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원기108년(2023) 1월 13일, 원불교 해외교화 역사에 중요한 획이 더해졌다. 바로 베트남 정부로부터 ‘한국 원불교’가 정식으로 종교 승인을 받은 것. 이는 원불교 해외교화 역사에 있어서도 새 기록이지만, 베트남 내 모든 종교를 통틀어 ‘최초’라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다.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에서 원불교가 정식 종교 승인을 받기까지 꼬박 10년. 여기에는 묵묵한 뚝심으로 베트남에서의 원불교 역사를 일궈온 한화중 교무(하노이교당)의 시간이 더해져있다. 한 교무는 베트남 정부로부터 종교 승인이 이뤄진 것을 “기적 같은 일”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종교 승인서를 받은 후 마음은 오히려 담담해졌다고 했다. 그동안 ‘해외교화를 하는 데 있어 역사를 길게 써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해왔기에, 종교 승인이 난 지금부터를 ‘진짜 시작’으로 여기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기적 같은 일’을 기점 삼아, 지나온 10년에 더해 ‘다시 1년’을 시작한 참이다.

단출한 안착
“그럼 저라도 갈까요?”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첫발을 내딛게 된 데는, 당시 국제부 실무자로서의 고민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베트남에서 해외 개척모델을 만들기 위해 교화자를 수소문했지만 마땅치 않던 차, 불쑥 그 말이 내뱉어졌으니 말이다. 사실 베트남 교화에 대한 염원이 10년 이상 있어왔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러니 더욱 지켜만 볼 수 없었다. 앞서 이미 10여 년이 있었으니 ‘이제는 때가 됐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외 개척교화에 나선 나이는 50. ‘젊은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서 오히려 안정적일 수 있다’는 생각은 용기가 됐고, 이정무 원로교무와 이상현 부평교당 교도회장의 베트남 교화에 대한 한결같은 염원과 후원은 무엇보다 든든한 힘이 됐다.

3박 4일 일정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다시 돌아올 생각으로 작은 캐리어만 하나 달랑 들고 나선 길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길로 어학원에 등록하고 현지인 하숙집에서 현지 생활을 시작했다. 단출한 안착이었다.
 

 

단 한 명에서 시작된  교화… 종교 승인으로 역사 한 획
“현지에서 원불교에 기대하는 역할 있어”

‘단 한 사람’에서 비롯
‘원불교에 대해서도, 교무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이 땅에서 어떻게 교화를 시작해야 할까.’ 고민을 거듭하던 1년간의 기도는 딱 하나였다. ‘베트남에 원불교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는 인연 ‘한 명만’ 만나게 해주세요.’

이는 교화자로서 당장 큰 욕심을 내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그러다 베트남인이지만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한배가족협회 여성회장과 인연이 닿았다. 그는 베트남 내 여러 종교인들을 돕고 봉사활동 하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한 교무는 그를 통해 베트남 현지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문화강좌를 하게 됐고, 여러 과정 속에서 결과적으로 그는 그 ‘한 사람’이 됐다. 바로 원신성 교도다.

원 교도를 통해 한 교무는 그의 언니와 인연이 닿으면서 현지인 20여 명과 꾸준한 만남을 갖게 됐다. 이는 자연스럽게 현지인 법회가 됐다. 최근 종교 승인 심사 과정에서 조심할 필요가 있어 잠깐 멈췄지만, 본격적으로 현지인 교화를 하게 되면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마음 속 스승과 함께
‘베트남에 못 살겠다. 정이 안 간다.’베트남은 유독 소음이 심했다. 그렇게 투덜투덜대다 문득 ‘이러면 베트남에서 너를 받아주겠어?’ 하는 자각이 있었다. 투덜거림을 멈추고 3년쯤 지나자 ‘이제는 베트남에 살 수 있겠다’가 됐다.

하지만 경계는 또 찾아왔다. 현지 문화에 적응이 어렵고 매사에 조심스럽다 보니, ‘혼자 살기 참 힘들다’는 생각이 불쑥 마음에 든 것이다. 가만히 돌아봤다. ‘마음에 소태산 대종사님과 스승님을 모시고 살면 혼자가 아닐 텐데, 나는 왜 혼자라고 생각하지?’ 베트남 생활 5년이 지나던 때였다.

3년, 5년. 어디 어려운 순간이 그때뿐이었겠는가. 한 교무는 “여러 경계를 마주칠 때마다 ‘소태산 대종사님이셨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역사라는 건 어떻게 써 내려가는 것인가’를 반복해 상기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했다고 했다.
 

우리 교법으로 승부 
하노이교당은 새로운 법인을 설립하거나 현지인을 내세우지 않고, 한국 원불교의 정관과 한국 원불교의 사업자등록증으로 종교 승인 절차를 진행했다. 한 교무는 “그래서 이번 종교 승인은 더 큰 의미”라고 전했다. ‘한국의 원불교’가 베트남에서 종교 활동을 하도록 인정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대표에 베트남 현지인이 아닌, 한국 원불교에서 발령받은 교무가 이름을 올린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이는 앞으로 베트남에서 땅을 사거나 재산이 생기면 ‘원불교’로 소속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정적 교화 바탕이 될 것이다.

최근 현지인 경찰이 그를 찾아온 일이 있다. 종교 승인 절차에 필요한 서류에 사인을 받기 위해서였다. 경찰은 그에게 “베트남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기는 지금 청소년 자살률이 높다”는 등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한 교무는 경찰의 말을 ‘너희가(원불교가) 여기에 필요한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더욱 ‘우리 교법으로 승부하면 되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한 호흡 가다듬고 다시 써 내려가야죠.” 덤덤하게 전하는 ‘다시 써 내려감’이라는 표현에 한결같은 교화심이 담겼다.

[2023년 2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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