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무슨 일이에요?
2월 6일 새벽, 튀르키예 남부 카라만마라에서 한 아이가 구조됐다. 강진으로 건물이 완전히 무너졌으나, 내내 잠들어 있던 아이는 건강했다. 눈을 비비던 아이는 뭔가 이상한 낌새에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구조대원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좋은 아침이야.”


대지진으로 모든 것이 사라진 잿빛 도시, 튀르키예와 시리아로부터 세상은 또다른 기적을 기다린다. 17시간 동안 쓰러진 벽 아래에서 동생의 머리를 껴안고 있었던 누나, 56시간 동안 딸에게 모유를 먹이며 버틴 23세 엄마, 116시간 만에 구출된 임산부와 128시간 만에 발견된 두 살 아기. 이 기적에 우리는 울고 웃으며 희망을 아로새긴다.

가장 참혹한 현장의 가장 위대한 희망
사람이 일생동안 한 번이라도 심리적 외상(트라우마)을 겪을 확률은 50% 이상, 즉 둘 중 한 명은 재난으로부터 고통받는 당사자일 수도 목격자일 수도 있으며, TV나 유튜브를 통해 보는 것으로도 상처를 받을 수 있다.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도 진도 앞바다에, 이태원 거리에 우리의 상처가 남아있지 않은가.  

기적이 일어날 확률을 0.0003% 라고 한다. 물리학자 김상욱 박사는 기적의 확률은 “복권을 연속으로 다섯 번 1등할 가능성”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보이지도 않는 숫자는, 엄연히 존재하며 의미를 가진다. 우리의 슬픔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희망으로 바꾸는 기적. 간절한 기도와 선한 인과가 만드는 기적. 국경과 인종과 갈등을 넘어, 가장 참혹한 현장에서의 가장 위대한 희망이었던 기적을 돌아본다.
 

미세하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기적이 일어날 확률 0.0003%
칠레 광부 매몰, 봉화 광산, 태국 유소년 축구팀 동굴 고립 사고
모든 갈등 넘어선 인류애… 구조의 기적 지나면 구호의 기적으로

하늘에선 냉전이나 땅 밑에선 화합
지하 700m 아래 광부 33명이 매몰됐다. 2010년 8월 6일 칠레 대지진으로 구리 광산이 붕괴된 것이다. 칠레 정부가 “우리 기술력으로는 4달이 걸린다”고 발표하자 미국이 “우리가 하면 3달 이하로 낮출 수 있다”며 현장으로 날아왔다. 

손길은 이어졌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희망을 잃지 말라’는 뜻에서 직접 축복한 묵주를 보냈고, NASA는 땅 밑으로 내려보낼 특수음식을 가져왔다. 스티브 잡스는 최신형 아이팟을 내려보냈고, 1972년 안데스 비행기 추락사고의 생존자들이 구조현장을 찾아 용기를 북돋았다. 

구조 2달째, 전 세계의 관심과 자원봉사자들의 발길은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오랜 제반작업 끝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우물을 파던 기술자들이 투입됐다. 그리고 10월 14일, 드디어 33명의 광부들이 햇빛을 봤다. 매몰 69일만이었고, 비교적 건강한 상태였다. 

이 칠레 광부 매몰 사건은 인류 최고의 구조작전으로 불린다. 우주에서는 기술과 권력이 전쟁을 벌이고 있었지만, 지상에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함께 생명을 구했다. 눈치작전을 펼치던 각국과 과학자, 발명가들은 이 먼 나라 33명의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최첨단 기술을 공개했다. 하늘에선 냉전이었으나, 땅 밑에선 인류애로 화합했다. 

물 10L와 커피믹스 30봉지로 열흘 버텨 
대한민국에서도 비슷한 기적이 있었다. 지난해 2차례 있었던 봉화 광산 사고다. 8월 29일 갱도의 광부 10명 중 1명을 제외한 9명이 탈출 혹은 대피한 1차 사고가 있었다. 그런데 10월 26일 또다시 매몰, 7명 중 2명이 구조되지 못했다. 다음날 소방당국이 시추작업을 시작했으나 대형 암석이 많고 강도가 높아 시간이 늦어졌다. 세 번째 시추로 겨우 구멍을 뚫어 내시경을 집어넣었지만 생사여부를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열흘이 지나고 있었다.

11월 4일 오후 11시 3분, 기적이 일어났다. 생사도 알 수 없었던 광부 2명이 갱도 밖으로 직접 걸어나왔다. 갇힌지 열흘, 221시간 만이었다. 두 사람은 “여기서 우리가 살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며 탈출로를 찾아다녔고, 비닐, 젖은 나무, 톱 등으로 방풍막을 치고, 모닥불로 추위를 버텼다. 갖고 들어갔던 물 10L와 커피믹스 30봉지로 연명했고, 이것이 떨어진 뒤에는 지하수를 마시면서 버텼다. 이 소식은 10.29(이태원) 참사로 비탄에 빠진 국민들을 위로한 소중한 기적이었다.

승려였던 코치, 패닉 막기 위해 명상 권유
기적을 이루는 힘은 무엇일까. 자칫 비극일 뻔한 참사를 해피엔딩으로 이끈 한 기적에는 명상과 종교가 있었다. 2018년 태국, 11~16세 축구선수 12명과 코치가 동굴을 찾았다. 하필 이날 오후부터 폭우가 시작돼 물이 급격하게 불었고, 이들은 물을 피해 더 깊이 들어가다가 입구부터 무려 5km 떨어진 지점에 고립된다. 태국 정부의 도움 요청에 국제사회가 바로 응답했다. 미국 태평양 사령부 요원을 비롯, 중국, 호주, 미얀마, 라오스, 독일, 이스라엘에서 온 구조대가 속속 합류했다. 드디어 9일 만에 위치를 파악했고, 17일 만에 모두 무사 구조됐다.

이 기적의 바탕에는 25세 코치의 리더십과 정신력이 있었다. 코치는 소년들의 패닉을 막기 위해 명상을 하게 했는데, 사실 그는 10세에 출가했다가 3년 전 환속한 승려였다. 구조된 선수들은 9일간 승려체험을 함께 하기도 했다.  

기적의 생존자들은 “하나보다 둘, 둘보다는 더 여럿이었기에 서로 보듬으며 희망을 놓지 않았다”고 말한다. 잠자던 아이의 천진함, 동생을 지키던 긍정적인 생각이 이들을 결국 살게했다. 1995년 삼풍백화점에서 열흘 넘게 버티다 구조된 청년은 주변 생존자와 얘기를 나누고, 손에 잡히는 장난감 기차를 갖고 놀았다고 한다. 모든 물질이 의미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 어떤 정신은 생명을 살리고 결국 기적을 만들어낸다.

인간이 물없이 살 수 있는 시간은 72시간, 지진에서 생존할 수 있는 골든타임은 최대 5~7일이다. 시간이 흘러 튀르키예와 시리아에 구조의 기적이 멈출 때, 우리는 구호로서 그 기적을 이어갈 수 있다. 지금도 속속 현지에는 구호물품이며 성금,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내 아이의 세뱃돈과 겨우내 입었던 점퍼를 담아 보내며, 기적을 향한 기도를 함께 싣는다. 기적은 기적을 믿는 사람들에게 일어난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면, 기적은 일어난다.

[2023년 2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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