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도에서 얻은 교법에 대한 ‘확신’
미신 없고, 교법 일상에 적용케 하는 원불교는 ‘실용적’

[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큰 키에 파란 눈을 가진 사내가 큰절로 좌산상사에게 인사를 올린다. 이윽고 마주 앉은 두 사람, 언어는 통역을 거쳐야 하지만 마음은 서로에게 바로 닿는다. 

이 만남은 어쩌면 ‘에스페란토’에서 비롯됐다. 에스페란토 보급에 적극적이었던 좌산상사와 에스페란토를 통해 원불교를 만난 원선일(크리스 크래겔로) 원무. 아마도 여러 생에 걸쳐 쌓아온 인연이 있었을 것이다.

‘원불교의 가르침은 세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하며 뉴질랜드에서 교화 활동을 펼치고 있는 원선일 원무가 한국에 왔다.
 

정복을 입어보니
원선일 원무를 처음 봤을 때 눈에 들어온 건 그의 셔츠 깃이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좌산상사·전산종법사 접견, 각종 학회 등 모든 일정에 정복(남자교무 셔츠)을 입고 참석했다. 이는  ‘외국인 원무 1호’로서의 자부심으로 비쳐졌다. 

하지만 본래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그는 “정복을 입음으로써 주목받을까봐 걱정이 컸다”고 말했다. 다행히 그를 만나는 모든 이들은 그의 생김새나 복장보다, 순수하게 해외교화에 열심인 ‘원무’로 그를 대해주었다.

원 원무는 “이상하다는 반응보다 자연스럽게 반겨주는 분위기라 많이 환영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정복을 챙겨입은 이유에 대해서는 “정복을 입으면 모두(원불교 구성원)와의 관계성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고, 한국 교도들이 제가 정복을 입은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 다른 사람의 기쁨을 위해서도 입은 것”이라고 웃으며 설명했다.
 

교리도에서 얻은 확신
원불교와 그의 만남은 에스페란토를 통해 이뤄졌다. 김상익 원로교무가 에스페란토로 원불교에 대해 설명한 글을 본 것이 계기가 됐다. 원 원무는 “에스페란토로 소개된 원불교를 보니, 나와 가치관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오클랜드에 있는 원불교인들에게 연락을 취하게 됐고, 얼굴 한번 본적 없던 안정명 교무(오클랜드교당)는 그에게 많은 원불교 도서를 보내줬다. 감동이었다. 

본격적으로 알아가게 된 원불교에서 원 원무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교리도’였다. 마침 그는 평소 거북이를 좋아했기에 거북이 모양을 한 교리도에 큰 흥미를 갖게 된 것이다. 그렇게 처음에는 모양에 끌려 들여다보게 됐지만, 이내 이 교법이 ‘명확’하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오클랜드 공과대학 심리학 교수인 그는 “원불교 교법은 현대에 매우 적합해요. 미신이 없고, 교법을 일상에 적용하도록 인도하니까요. 많은 사람에게 실용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죠”라고 했다. 연구에서 직접적으로 원불교를 홍보할 수는 없기에 그는 주제에 따라 원불교의 예화를 적극 활용한다. 서양의 연구에는 아직 동정(動靜)간 마음챙김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데 여기에 원불교의 동정간 마음챙김을 언급하는 식이다. 그러면 이내 “원불교의 마음챙김은 명확하고 유용하다”는 긍정적 피드백이 전해온다.
 

스며들 듯 자연스럽게
그의 ‘원무 서원’은 점진적으로 이뤄졌다. “원불교가 제 수행을 깊어지게 하고, 저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됨을 느꼈어요. 서원에 대한 결정적 계기는 없었지만, 점차 이뤄진 거죠.”

그가 일반 교도에서 원무가 되며 느낀 차이도 있을 터. 원 원무는 “법회 때 관객은 누구도 신경 쓰지 않지만, 교무나 원무는 관객의 집중을 받으니 법회 내내 집중력이 필요해요. 그러다 보니 제가 좋아하는 법회에 집중할 수 있고, 그런 동기부여가 돼서 좋아요”라고 말한다.

그는 오클랜드교당 교화 보조와 선방 운영을 담당하고, 직장(오클랜드 공과대학)에서는 마음챙김 분야를 연구한다. 밖으로는 뉴질랜드불교협회의 임원을 맡아 원무로서 교화 활동도 펼친다. 또 국제저널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의 편집장으로도 활동하며 세계에 원불교의 마음챙김을 전하는 데 노력 중이다.

원불교인이라는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그이지만 그렇다고 어려운 점이 없진 않을 텐데…. “코로나19로 인해 제한 조치가 생기면서 명상에 참여하는 사람도 줄고, 활동 반경을 넓히는 게 어려웠어요. 또 시간이 부족해요. 직장에서 하는 일이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다 보니 자주 주말까지도 일을 하는데, 가끔은 일을 소화하는 게 버겁죠.”
 

성장에는 인내심 필요
아무래도 국내보다 척박한 환경에서 활동이 이뤄지지만 그럼에도 그는 분명한 교화 계획과 비전을 갖는다. “당장 많은 계획 보다는 제한된 시간과 자원 속에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며 “중요한 것은 사람들을 도우면서 원불교를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성장에는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하고 우리는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곧 ‘종교로서 근본적인 활동목적을 잊으면 안 된다’는 의미다.

그가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국내 재가출가 교도들에게 애정담긴 인사를 남겼다. 

“저를 가족의 일원으로 느끼게 해준 교도님과 교무님들께 정말 감사합니다. 원불교의 가르침은 우리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상기시켜 줍니다. 또 바쁘고 스트레스를 받다 보면 종종 잊기 쉽지만, 그것이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계속 수양해야 하는 이유임을 알고 함께 공부합시다.”

[2023년 2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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