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제 교무
박광제 교무

[원불교신문=박광제 교무] 영산선학대학교는 현재 겨울 계절학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예비교무들을 글로벌 인재로 성장시키기 위한 원어민 영어캠프와 보충수업, 독경 및 설교대회, 문화체험 등이 주된 프로그램입니다. 계절학기 운영 과정을 지켜보며, 저 역시 부족한 부분을 더 채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정산종사법어>를 처음부터 다시 봉독하고 있습니다. 전서 공부는 할 때마다 새로운 감상을 얻게 합니다. 그중에도 제1 기연편은 더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정산종사 법어’임에도 소태산 대종사가 더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기연(機緣)은 ‘어떤 기회를 통하여 맺어진 인연’이라는 뜻입니다. 기연편은 초기교단의 모습과 더불어 소태산 대종사와 정산종사의 인연을 그리고 있습니다. 정산종사께서 철저히 소태산 대종사님을 주세불로 천명하고 드러내시기에, <정산종사법어> 기연편을 볼 때면 마치 <정전>과 <대종경>을 보는 느낌입니다. 정산종사께서 말씀과 실천으로 우리와 소태산 대종사님을 기연 맺게 해주는 법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연편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두 번째 이유는, 정산종사의 끝없는 신성과 공부심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법어에 나타나는 정산종사의 신성은 한결같습니다. 

원기4년 7월 26일 최후의 법인 기도 때 소태산 대종사께서 구인에게 마지막 남길 말을 묻습니다. 그러니 정산종사 사뢰기를 “저희들은 이대로 기쁘게 가오나 남으신 소태산 대종사께서 혹 저희들의 이 일로 하여 추호라도 괴로우실 일이 없으시기를 비나이다” 하십니다.(기연편 3장) 

정산종사께서는 자기의 목숨이 걸린 일임에도 스승의 안부를 더 중히 여기고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기연편 4장에 나오는 ‘불경은 보지 말라’는 말씀에 경상까지 외면했고, ‘전주에 들르지 말라’는 말씀에 그 쪽을 바라보지도 않았습니다.
 

철이 들고 수행이 깊어질수록

스승님에 대한 마음과 신성이 더 커집니다.

팔타원 황정신행 종사를 비롯한 선진들의 증언에 의하면 정산종사께서는 소태산 대종사의 말씀에 “예” “예” “예”라고만 했지, 다른 이유를 대거나 “아니오”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유학을 시작으로 불교와 도교 공부를 했고 여러 스승을 찾아 만났지만 답답함을 해결하지 못하다가 소태산 대종사님을 만난 후로 일호의 이의 없이 가르치는 대로만 순종하셨다고 합니다. 그 신성으로 일관되게 공부하여 영원한 생명을 찾을 수 있었고, 죄복의 근원을 알 수 있었으며, 정당한 인도를 깨칠 수 있었고 성불의 길을 바랄 수 있었다고, 기연편 13장에서 말씀하십니다. 

이끌어주는 것은 스승이라면 그것을 끊임없이 닦고 나아가는 것은 개인의 몫입니다. 정산종사께서는 어릴 때부터 공부를 쉬지 않았고, 소태산 대종사님의 교법을 만난 후로 이 교법을 끊임없이 단련하셨기에 진리의 소식을 이처럼 확신해 말씀하셨습니다.

기연편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세 번째 이유는, 바로 스승을 사랑하는 아이와 같은 심법 때문입니다. 정산종사께서는 평생의 기쁜 일 두 가지로 ‘이 나라에서 태어남이요, 소태산 대종사를 만남’이라 했습니다. 여기에 ‘스승께서 친히 찾아 이끌어주신 한 가지 은혜를 더 입었다’고 하십니다. 이 법문을 받들 때마다 정산종사께서 스승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열반한 민산 이중정 종사께서 입버릇처럼 “어릴 때 소태산 대종사께서 감기약을 지어주셨는데 그 약 한 첩 먹고 나서 평생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천진하게 웃으며 말씀하던 그 모습에서 늘 스승에 대한 그리움과 정겨움이 듬뿍 묻어났습니다. 정산종사님의 법문도 같은 맥락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우리도 소태산 대종사께서 태어난 이 땅에 태어났고, 또 소태산 대종사님, 정산종사님, 대산종사님을 비롯한 역대 주법들을 모시고 있으며, 축적된 법문과 스승님들의 실천을 매일 접할 수 있는 환경에 있습니다. 어찌 보면 과거보다 더 큰 은혜 속에 살아가는 중인지 모르겠습니다.

앞의 세 가지 이유를 우리는 ‘정산종사의 신성’이라는 한마디로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정산종사께서는 “마음으로 한 때도 그 어른을 떠나 본 일과 일로 한 번도 그 어른의 뜻을 거슬려 본 일이 없었노라”고 했고, 대산종사께서도 “정산종사는 만고신의(萬古信義)시니, 정산종사는 소태산 대종사께서 어떤 일을 시킬지라도 한마음으로 받드셨고, 나 역시 소태산 대종사와 정산종사를 내 생명과 같이 받들뿐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신성이 후대에 계속 이어지면서 지금의 교단 풍토가 만들어졌습니다. 법에 철이 들고 수행이 깊어질수록 스승님에 대한 마음과 신성이 더 커집니다. 기연편을 볼수록 이 신성을 더 닮아가고 싶고 스승님들의 뒤를 따라 걷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우리는 교단 구성원 전체가 소태산 대종사님의 제자라는, 단순하면서 직접적인 관계로 맺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이 기연을 소중히 여기고 신성으로 공부해나가며 소태산 대종사님과 스승님들을 사랑하는 원불교 심통제자(心通弟子)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원기108년 새해에는 이미 가지고 있는 기연을 잘 활용하면 어떨까요. 원불교 교법을 만났고 소태산 대종사님과도 이미 만난 우리입니다. 그 기연이 시작된 영산성지는 소태산 대종사께서 태어난 탄생가, 대각한 노루목 대각터, 공부하고 모임을 가진 구간도실, 기도한 삼밭재와 구인봉, 방언하신 정관평 그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곳이 없고, 아름답지 않은 장소가 없습니다. 봄바람이 살랑이기 시작하면 원불교 근원성지에서 소태산 대종사와 정산종사를 떠올려보면 어떨까요.

/영산선학대학교

[2023년 1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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