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대부분 실수를 범한다. 유기체적인 조직, 혹은 교단도 크고 작은 실수를 피해가지는 못한다. 이 실수는 전 과정과 후 과정의 처리결과에 따라 그 파장을 달리한다. 별것 아닌 실수가 눈덩이처럼 뭉쳐 조직의 존폐를 위협하기도 하고, 중대한 실수가 오히려 구성원들의 단합을 이끌어냄으로써 전환의 동기를 부여하기도 한다.

교단에도 108년 역사를 지나오면서 몇 번의 실수가 있었다. 가혹하리만큼 무거운 실수를 전 구성원들이 똘똘 뭉쳐 헤쳐 오면서 교단발전의 동력으로 삼기도 했지만, 간혹 사소한 실수임에도 책임회피와 남 탓 공방을 벌이면서 실망과 좌절을 안기기도 했다. 어쨌거나 실수는 가능한 줄이는 게 조직이나 개인에게 이롭다.

실수는 대체로 오류에 뿌리박고 있다. 그릇 되어 이치에 어긋남을 뜻하는 오류는 잘못된 연산 작용 혹은 판단 논리의 잘못이 원인이기도 하다. 즉, 한정된 정보로 전부를 결정하려하거나 제한적인 환경의 극복 없이 전체를 섣불리 재단하려 함으로써 생기는 오류가 실수를 낳는다.

가령, 미래의 일을 계획하면서 30대 40대가 생각해야 할 일을 60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의 오류가 그렇고, 교화회복을 논하면서 행정적 사고로 굳어진 중앙총부가 일선 교당과 소통 없이 현장교화를 논한다면 탁상행정의 오류를 피해가기 힘들다. 또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직시하지 않은 채 지방에서 그 전반을 우물쭈물 판단․보류하는 결정오류 역시 위험스럽다.

이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교단 역시 작은 조직일지 몰라도 원불교 안에도 정치․경제․사회․문화가 복합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간과하는 오류다. 그러기에 사회와 밀접한 교화일선은 중앙총부의 행정기능과 경제구조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고, 교단 경제에 오래 투신한 산업계 근무자는 교화일선이나 문화계를 알기가 어려우며, 문화계 종사자에게 경제를 묻는다면 그 구조를 이해하는 것조차 버거울 수 있다. 

그런데 우리 교단은 이 모든 체제를 획일적으로 순환시키려는 오류를 범하고 있지 않은 지 돌아봐야 한다. 그동안 교단사가 각기 다른 특성을 띄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교단현장과 교감 없이 행정적으로만 처리되어온 관행의 오류로 인해 정체되거나 퇴보되었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중앙을 중심으로 교단사가 일방적으로 논해지는 결정구조가 위험스러운 이유이다.

정말 복잡다단해지고 세밀하게 연결된 사회구조다. 현대의 초연결 사회는 종교의 구태의연함을 비웃듯 비껴가려 한다. 지자본위를 바탕 삼은 전문성의 기반 없이는 적자생존의 현 사회를 감당해 내기가 쉽지 않다. 지금까지의 우리가 방관․방치한 실수를 줄이고, 오류를 잡는 길은 서로간의 소통이다.

[2023년 1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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