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오늘도 우직하게, 먼바다를 바라보고 섰다.

변화무쌍한 바다 날씨도 있는 그대로 맞고, 그 앞을 오가는 크고 작은 배의 움직임도 그대로 본다. 등대가 하는 일은 주로 그렇다. 한자리에 곧게 선 채 바다를 바라보는 일. 그러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바다를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불을 밝혀 ‘길’이 된다. 

올해로 117년째, 부산 영도등대는 부산항으로 향하는 선박들의 바닷길 안내자가 되어왔다. 그리고 이곳의 비춤은 10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나만의 불빛’으로 소통
표현하자면 등대는 ‘야행성’이다. 주로 밤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일이 많아서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등대 불빛 하나, 그게 깜깜한 바다에 떠 있는 배에게는 나아갈 길이자 방향이 된다. 그러니 등대는 어두운 밤, 배와 소통하기 위해 ‘나만의 불빛’을 갖는다.

영도등대의 ‘나만의 불빛’은 18초 3섬광. 18초에 불빛이 세 번 반짝인다는 의미다. 이 빛은 약 44㎞까지 닿는다. 서울에서 수원까지를 조금 넘는 거리다. 

곧게 뻗은 흰 몸체에 빨간 베레모를 하나 쓴 듯한 모습의 영도등대에 오른다. 등대 안이 동그랗기에, 빙글빙글한 계단을 따라간다. 때문에 계단을 오르다 보면 어질어질해지면서 ‘여기가 어느 만큼의 높이인지’ 또는 ‘잘 올라가고 있는 게 맞는지’ 하는 착각이 드는 순간도 맞닥뜨린다. 하지만 이내 바다가 환히 보이는 전망대에 다다르고, 절로 ‘우와!’ 하는 감탄이 쏟아진다. 

전망대 유리창에는 각 위치에서 볼 수 있는 섬(오륙도, 동백섬, 대마도, 주전자섬(생도) 등)에 대한 안내가 적혀있다. 실제 바다 저 멀리 보이는 섬의 모습과 유리창에 그려진 섬의 모습을 맞춰보는 재미가 더해져 새롭다.

이날 안내를 담당해준 이동호 주무관의 말에 의하면, 항로표지원들은 35미터 높이의 등대에 하루에도 서너 번씩 오르내린다. 등대가 제빛을 밝힐 수 있도록, 등대의 가장 상층부에 있는 등명기를 깨끗이 닦고 관리하는 일도 이들의 주요 업무 중 하나다.

그렇게 먼바다를 내다보며 감탄하다가, 문득 100년 넘게 한자리에서 빛을 비춰온 영도등대의 시간을 헤아려본다. 수없이 많은 바다의 일을 모두 지켜보면서도, 등대는 덜 비추거나 더 비추는 등의 차별 없이 ‘모든 배’와, ‘모든 날씨’와, ‘모든 바다’를 위한 일을 해왔다.
 

영도등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오륙도.
영도등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오륙도.

1906년, 첫 불 밝히다
영도등대는 1906년 12월 1일 첫 불을 밝혔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열 번째 등대였다. 부산 최초의 유인 등대였고, 현재도 부산에서 단 두 개뿐인 유인 등대 중 하나다.

영도는 본래 말을 방목해 기르던 곳이었다. 그래서 등대의 첫 이름도 목도(牧島)등대였다. 1948년에 절영도등대로 개칭되었다가 1974년에 영도등대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영도등대의 현재 정식 명칭은 영도항로표지관리소다. 

이 주무관과 대화하다 ‘등대지기’라는 명칭이 꽤 오래전 ‘항로표지관리원’으로 변경되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아직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항로표지관리원은 ‘항로표지’에 대한 업무를 모두 수행하는데, 항로표지에는 광파표지(빛) 외에 형상표지(색, 모양), 음파표지(소리), 전파표지 등이 있다.

이곳에서는 영도등대를 비롯해 부산항 인근의 항로표지 관리를 담당한다. 등대와 등표 점검을 위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일도 부지기수다. 이 주무관은 “모든 게 선박안전운행을 위한 일이라, 관리구역에 사고가 생기지 않으면 그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했다.
 

(좌) 영도항로표지관리소는 부산항 인근의 해상을 두루 살핀다.
(좌) 영도항로표지관리소는 부산항 인근의 해상을 두루 살핀다.

세상 사람들과 ‘함께’
등대에서 내려와 이어지는 길을 걷다가, 해양도서관이라 이름 붙은 공간에 발을 들였다. 꽂혀있던 시집 한 권을 자연스레 집어 배 모양의 의자에 앉아 읽는다. 마침 읽게 된 시는 기형도 시인의 ‘안개’. 시는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로 시작한다.

등대가 가장 애타는 순간이 언제일까를 생각해본다. 아예 까만 밤이면 빛은 오히려 선명할 것이니, 걱정거리가 아니다. 아마 등대에게 가장 난감한 날은 안개가 자욱한 날 아닐까. 그런 날 영도등대는 빛이 아닌 소리를 뿜는다. 등대가 우는 밤, 앞이 보이지 않아 떨던 배들은 그 소리에 안도할 것이다. 실제로 영도등대는 소리를 통해 위치를 알려주는 음파표지를 겸한다.

1906년 건립 당시 최신 공법인 ‘콘크리트’로 지어진 영도등대는 노후와 안전상 문제로 인해 2004년 새롭게 건축됐다. 이때 국내 최초로 해양문화공원을 함께 조성했다. 시집 한 권을 집어 앉아 읽게 했던 해양도서관을 비롯해 해양영상관, 자연사전시실, 전망대 등은 영도등대를 찾는 이로 하여금 해양감수성을 갖게 한다. See&Sea 갤러리에서는 ‘바다’와 ‘등대’를 주제로 한 캘리그라피 작품이 전시 중이었고, 코로나19로 잠시 중단됐던 야외 공연무대도 조만간 생기를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등대의 역사와 역할이 한자리에서 계속되게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함께’ 하는 방법을 고민한 결과가 아닐는지.
 

(우) 35미터 높이의 영도등대는 빙글빙글 계단을 따라 오르내릴 수 있다.
(우) 35미터 높이의 영도등대는 빙글빙글 계단을 따라 오르내릴 수 있다.

과거의 영도등대는 까만 밤바다 위의 배만을 자신의 친구로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낮에 찾아오는 누구와도 기꺼이 친구가 된다. 
등대는 어둠만 밝히지 않는다.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킨 그 우직함으로, 이곳을 찾은 누군가의 마음까지 환히 밝힌다.

※ ‘100년 더The 공간’은 오래됐지만 가치 있는, 또는 소멸되고 쇠퇴해가는 것을 다시 꺼내 살려내는 공간·마음·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2023년 2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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