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마음이 곧 ‘통일의 힘’

[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코로나19기간 동안 더 고용되고, 더 많이 벌며, 더 오래 일한 사람들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놀라지 마시라, 바로 북한이탈주민이다. 이 뜻밖의 사실은 2022 북한이탈주민 정착실태조사로 밝혀졌다. 2021년 56.7%이던 고용률은 59.2%로, 월평균 임금은 227.7만원에서 238.4만원으로, 근속기간도 31.3개월에서 35.3개월로 훌쩍 뛰었다. 그 팍팍했던 가운데 이룬 기적. 이 변화에는 3만3천8백명 북한이탈주민들을 위해 발로 뛰는 남북하나재단이 있다. 그리고 ‘탈북민들의 친정아빠’ 정인성 이사장(교무․원불교 평양교구장)이 있었다.
 

서해의 섬마을부터 강원도 황태 덕장까지
남북 민간교류의 가장 앞줄에서 평화를 일구어온 정인성 이사장. 2020년 제5대 남북하나재단 이사장 취임까지의 그의 이력을 줄 세우면 휴전선도 넘을 정도다. 통일부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평화문화재단, 한반도평화경제포럼에 한겨레중고등학교, 원불교 평양교구 등 그를 설명하는 말은 많고 많지만, 그를 이렇게 표현해본다. ‘북한을 100번 넘게 오간 남자’. 그는 ‘민간 쪽에서는 꽤 여러 번 일 것’ 정도로 선을 긋지만, 누구 말마따나 전생 인연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횟수다. 그 켜켜이 쌓여온 시간이, 지금의 그를 ‘만남에 진심인 현장형 리더’로 만들었다.

서해의 섬마을부터 강원도 황태 덕장까지, 정 이사장은 부지런히 탈북민들에게 달려갔다. 처음엔 경계하던 눈빛이 고향이며 꿈 얘기를 하는 동안 사르르 녹아 어느새 웃곤 했다. 어떡해야 더 잘 정착하고 더 잘 어울려 살 수 있을까. 두 마음 없이 오직 뒷바라지에 전념한 3년, 대한민국 탈북민들은 ‘진짜로 좀 더’ 잘 살게 됐다. 

“누구나 힘들 때 기대고 싶은 곳이 있지요. 고민도 얘기하고 투정도 부리다가 결국엔 힘을 얻어오는 곳, 남북하나재단은 우리 주민들에게 그런 친정집이고 싶습니다.”
 

코로나19에도 불구, 더 고용되고, 많이 벌며, 오래 일한 탈북민들
원불교 평양교구장, 북한 100번 넘게 오간 남북민간교류 전문가
전국 방방곡곡 탈북민을 찾아 어려움 경청해온 현장형 리더

지하철, 비행기, 앉는 자리가 기도처
그에게는 원불교가 친정집이다. 원기71년(1986) 출가해 38년에 이르는 교무의 삶. 그가 한반도 평화 쪽으로 걸음을 뗀 것도 20년이 훌쩍 넘었다. 원기85년(2000), 당시 문화사회부에 있던 이명신 원로교무가 그를 북한대학원으로 이끈 것이 이 길의 시작이었다.
우직이 걷자니 때론 외로웠으나, 그 가운데 그의 기도는 더욱 뚜렷해졌다. 오직 스승님의 전망과 혜안을 이루고자 정성을 다하다 보니, 차만 타면 기도하는 습관이 뱄다. 이웃과 교단을 넘어 국가 민족 세계를 아우르느라 기도를 하고 또 해도 모자랐다. 지하철이고 비행기고 그의 좌석은 기도처가 됐다. 그것이, 그의 무기이자 힘이었다.

“아침에 하이원빌리지에서 차를 타는 순간 기도를 시작하면 이사장실 문을 열며 끝납니다. 거기서부터는 남북하나재단 이사장으로서의 일을 시작하죠. 이 방 문턱을 넘는 순간 유념하려고 노력해왔어요.”

성직자이면서 공직자였던 지난 3년, 그는 그 반듯하고 투명한 선을 지켜왔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누구보다도 엄히 스스로를 점검하고 돌아봤다. 탈북민이, 재단이, 남북이, 대한민국이 그를 통해 원불교를 본다. 그리 생각하니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으나, 또 한편으로는 선명했다. 종교인이기에 모든 정쟁이나 학연지연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임기 동안 남북하나재단은 눈에 띄는 성장을 이뤄낸다. 2021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 A등급을 받은 것. 재단 역사상 처음이자, 그해 17.6%만이 받았던 A등급을 받은 23곳 중 하나였다. 불공은 더 차분히 더 낮은 자세로 이어졌다. 이듬해까지 2년 연속 A등급이 나오자, 우리 안의 남북하나재단 위상도 확연히 달라졌다. 남북한 주민들이 어우러진 재단 직원 177명의 한 마음이 이뤄낸 결실이었다. 
 

정인성 이사장은 북한이탈주민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전국 방방곡곡 어디든 달려가 손을 맞잡았다.
정인성 이사장은 북한이탈주민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전국 방방곡곡 어디든 달려가 손을 맞잡았다.

3년간 단 하루도 벗지 않은 정복 셔츠
취임 날부터 단 하루도 정복 셔츠를 입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에게 원불교는 목에 걸린 훈장이자 얼굴과 가장 가까운 힘이었다. 그 어떤 종교보다도 남북화합과 통일에 진심인 우리에게, 그가 다정한 당부를 전한다. 

“남북관계는 정권이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만, 원불교는 교법대로 그 염원과 의지를 지켜가면 됩니다. 지금은 얼어붙었지만, 연평해전과 같은 위기도 우리는 넘어왔어요. 정산종사께서 ‘우리 마음에 미움이 사라지면 통일이 된다’고 말씀하셨죠. 우리 마음이 곧 통일의 힘입니다.”

언젠가 그는 평양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 백두산에 올랐다. 북쪽 사람들과 산을 내려와, 그 설록 속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지금도 생생한 꿈결같은 시간. 그는 어느 때가 되면 “오늘 점심은 백두산에서 먹자” 하게 될 거라는 희망을 품는다.

“우리 국민들은 원래 따뜻한 품성을 가졌습니다. 현장에서 보니, 탈북민의 성공적인 정착 뒤에는 밀어주고 보듬어주는 국민들이 있었습니다. 그 온기가 차별이나 무시를 넘어 우리 사회에 강처럼 바다처럼 흐르고 있는 거죠.”

그 물줄기를 트며 북한이탈주민들을 보듬어온 정인성 남북하나재단 이사장. 탈북민들이 더 가까이, 더 소중히, 더 수월히 녹아드는 하나된 대한민국. 그것이 그가 오롯하게 서원과 기도로 이뤄내는 우리 모두의 낙원이겠다.

[2023년 2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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