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푸르고, 때로는 호젓한 쓸쓸함까지 안은 사는 섬 남해. 그곳에 사는 섬 집 아기들이 곤히 잠든 오후 두 시. ‘엄마는 굴 따러 갔을’ 시간이지만 섬 집 아기들은 집에서 혼자 잠들지 않는다. 부모만큼 다정한 손길로 이불깃을 여며주는 선생님들이 있는 남해원광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은 한 뼘 더 자라는 중이다.

그리고 그곳을 30여 년간 지켜온 한 사람.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도 부지런히 움직이며 책상을 수리하고 어린이집 이곳저곳을 손보기 여념없다. 김광훈(본명 광준․남해교당) 남해원광어린이집 원장은 자신의 인생 절반을 바친 이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어른’이 됐다.

바래지 않는 마음
저출산 여파로 어린이집의 폐업이 줄줄이 잇따르던 2012년. 당시 전국 4만2527곳에 달했던 어린이집은 2022년 3만927곳으로 감소했다. 특히 직격탄을 맞은 지방의 어린이집은 아이들이 없어 많은 어려움을 호소한다. 

이러한 때 남해원광어린이집은 눈에 띄는 성장세로 눈길을 끈다. 현재 남해원광어린이집의 원아는 64명. 입학 예정까지 포함하면 70여 명에 이른다. 그 비결을 김 원장은 “변하지 않는 사랑과 진심”이라고 말했다.

주로 여자선생님이 많은 어린이집에 ‘아빠보다도 나이가 많은 남자선생님’. 그러니 그는 낯설어하는 아이들과 간격을 좁히고자 배 이상 노력해야 했다. 그 진심을 가장 먼저 알아봐준 것은 역시 아이들. 

하루는 졸업한 아이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를 찾아왔다. “과장님(당시직책)! 저 학급회장됐어요! 다 과장님 덕분이에요!” 당시 어린이집 차량 운전을 맡고 있던 그에게 ‘가장 빨리’ 소식을 전하고 싶어 달려온 아이를 회상하던 그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의 지난 시간들은 아이들을 가슴에 품고 마음을 갈고 닦게 했다. “당시는 조금 억압적인 교육방식이 고수될 때였는데, 저는 ‘정성’을 가장 기초에 뒀던 것 같아요.”

 

20대에 시작해 30년 가까이 
어린이집 지켜온 키다리 아저씨.
교당과 한울타리 안에서
교육․교화 두 마리 토끼 잡으려 노력.

‘교무님의 발이 되자’
남해교당에서 김 원장의 별명은 ‘김 반장’이다. 교당 형광등이 나가거나 화장실 변기가 고장나면 늘 그가 달려오기 때문. 사소해도 교당 일이라면 만사 제치고 달려간 날들이 어언 30년이다. 할머니의 오랜 서원을 이루게 해드리고자 오게 됐던 교당. 당시 남해교당 김대운 교무는 그에게 어린이집 차량운행을 맡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이들이 타는 차라 선뜻 맡기기 어려웠을 법한데, 김 교무는 김 원장을 향한 믿음에 주저함이 없었다. “미숙한 운전실력에 차를 많이 부딪히기도 했는데, 교무님은 한 번도 책망하지 않으셨어요. 오직 ‘광훈이를 교도로 만들겠다’는 일념을 보여주셨죠.” 김 교무가 보여준 믿음에 그는 자연스레 원불교를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교무님의 부탁에 토를 달아본 적이 없다.

이러한 그의 노력을 아는 남해교당 교무들이 어느 날 마음을 모았다. ‘광훈이는 운전만 하기에는 아깝다’며 어린이집 교사 자격증 취득을 권한 것. “당시 부교무님은 없는 돈을 모아 장학금까지 마련해주셨어요. 그 마음이 제게 용기가 됐죠.” 그렇게 그는 주간에 어린이집 일을 하고 야간 대학을 다니며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때 나이 40살이었다.
“저는 교무님들이 다 좋아요. 저를 성장시켜주셨잖아요. 모든 교무님 덕분에 원불교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치있는 가르침을 받은 데 대한 보답이라 해야할까. 그는 남해교당에 오는 모든 교무들의 손과 발이 되기를 다짐했다.
 

 

마음 돌아보기 수업
직접적으로 종교를 드러낼 수 없는 추세라 법회까지 강요할 수는 없지만, 남해원광어린이집은 원불교 마음공부에 기초해 아이들의 교육을 이끈다. ‘마음 돌아보기 수업’이 대표적이다. 

“분을 못이겨 계속 울고, 심하면 다른 아이들을 할퀴기까지 하는 아이들이 있어요. 그럴 때 마음 돌아보기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도록 유도해요.” 선생님이 고쳐주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고칠 수 있게 돕는 수업을 통해 아이들은 경계를 넘기고 각자의 ‘마음통장’에 선생님이 주는 스티커를 모은다. 이 스티커는 분기별로 열리는 ‘행복마트’에서 갖고 싶은 것으로 교환할 수 있다. 

“아이의 변화는 부모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어요.” 실제로 남해에서 원불교 마음공부에 마음을 여는 부모가 늘고 있다. 교당과 한울타리 안에서 어린이집 원장이자 원불교 교도인 그의 교화 방식이다.

그는 원장이 된 지금도 차량운행을 담당한다. “제가 조금 더 고생하면 선생님들 처우가 좋아질 수 있고, 아이들 간식도 더 좋은 걸로 사줄 수 있잖아요.”자신보다 ‘아이들’과 ‘어린이집’을 먼저 생각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는 김 원장. 그는 원장이기보다 ‘일꾼’이라는 마음으로 섬 집 아기들의 요람을 가꾸는 중이다.
 

[2023년 3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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