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있었던 것들의 낯선 조합, K-퍼포먼스

밴드 ‘씽씽’의 영상을 본 60대 엄마는 힘겹게 두 가지를 물었다. “얘네가 하는 게 국악이냐 뭐냐” 그리고 “쟤는 남자냐 여자냐”. 
‘파격’으로밖에 설명되지 않는 15분짜리 영상. 사실 그들이 하는 것은 민요이며, ‘쟤’로 지칭되는 보컬 이희문과 신승태는 남자다. 빨간 폭포수 머리에 은색 가발, 반짝이는 원피스 등의 모습만으로도 신기한데, 이러고들 국악이라니? 이 부조화에 한 번 보고, 그제야 음악이 들려 두 번 본다. 기타와 베이스, 드럼에 얹혔으나, 꼭 우리가 익히 들어온 민요 그대로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유튜브 영상 캡쳐
출처: 한국관광공사 유튜브 영상 캡쳐

한류의 선봉에 선 K-퍼포먼스
이 요상한 공연을 과연 누가 볼까. 놀랍게도 세계가 더 먼저, 더 많이 봤다. 애초 이 영상은 모든 뮤지션들의 꿈 미국 공영라디오 NPR의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에 초대돼 만들어졌다. 아시아에서는 최초이자, BTS보다도 무려 3년이나 빠른 대기록이다. 세계가 제대로 눈독 들인 이 ‘한국의 퍼포먼스’들이 이 영상의 시대 한류의 선봉에 서있다.

씽씽의 활약은 국내에 기분 좋은 충격을 줬다. 사실 이 보컬들은 국악계에서 이미 잔뼈가 굵은 소리꾼으로, 이희문은 무형문화제 경기민요 이수자, 신승태는 과천전국경기소리경창대회 명창부 대상 수상자다. 허나 이들은 단지 노래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음악에 더해, 의상과 무용과 연출과 스토리를 하나로 꿴 퍼포먼스(Performance)를 만드는 ‘퍼포먼서’인 것이다. 알고보니 씽씽의 드랙퀸(과장된 여성성을 연기하는 남자의 퍼포먼스)같은 복장도 실은 성정체성을 오가는 ‘박수무당’에서 따왔단다.

이제 문화는 여러 장르의 총체이며, 하나의 덩어리다. 언제 어디서나 손 안에서 완성도 높은 콘텐츠를 즐기는 시대, K-퍼포먼스는 어디까지 왔을까. 씽씽이 민요를 세계화했다면, 다음 주자 이날치는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불세출의 명곡 ‘범 내려온다(2020)’로다.

정장에 투구를 쓰고, 두루마기에 선글래스를 쓴 무용수들이 자하문터널, DDP 등에서 춤을 춘다. 현대적인 반주에 판소리, 막춤인 듯 쉽고 흥겨운 무용까지. ‘조선힙스터’ 이날치와 ‘조선도깨비’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한국관광공사와 만든 서울 홍보영상은 일순 대한민국에 이날치 열풍을 몰고 왔다.
 

노래를 넘어 의상, 안무, 연출 종합한 퍼포먼스의 시대  
세계에 한국 알리며 국내 문화 풍성케 하는 조선팝 대세
홍보영상, 보여주고 싶은 곳 아닌 '보고 싶어하는 곳' 담아 히트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유튜브 영상 캡쳐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유튜브 영상 캡쳐

무심한 한국 일상이 댄스를 만나는 컨셉
이 캠페인을 이끈 서경종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진짜 공유가 되는 바이럴’을 만들기 위해 4가지 컨셉을 제시했었다. 시몬스 광고처럼 ‘이상하게 만족감을 주는’ 오들리 새티스파이 비디오(Oddly Satisfying Video)와 K-웹툰과의 콜라보, 한국을 즐기는 매뉴얼, 그리고 최종 선정된 무심한 한국의 일상이 댄스를 만나는 컨셉이다. 춤꾼들이 신명나게 춤 추는 곁에서 자갈치시장의 아지매들은 생선을 팔고 낙산사 스님들은 빗자루질을 하며 교복입은 고등학생은 따릉이를 타고 지나간다. 말로는 ‘이게 뭔가’ 싶지만 영상은 신나고 재밌고 쿨하고 힙하다. 단숨에, 떴다.

“다 똑같은 비빔밥, 김치, 한옥마을은 피하려 했다”고 말하는 그는 ‘어디서 본듯한 기시감’을 적극 활용했다. 홍보 장소를 지자체 홈페이지가 아닌 인스타그램에서 찾아냈다. 영화 <기생충>에 나왔던 곳, <미스터 선샤인> 촬영지, BTS 앨범 재킷 촬영지 같은 곳을 보여주니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보여주고 싶은 곳’이 아닌, ‘보고 싶어하는 곳’을 엮어냈기 때문이다. 

씽씽과 이날치는 국내 미디어와 콘텐츠 분야의 판도도 바꿨다. 인천공항 입국장 전통문화 미디어존 홍보 영상으로 국악 반주 위에 ‘홀리뱅’의 힙합 댄스가 얹혀졌다. JTBC는 ‘풍류대장(2021)’을 만들어 국악과 대중음악의 크로스오버를 안방까지 배달했다. 우승팀인 서도밴드는 ‘조선팝’이라는 장르를 세상에 단단히 점찍었다. 씽씽에서 이날치로 이어졌던 K-퍼포먼스의 계보를 조선팝이 잇는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심장이 먼저 꿈틀대는 전통가락을 듣기 좋은 세련된 선율에 얹히니, 귀와 눈이 쉽고 즐겁다. 소리의 고장 전북 전주시가 빠르게 움직여, 그해 10월 첫 회에 이어 지난해 8월과 10월에도 조선팝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출처: NRP Music 유튜브 영상 캡쳐
출처: NRP Music 유튜브 영상 캡쳐

우리 것을 포기하거나 양보하기보다
최근 씽씽의 이희문과 이날치가 컴백하면서 서도밴드와 두번째달, AUX, 이상 등 크로스오버, 콜라주, 퓨전으로 불렸던 팀들이 ‘조선팝’으로 대동단결하는 모양새다. 세계에 한류를 알리는 ‘바깥일’과 아이돌 일색인 케이팝 시장에 긴장감을 주는 ‘집안일’까지 두 마리 토끼 귀를 움켜쥐고 있다. 이 비결은 ‘이미 있었던 것들의 색다른 조합’이다. 씽씽의 노래는 모두 경기민요와 서도민요이며, ‘범 내려온다’는 판소리 ‘수궁가’의 대목 그대로다. 우리 것을 포기하거나 양보하기보다, 적극적으로 앞세워 트렌드와 섞어낸다. 우리 것을 연마하고, 세상이 원하는 것을 읽으며, 어떤 장르라도 분별없이 받아들이는 일. 지금 K-퍼포먼스는 이렇게 세상에 한국을 알리고 있다. 

우리라고 가만 있을 수 없다. 원불교 서울교구도 원기108년 대각개교절 영상으로 조선팝 한 판을 펼친다. 서울성적지와 원불교소태산기념관 등에서 퍼포먼스를 펼칠 국악과 케이팝, 래퍼, 댄서, 합창단, 사물놀이 팀을 절찬 모집 중이다. ‘범 내려온다’ 영상은 단 1분 36초로 세상의 귀와 눈을 사로잡았다. 지금 다시 돌아보는 말씀, ‘풍류로써 세상을 건지리라’. 이 세상에 법도 흥도 내리게 할 ‘원불교 조선팝’을 두근거리며 기대해본다.

[2023년 1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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