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균(광일)
윤덕균(광일)

[원불교신문=윤덕균] 종교의 시작은 ‘만사가 정당하게 귀결된다’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 틀린 것이 아니냐는 의문에서 시작됐다. 유대교는 기원전 15세기 애굽의 피라미드 축성에 동원된 자신들의 노예생활에 대한 사필귀정의 의문에서 시작됐고, 브라만교 역시 천시 받는 하층 카스트들의 사필귀정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했다. 여기에 대한 해답을 정산종사는 법훈편 26장에서 “사필귀정(事必歸正)보다는 정할 정(定)자 사필귀정(事必歸定)이 옳다”고 말했다. 만사가 정당하게 귀결되기보다는 정해진 대로 귀결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결과를 누가 정하느냐’에 따라 불교계와 기독교계로 갈라진다. 기독교계에서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언, 16:9)” 즉 하느님이 정한 대로 이뤄진다고 한다. 불교계는 인간의 삶이나 행위를 주로 행위자 자신의 전생 업에 의한 동기론으로 설명한다. 이것이 인과론이다. 물론 기독교(갈라디아서, 6:7)에서도 “심은 대로 거둔다”는 인과응보를 말한다. 

브라만교의 인과론
브라만교의 인과론은 카스트 제도의 설득 논리에서 나왔다. 기원전 20세기경 인도를 정복한 아리안족은 원주민인 드라비다족을 통치하기 위해서 카스트 제도를 만들었다. 상류 카스트인 아리안족은 피지배 민족인 하층 카스트에 대한 통치 수단의 설복 논리로서 “현생의 고해는 전생의 업보”라고 하는 숙명론적 인과론을 전개했다. 그러므로 하층 카스트의 고해를 자업자득의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의 인과론
불교의 인과론은 브라만의 숙명적 인과론에 반해서 “현생의 선업에 의해 후생에는 하층 카스트도 상류 카스트로 진화할 수 있다”는 미래지향적인 진화론적 인과론이다. 
〈과거현재인과경〉에 의하면 모든 인(因)은 연(緣)을 매개로 해 과(果)를 맺게 되고, 모든 과는 보(報)를 낳는다. 보는 다시 인에 연속되고, 일체의 존재는 이 인과의 계열 가운데에 있어서 하나라도 독존해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일체의 우연도 없다. 정업은 난면이다. 다만, 과보의 시차가 있을 뿐인데, 〈삼세인과경〉은 현생의 행위에 대한 과보의 시차에 따라 (1) 과보를 현생에서 받는 순현업(順現業), (2) 다음 생에서 받는 순생업(順生業), (3) 다음 생 이후에서 받는 순후업(順後業)의 삼시업으로 대별(크게 구분하여 나눈다는 뜻)한다. 

이 삼시업의 전형적인 예가 월명암 주지스님 이야기다. 어느 날 주지 스님이 포수에 쫓기는 멧돼지를 숨겨주고, 멧돼지를 찾는 포수에게 전생 일을 들려줬다. “한 지관이 굶어 죽게 돼, 벌초를 하는 총각에게 탁발을 청했다. 그러자 총각은 밥 대신 지관을 발길질 해서 죽였다. 지관은 죽어 독사가 돼서 총각을 물어 죽였다. 독사에 물려 죽은 총각은 멧돼지가 됐다. 멧돼지는 뱀이라는 뱀은 모두 잡아먹었다. 그 후 독사는 죽어 사냥꾼이 됐고 멧돼지만 보면 죽였다. 이것이 당신과 멧돼지의 전생이다.” 이 삼시업의 전형적인 예에서 인과의 반복성이나 정업의 난면성은 이해가 되는데, 지관이 독사가 되고 사냥꾼으로 변신하는 과정과 총각이 멧돼지로 태어나는 과정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에 대한 해답이 원불교의 인과론이다.
 

원불교의 인과론
근본적으로 불교의 인과론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원불교의 인과론은 ① 음양상승의 인과론 ② 순현업 중점 인과론 ③ 찰나 인과론으로 요약된다. 

① 음양상승의 인과론: 불교의 인과론에 유교의 〈주역〉, 도교 〈음부경〉의 음양상승의 도가 합해진 인과론이다. 〈대종경〉 인과품 1장에서 “우주의 진리는 원래 생멸이 없이 돌고 도는지라, 가는 것이 곧 오는 것이 되고 오는 것이 곧 가는 것이 되며, 주는 사람이 곧 받는 사람이 되고 받는 사람이 곧 주는 사람이 되나니, 이것이 만고에 변함없는 상도니라”고 밝혔다. 곧 원불교의 인과론은 〈정전〉 참회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음양상승의 도를 따라 선행자는 후일에 상생의 과보를 받고 악행자는 후일에 상극의 과보를 받는’음양상승의 인과론이다. 음양상승의 도는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직선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순환하며 흘러간다. 하루도 밤과 낮, 1년도 춘하추동, 일생도 생로병사 등이다. 

우주도 이와 같이 춘하추동이 존재한다. 그때마다 양과 음, 갑과 을, 강자와 약자가 순환한다. 예를 들면, A가 양지에 있을 때 갑으로서 갑질을 했다. 그런데 음양상승의 도에 따라 양지가 음지가 되면, A는 을이 되고 갑질에 대한 과보를 받는다. 이것이 원불교의 음양상승의 인과론이다. 사례로 H 장관이 있다. 전 정권에서 검찰총장의 측근으로 몰려 반부패강력부장에서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등으로 4번의 좌천을 경험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면서 법무부장관이 됐다. 전 정권과 현 정권의 음양이 교체하면서 갑과 을이 순환이 성립된 것이다.

② 순현업 중점 인과론: 불교의 인과가 순생업과 순후업의 관점이라면 원불교의 인과는 당대에 인과가 성립되는 순현업에 중점을 둔 인과다. 소태산 대종사는 인과품 31장과 33장에서 현대는 순현업의 시대임을 예시한다. 원불교에서 소중히 하는 인과는 먼 피안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이곳, 이 사람, 이 일, 이 하루, 이 회상 등 차안의 인과다. 

③ 찰나 인과론: 정산종사(한 울안 한 이치에 제1편 법문과 일화 2.심은 대로 거둠 3절)는 찰나 인과론을 말했다. “인과를 전생, 이생, 내생의 삼세로만 볼 것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로 보아야 한다. 찰나 전은 과거요, 찰나는 현재요, 찰나 후는 미래다. 벽에다 공을 던지면 바로 자기에게 돌아오고 하늘에 침을 뱉으면 즉시 제 얼굴에 떨어지는데 인과도 이와 같은 것이다.” 

찰나 인과론은 원불교의 현대적 감각을 입증한다. 지금은 바로 초스피드 시대다. 현재의 광속시대는 과거의 음속시대보다 1백만 배 빠르다. 1980년까지 구리선을 통해 아날로그 신호를 초당 1쪽 정도를 전달했다. 지금은 광섬유 디지털 신호로 초당 9만 권의 백과사전을 전송한다. 이러한 초스피드 시대에는 인과도 찰나적일 수밖에 없다. 찰나 찰나가 인과의 연속이다. 찰나 찰나에 혈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부처님도 <사십이장경> 38장에서 “사람의 목숨이 숨 한번 쉬는 사이에 있다” 며 찰나 인과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한양대학교 명예교수·중곡교당

[2023년 1월 9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