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2009년 7월 23일,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그날. 평생을 함께하자고 약속한 반려자가 갑작스레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병에 걸렸다면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라도 있었을텐데…. 헤어질 준비 없이 남편을 떠나보낸 박지윤 교도(중흥교당)의 곁에는 어린 아들과 딸이 남았다. 그때 시댁 식구가 “원불교에서도 천도재를 지낸다”고 이야기를 해줬다.

장맛비가 세차게 내리던 계절, 궂은 비를 뚫고 교무님은 매일을 하루같이 찾아와 그의 곁을 지켰다. “우리 남편 중환자실에서 호흡기 떼는 그날에도 교무님이 곁을 지켜주셨어요.” 천도재 기간 내내 열반한 남편과 남은 가족들을 위해 오롯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교무님을 보며 박 교도는 원불교를 ‘내 종교’로 삼게 됐다.

하루아침에 세상에 내던져진 기분이었던 그를 다잡은 것은  여러 법문과, 교무님 설법이었다. “교무님 말을 듣고, 교전을 읽다 보니 알 수 없는 힘이 내 안에 솟았어요. 그리고 ‘아! 이렇게만 살면 되겠구나’하는 자신감이 생겼죠.” 덕분에 처음 시작해본 식당일에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지치지 않았다. “매주 뵙는 교도님들 응원이 큰 힘이 됐어요.” 성실히 일하는 본인의 ‘자력’에 교도들의 ‘타력’이 더해지며 그는 세상을 헤쳐올 수 있었다.

하지만 잠든 아이들을 보며 눈물을 삼키던 밤이 분명 있었다. 남편의 열반 후 시어머니와 마찰이 잦아졌고 그의 속은 그야말로 문드러졌다. 허나 원불교에서 측은지심을 배우며 원망심을 지워냈다. “어머님도 아들 잃으시고 얼마나 속이 상하시겠나 싶더라고요. ‘그래 누구든 원망하고 싶으시겠지’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제 마음이 편해졌어요.” 아들 키우는 엄마의 눈으로 상대방을 이해하는 방법, 그것도 원불교가 그에게 알려줬다.   
원불교를 ‘내 종교’로 삼고 살아가는 박 교도는 “원불교의 모든 가르침은 마치 행복이란 만기를 위해 적금 붓는 것과 같다”고 했다. “눈뜨고 일어나면 ‘오늘 감사할 것이 뭐지?’를 찾아봐요. 그렇게 감사거리를 찾아 모으다 보면 정말 좋은 일만 생기는 것 같더라고요.” 

인터뷰 말미 그가 “남편 사고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아들이 어느덧 성인이 돼 국가행정고시에 붙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여기에 덧붙는 말.  “감사 적금이 만기 됐어요. 행복을 왕창 받았네요!” 그의 얼굴을 채우는 밝은 미소에 ‘적금만기’의 기쁨이 가득 묻어난다.

[2023년 2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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