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반백주년기념대회 사업으로 세워진 (구)정산종사성탑.
개교반백주년기념대회 사업으로 세워진 (구)정산종사성탑.

[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원기47년(1962) 1월 24일 정산종사가 세수 63세로 열반에 들자 성해를 다비한 후에 송대에 임시 봉안했었다. 이후 원기56년(1971) 10월 7일 개교반백년 기념사업 중 하나로 정산종사성탑을 영모전 서쪽(현 원불교역사박물관 정문 쪽)에 건립해 탑신에 성해를 봉안했다. 정산종사 열반 후 9년 만에 성탑에 모신 것이다. 

현재 정산종사성탑의 위치는 소태산대종사성탑 오른편에 모셔져 있지만, 당시에는 지금의 박물관 자리에 정산종사성탑이 있었다. 또한 개교반백년사업의 일환으로 건립했던 그때의 성탑은(현재의 성탑이 아님)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했던 관계로 아쉬움이 많았고, 탑의 양식도 성해를 모셔 후대에 남길만한 역사성과 상징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로 인해 원기68년(1983) 11월 6일 제1회 위원총회에서 종합사업계획에 정산종사성탑의 정비사업을 채택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정산종사성탑을 이전 보수하기로 결의했다가, 원기71년(1986) 3월 상임위원회에서 탑의 보수보다는 다시 건립하기로 결의했고, 이를 제107회 수위단회에서 승인받아 탑의 건립부지를 지금의 위치로 확정했다.
 

원기73년(1988) 10월에 재건립한 정산종사성탑
원기73년(1988) 10월에 재건립한 정산종사성탑

원기73년(1988) 교단 창립 제2대 및 소태산대종사탄생 100주년 성업봉찬사업으로 전통탑파 양식으로 새롭게 성탑을 조성해 10월 15일 (구)정산종사성탑을 해체하고, 동월 20일에 성해 이안봉고식을 올렸다. 

이 성탑의 높이는 18척(545.45㎝), 탑 지대석 일변은 10척(303㎝), 주위면적은 61평(201.6㎡)으로 사대경륜단 위 원석에 성해와 함께 정산종사성탑중건기와 〈원불교전서〉를 모셨다. 기단의 네 기둥은 사대경륜을, 원석 주위 팔방 석주는 팔방의 중앙임을 상징했으며, 3층 옥개석은 삼동윤리, 그 위의 법륜대와 여의주는 여래의 상전법륜을 상징한 것이다. 그 뒤로 병풍석에 탑명과 부조, 화해제우상과 삼동윤리상, 그리고 게송과 정산종사의 친필 영주를 새겨놓았다.

특히 병풍석 중앙은 대산종사가 지은 탑명이 새겨졌으며, 그 좌우 통판에 부조의 화해제우상과 삼동윤리상을 붙여 소태산 대종사가 친히 정산종사를 맞은 역사와 삼동윤리로써 소태산 대종사의 경륜을 이어 펴는 역사를 드러냈다.

정산종사성탑앞에는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60년대 말까지만 해도 학림사생들이 애용했었다. 이후 학림사가 이전한 후로 관리가 되지 않아 오염되고 메워야할 처지였는데, 정산종사성탑중건과 더불어 조경공사가 이뤄질 때 다시 살리자는 의견이 있었다. 때문에 화강석으로 정자 우물을 만들고 자동펌프를 연결해 연화대에서 물이 솟아나도록 설치했으며, 바닥은 호박돌로 마무리해 성심천(聖心泉)이라 이름했다. 

또한 정산종사의 구 성탑은 파기하지 않고, 현재 변산 원광선원으로 옮겨졌으며, 초기 모습 그대로다. 현재 재가출가 교도들 중에는 옛 정산종사의 성탑에 대해 모르는 이들이 많으며, 변산 원광선원의 구 정산종사성탑을 알아보는 이가 드물다.

[2023년 1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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