으면 못했을 일이다. 

그때는 그랬다. 재능이 있어 오기도 했지만, 삼시 세끼 먹기 빠듯한 집이나 보육원에서도 기를 쓰고 운동하러 왔다. 빵 때문에 축구부에서 맞으면서도 버텼던 안정환, 돈을 벌겠다며 가출했으나 감독이 찾아가 데려온 양학선 같은 선수들이다. 그 마음을 누구보다도 그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운동화가 없어 고무신을 신고 달렸던 소년, 그에게도 운동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고등학교 진학 위해 들어선 육상의 길, 지도자로 꽃피워
18년 동안 온 가족이 함께 살며 300여 명의 선수들 길러내
육상강호·체육도시 익산, 은퇴 후 생활체육으로 보은하고파

운동화가 없어 고무신 신고 달렸던 소년
“집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못갈 판이었어요. 그런데 중학교 운동회 때 내소사에서 곰소까지 6㎞ 달리기에서 1등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운동만 잘해도 고등학교 갈 수 있다고요.”

막 육상팀을 창단한 정읍농업고등학교가 그를 받았고, 훗날 ‘기록제조기’로 성장한 김완기 선수 등과 함께 뛰었다. 이후 군산시청에서 3,000m 장거리에서 이름을 날렸던 그. 하지만 가난은 끈질기게 그의 발목을 잡았다. 만성 영양실조로 툭하면 헤모글로빈 수치가 떨어져 숨이 가쁘고 어지러웠다. 뛸 수가 없었다. 선후배들은 한창 기량에 물이 오르던 20대 중반, 그는 런닝화를 벗고 호루라기를 목에 걸었다. 

“37년 동안 가르친 학생선수들은 셀 수 없어요. 잘 성장하는 신소망 선수도 있고, 하계훈련을 같이 하던 높이뛰기 우상혁 선수도 기억이 나네요. 그때도 우 선수는 늘 웃는 얼굴로 훈련했어요. 멘탈 관리가 타고났구나, 크게 되겠다 싶었죠.”

초반에 오버하지말 것, 휴식 때 적극적으로 회복할 것, 무엇보다 룰을 지킬 것. 당연하지만 종종 잊는 삶의 교훈들이, 트랙 위에는 생생히 살아있다. 오직 맨몸으로 땅을 딛어내는 육상, 그 겸손하고도 위대한 인간의 아주 오랜 뜀. 그것이 ‘영원한 육상인’ 47년차, ‘육상 꿈나무의 아버지’ 37년차를 살아가는 이유다.
 

어린 선수들은 큰 대회에 흥분하거나 오버페이스하는 등 돌발상황이 많다. 그럴 땐 꿀물을 먹이거나 마사지를 하며 위기를 넘기곤 한다.
어린 선수들은 큰 대회에 흥분하거나 오버페이스하는 등 돌발상황이 많다. 그럴 땐 꿀물을 먹이거나 마사지를 하며 위기를 넘기곤 한다.

마음공부 덕, 이제 보은의 길로 달린다
모범공무원상, 과학교육기술부장관상, 익산시민의장 체육장 등을 수상하기도 한 그. 허나 키워낸 선수들의 선전이 더 기쁘다. 그의 헌신으로, 익산시는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육상강호, 체육도시로 거듭났다. 전국대회 개최가 이어지며 국가대표 전지훈련지로 주목받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이용하는 사회통합형 시설 반다비체육센터도 전국에서 3번째로 열었다. 선수들의 실력과 지자체의 의지, 그리고 지도자의 인맥과 노력이 뒷받침된 결과다.  

“올해 학교체육 현장을 마무리합니다. 이후로는 행정, 심판을 이어가며 익산의 생활체육 분야에 봉사하고 싶어요. 아내와 제가 원불교가 좋아 스스로 찾아간 후로, 이렇게 무탈하게 살아온 것은 다 마음공부 덕입니다. 이제 보은의 길로 달려야죠.”

새해, 우리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결승선이 까마득한 먼 길, 허나 우리에게는 스승이 있다. 스승은 당신의 아픈 밤을 기도로 지새우고, 발걸음 하나에도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차린다. 수천의 제자를 가르치고, 수백의 선수들을 품어 키워온 육상계의 큰 스승 한필석 감독. 그의 반백년 올곧은 정성으로, 원기108년 토끼해 첫 아침을 다정히 뛴다.

[2023년 1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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