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적이지만 종교적이지는 않은(Spiritual But Not Religious)’ 종교인구가 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종교가 대체로 일정한 제도와 형식을 고집하며 폐쇄성과 배타성을 기반으로 한다면, 영성적인 것에는 자기에 충실하면서도 필요에 따라서 종교 울타리를 쉽게 넘나드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기에 일각에서는 종교의 미래가 도그마와 교리에 따른 중앙집권적 체제에서 영성에 따른 개인 중심주의로 옮겨갈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는 대체로 선진국 종교권에 한정된 현상이기도 하다.

원불교는 이웃종교에 관심이 많다. 이제 100년을 갓 넘긴 신흥종교로서 이웃종교의 제도와 형식은 기성종교로 발전해가는 교단의 발판이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은 원불교 태생에서부터 유불선 삼교를 통합한 신흥종교로 널리 알려졌다. 또 현대 원불교에서는 교리적으로는 불교 중심이면서, 정서적으로는 유교적이며, 수행적으로는 도가적이고, 제도적으로는 천주교에 가깝고, 태생성에서는 천도교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곧 여러 종교를 수용하는 데 거리낌이 없으며 진취적이고 실험적인 모습으로 비춰지는 원불교의 긍정적 측면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원불교에 대한 평가는 또 다르다. 한국사회에서 4대 종교라는 타이틀로 다방면에 걸쳐 힘에 부치는 활약을 펼치지만, 기성화로 인한 개척정신은 희미해지고 자기 안일에 빠져든 모습 또한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짧은 종교역사 속에서도 이룬 성과가 폭발적이기에 쉽게 자기도취에 빠져 변화에 무기력하고, 어느새 기성종교보다 더 폐쇄적인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신흥종교의 창의성은 사라지고, 빈곤한 자기문화에 집착하며, 무사안일이 팽배하다면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에 최근 교단의 화두가 되고 있는 혁신에 있어서도 남이 해주기만을 바라고, 그 대상은 언제나 나 이외의 모두라고 설정하며, 혁신에 대한 필요성만 있지 기대를 갖지 않는 모순이 우리 내부에서 거품처럼 일고 있는 것도 걱정이다. 특히 종교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포괄적 조망 없이 내부문제로만 집착하는 것 역시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면이다.

최근, 영성을 좇는 종교인들의 변화가 무섭다. 자기 종교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이웃 종교의 영성적인 것을 두루 섭렵하고 그것들을 모아 깨달음의 방편으로 삼는 모습에서 융합의 창의성이 엿보인다. 신앙은 기독교적이며, 해석은 불교적이고, 활동은 신흥 종교적이며, 수행은 모든 종교의 수련법을 넘나든다. 도구들 또한 죽비, 좌종 등 이웃 종교의 불전도구를 가리지 않고 활용한다. 비로소 종교가 특정 교단의 소유물이 아닌 영성으로 향하는 모든 사람들의 공유물이 됐다. 탈종교 현상이 통종교로 진화하는, 원불교가 바라는 종교시대가 도래했다.

[2023년 1월 16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