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무님은 이장님’은 장연광 원로교무가 퇴임 후 고향으로 돌아가 겪은 일들과 농촌의 풍경을 담는다. 매월 1회, 진전(참밭)마을 이장으로서 마을 발전과 농촌교화를 위해 노력하는 정겹고 생생한 이야기로 독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1. 퇴임 후 첩첩산중 참밭(진전) 고향 앞으로
원기104년(2019) 퇴임 직후, 바로 참밭 고향 앞으로 행진했다. 원래 농촌 태생인 내가 아무런 애로사항 없이 농촌에 정착한지 벌써 5년째다. 고향인 장수군 산서면 진전마을은 물이 맑고 공기가 구수하다. 자자손손 흙과 더불어 해가 뜨면 논과 밭에 나가서 일하고, 해가 지면 초가삼간에 들어와 하루를 마치는 전형적인 한국농촌이다. 60년 만에 돌아와 보니 새삼 ‘이야, 마을이 이렇게 넓었구나!’를 느끼며 시야가 탁 트이는 기분을 만끽한다.

감탄하며 돌아온 마을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마을의 주민들과 친밀한 관계를 위해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개인적 면대면 대화와 집단으로 주민들과 공동식사를 하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한 명 한 명 건강 안부와 자녀들의 이야기, 애로사항을 들었다. 집단 만남 때는 마을 이야기와 농사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기도 했다.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직도 때 묻지 않은 깨끗한 농촌이 여기에 있구나’ 하는 감상이 든다. 하늘을 우러러 모시며 땅에 의지하고 순박하게 살아온 농민들 앞에 내가 오히려 오염 덩어리 같아 한동안은 고개를 숙인 채 살았다. 진전마을은 새마을운동 이후 더 이상 개발한 흔적이 거의 없는 ‘참밭(眞田)’이다. 이곳에서 ‘참살이’로 살지 않으면 인생이 헛될 것만 같았다.
 

2. 고령화 마을에서 귀농, 귀촌 가구와 조화를
1960~1970년대 초에 새마을운동의 정신인 자주·자립·협동을 통해 한국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초가지붕을 없애고 마을 길을 넓히며, 농가 소득을 올려 잘살아 보자는 기치를 걸고 온 국민이 하나로 나아가는 농촌 발전의 사회운동은 그 위상을 떨쳤다.

그 당시 마을의 농가 수는 최고 40호까지 육박했으며, 면민 체육대회 때는 나와 일규, 익환, 덕주, 형규, 진열 등이 배구선수로 나가 시합에서 1등을 차지할 정도로 청소년이 많았던 위풍당당한 마을이었다. 이후, 1980년대부터 산업화·도시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 위풍당당하던 청소년들은 한정된 땅에서의 기대를 거두고, 산업 현장으로 나가 생계를 유지하게 됐다. 나는 당시 안산 장인중 대봉도의 안내로 익산에 와서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고향에 남은 우리의 부모님들은 해오던 농업을 중심으로 계속 논밭을 일구면서 살아와 현재에 이르렀다. 그러니 근대화의 물결로 의식이 열리기는 했어도 빈약한 공동체 의식구조와 몇몇 집의 불협화음은 여전하다. 현재 원주민은 14인이며 귀농·귀촌 가구는 11인으로, 마을에는 총 25인이 거주하고 있다. 이에 원주민과 귀농·귀촌인이 화합하는 공동체 의식이 매우 요구된다. 이 문제는 비단 우리 참밭뿐만 아니라, 전 농촌이 안고 있는 과제로 특별한 접근이 필요하다.
 

3. 하모니카 소리가 울려 퍼진다
고향에 내려온 첫 해, 어머니께서 생시에 심고 가꿔 맛있게 먹었던 추억 때문인지 옥수수를 심고 싶어졌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파종 시기가 늦은 때였다. “아이고, 늦었네!” 하니까 옆에서 금산댁님이 “아니지. 지금 심으면 추석에 먹지”라고 말했다. 정신이 번쩍 났다. 그 말을 듣고 늦은 옥수수를 심었다. 덕분에 잘 가꿔 맛있게 먹었다.

그 경험을 토대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무주의 대학 옥수수 종자를 사비로 구매해 마을 주민들에게 100알씩 나눠줬다. 그리고 무주종합복지관에 근무하고 있던 이성구 교무에게 재배 방법을 문의했다. 이 교무는 “옥수수가 강아지 꼬리만 할 때 진딧물 약과 비료를 주고, 멧돼지 피해를 막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민들이 씨앗을 받아 가꿔 익혀가는 동안 문제가 하나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야생동물, 멧돼지들이었다. 

이 녀석들이 옥수수 농사를 망칠까 싶어 나는 밤마다 불침번을 서기도 했다. 삽자루에 다른 헌 삽을 매달아 전봇대를 내리치며 쇳소리를 내고 쩌렁쩌렁 외장(혼자서 고래고래 떠든다는 뜻)도 쳤다. 덕분에 스트레스도 싹 풀리고, 멧돼지들은 싫어하는 쇳소리를 듣고 모두 도망갔다. 일석이조였다.

그렇게 정성을 다한 덕택으로 옥수수는 결실을 잘 맺었다. 주민들이 함께 옥수수로 불어대는 하모니카 소리가 마을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맞지 않는 음조로 불어대는 그 소리는 메아리로 되돌아오면서 천지자연과 합주를 이뤄내기도 했다.

첫 해에 시기를 못 맞추고 서투른 솜씨로 꾸린 못난 옥수수 꾸러미를 받아준 이들이 있다. 모두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2023년 1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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