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여진 교도
유여진 교도

[원불교신문=유여진 교도] 우리는 때로 우리 자신이 얼마나 복 받은 존재인지를 잊고 산다. 사람 되기 어려운데 이미 되었고, 불연을 만나 불법 듣기 어려운데 이미 듣고 있기 때문이다.

‘성불도 윷놀이’는 이런 우리에게 육도윤회의 무서움을 깨닫게 한다. 윷을 던지고 또 던져도 육도윤회를 벗어나지 못할 때가 있다. 인도를 만나도 살도음을 범해서, 또 다행히 불연을 만나 진급의 기회를 맞이했다가도 삼독심에 빠져 강급되곤 한다. 법을 제법 아는 상전급에 올랐다가도 중근기에 빠져 또다시 강급되기도 한다. 성리를 깨닫고, 제중을 하고, 만능을 겸비한 여래위에 오르기를 갈망하면서 소망을 담아 윷가락을 던지지만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기를 반복한다. 부딪치는 경계에 한순간 무너져 윤회의 바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은 윷판를 통해서도 그대로 재현된다.
 

성불도 윷놀이는 위안이다.
윷을 던지면 언젠가
여래위에 오를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산종사의 법문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정산종사는 “우리의 공부가 승급되고 강급되는 원인은 그 발원의 국한이 크고 작은 데와, 자만심을 두고 안 두는 데와, 법 높은 스승을 친근하고 안 하는 데에 있다”고 했다. 다행인 것은 우리가 ‘성불제중이 제일 높고 큰 서원’임을 알고 한순간도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며, 그 어떤 중생도 꾸준히 수행하면 불보살이 되는 이치를 알기 때문이다. 또한 소태산 대종사를 비롯한 역대 스승님들의 법문을 받들고 깊이 새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법문을 알뜰히 챙겨서 실지 경계에 활용하려는 자세를 갖춰야 승급되는 이치를 알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신이나 자신과 관련 있는 것을 과시하는 자만심이다. 우리는 내 몸이 요구하는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살도음을 행한다.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심을 물리치지 못해 삼독심을 낸다. 내가 아는 작은 것에 만족하고 교만해져서 중근병에 걸린다. 우리가 자기 스스로 높은 체하는 사람은 반드시 낮아짐을 알고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다. 

결국 정산종사는 항상 나를 중심에 놓는 자만심을 버리는 공부, 즉 상 없는 공부, 비우는 공부의 소중함을 깨닫고 실천하지 못하면 끊임없이 강급의 길을 걷게 됨을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다.

어려움도 있고,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성불도 윷놀이는 우리에게 큰 위안을 준다. 윷을 던지고 또 던지면 언젠가는 여래위에 오를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우리의 자세이다.

성불도 윷놀이는 우리가 실제로 여래위에 오르는 일도 이와 같은 원리임을 믿게 한다. 상 없는 공부로 정성을 다해서 정진하고 또 정진하면 이룰 수 있음을 이 놀이는 말해주고 있다. 비록 육도윤회에 빠져 헤맬지라도,원불교를 만나 입교하면서 부르고 들었던 <성가>의 한 대목을 무기삼아 정진해 보고자 한다. “이 몸이 보살되고 부처되도록 나아갈 뿐 물러서지 말게 하소서. 

이 몸이 보살되고 부처 되도록 나아갈 뿐 물러서지 말게 하소서.”

/청주교당

[2023년 3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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