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 늘었으나 노동자 아닌 고소득자·기업의 주머니로
경제 수준대비 국민 행복 수준 낮고 행복 불평등 수준 높아
‘기생충’의 폭우·‘오징어게임’의 규칙·‘더글로리’의 복수

[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머슴을 키워가 등 따숩고 배부르게 만들면 와 안 되는 줄 아나? 지가 주인인 줄 안다”(진양철)
“가난한 사람들은 매일매일 더 끔찍한 속도로 가난해질 겁니다. 가난엔 복리 이자가 붙으니까.”(진도준)

JTBC의 ‘재벌집 막내아들’은 여러모로 화제였다. 무려 26.9%라는 놀라운 시청률을 견인한 것은 단지 신들린 연기 때문만이 아니다. 재벌의 전형적이면서도 탐욕적인 속살을 까발리며, 환생을 통해 복수하는 영웅 서사에 우리는 열광했다. 더구나 줄거리는 과거에 바탕했으나, 실은 대한민국의 현재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바로 ‘불평등’의 현주소다. 

저임금의 주홍글씨, 고졸·여성·비정규직
한때 대한민국이 ‘불의’를 말했다면, 이제는 ‘불평등’이다. 최근 회자되는 통계들의 뚜렷한 특징은, 바로 이 세상이 얼마나 불평등한지를 말한다는 것이다. 

먼저 노동에 관련한 숫자들을 보자.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2020년 기준 41,960달러로 OECD 평균인 49,165달러에 못 미친다. 반면 노동시간은 가히 압도적으로, 2021년 대한민국 연간 근로시간은 OECD 평균보다 200시간 많은 1,915시간이다. 종합하면, 한국인은 1년에 1개월하고도 며칠을 더 일하는데, 연 9백만원, 즉 월급은 76만원 적게 받는다.

많이 일하고 적게 번다고 꼭 불행한 것은 아니다. 고통은 불평등에서 온다. 44.5%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낮은 질의 노동을 하며 고용불안 속에 산다. 임금의 불평등도 뚜렷해, 대졸과 고졸의 임금격차는 커졌다. 여성과 비정규직은 저임금의 주홍글씨다. 지난해 월 평균임금이 여자(222만원)는 남자(342만원)의 65%로, 그 격차는 압도적인 세계 1위다. 또한 비정규직(191만원)은 정규직(356만원)의 53.7%에 불과했다. 남자 정규직 임금 399만원을 100이라 보면, 여자 비정규직 임금인 155만원은 고작 38.8%다. 
 

출처: ‘「KOSTAT 통계플러스」2022년 겨울호 ‘한국인의 행복, 무엇을 해야 할까?’
출처: ‘「KOSTAT 통계플러스」2022년 겨울호 ‘한국인의 행복, 무엇을 해야 할까?’

실질임금 감소와 가계부채의 위협
2022년, 세계는 실질임금이 감소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지난 20년간 이러니저러니 해도 평균 2% 남짓 올랐었고, 세계금융위기 때도 1%는 늘었다. 허나 이번에는 진짜, 빚갚거나 먹고 살 임금이 0.9% 줄어든 것이다.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다. 회복세였던 지난해는 실질노동생산성이 증가했는데도 실질임금은 하락했다. 노동자들이 기여한 것은 늘고 받은 것은 줄었다는 뜻이다. 그 거대한 이윤은, 몇 퍼센트의 고소득자, 혹은 기업에게로 갔다.

더구나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세계 36개 주요국에서 가장 많다. 지난해 1분기 한국의 국내총생산(GDP)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4.3%였다. 홍콩(95.3%), 미국(76.1%), 일본(59.7%)보다 월등히 높으며, 심지어 부채 증가 속도도 1위다. 이 상황에서 금리가 올라가니 집집마다 ‘부채’라는 시한폭탄이 째깍댄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숫자 하나에 목매는 우리와는 달리, ‘그들이 사는 세상’도 존재한다는 것을. 

대한민국에서 월 1억 이상의 급여생활자는 3,738명. 허나 진짜 격차는 소득보다 자산에서 나타난다. 10억원 이상 금융자산을 가진 인구는 42만여 명으로 이들은 2021년 말 전년대비 14.7% 더 부자가 됐다. 경제불황이라는데 샤넬과 롤렉스 매장 앞에는 줄이 긴 건 이 때문이다. 루이비통은 한 해 1조원, 벤츠는 5조원의 원화를 벌어간다. 자산이 계속 불어나는 그들은 경제불황을 실감할 수 없다. 경기가 안 좋은 것이 아니다. 격차가 벌어진 것이다.    

사실 불평등은 오랫동안 경제발전의 필요악으로 취급됐다. 상위층 소득이 늘어나야 투자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순양(기업)의 이윤을 진양철(회장)에게 몰아줘야, 이를 바탕으로 새 사업을 펼쳐 외화도 벌고 일자리도 만든다는 요지다. 하지만 사실은 달랐다. 세계적으로 소득분배는 악화되는데 생산투자비율은 줄어들었다. 재벌가의 천문학적인 소득은 투자가 아닌 금융상품으로 쏠렸다. 이는 드라마에도 잘 담겨있다. 진화영(재벌 2세)은 입점업체대금 1,400억을 주식에 몰아넣었고, 미래에서 온 진도준(재벌 3세) 역시 일자리 창출이 아닌 주식 투자로 돈을 벌었다.
 

아주 가깝고 누구나 공감하는 불평등
물질적 불평등은 정신적 불평등을 야기한다. 2022년 12월, 통계개발원은 국민의 행복과 불평등에 대해 조사했다. 우리나라는 경제 수준 대비 국민 행복 수준은 낮고, 행복 불평등 수준은 높다. 행복하지 않은데다, 그 행복마저도 불평등하다는 의미다. 대한민국의 수식어 중 하나인 ‘자살률 연속 1위’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불평등은 아주 가깝고 직설적이며 누구나 느낄 수 있다. 불평등을 소재로 한 콘텐츠들이 세계적 공감을 얻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영화 ‘기생충’의 백미는 ‘폭우’로 불평등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기택의 집을 휩쓸며 모든 것을 앗아간 비는 박 사장네에서 맑고 상쾌함을 선물했다. 이 기후불평등은 실제로 전 세계가 겪고 있는 문제다.

‘오징어게임’은 모든 불평등을 배제한 채 게임을 끌어가는 방식이 흥행 포인트였다. 규칙 앞에서는 상우의 학벌, 일남의 나이, 알리의 인종, 새벽의 출신이 아무런 힘도 약점도 되지 않는다. 한류열풍을 이어가고 있는 ‘더글로리’는 직접 겪었거나 목격했을 불평등을 전면적으로 다룬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승승장구해온 ‘있는 집 자식들’을 향한 복수를, 많은 이가 한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다.

2023년의 대한민국에 만연한 불평등에 완전히 초연할 수는 없다. 언제까지 ‘물질에 정신이 못 따라온다’고 한탄만 할 것인가. 올해의 숫자가 비록 비관적일지라도, 우리에게는 언제나 위기를 넘어서는 저력이 있었다. 진양철 회장은 위기에 이렇게 말했다. “난리 났다꼬 장사꾼이 아랫목만 지키고 있으믄 궁디 썩는다.” 

법을 전하는 우리라고 다를 것인가. 심지어 우리는 강자와 약자의 ‘진화’라는 답까지 쥐고 있다. 불평등의 시대, 지금 세상이 이 법을 절실히 원한다.

[2023년 1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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