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아이돌 연기자 길러낸 연기 일타강사
혹독하고도 다정, 엄마가 된 뒤 더 깊고 넓어진 내공
일원가정 이루며 멋진 원불교 공연 만드는 꿈 꿔

정유리 연기강사.
정유리 연기강사.

[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배우 남궁민과 김소연이 대상을 겨루던 2020년 SBS 연기대상 현장. 유망주 선발전인 청소년연기상을 거머쥔 것은 ‘아무도 모른다’의 배우 안지호였다. 

“… 그리고 항상 연기로 많은 도움을 주시는 정유리 선생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수줍은 수상소감에 언급된 이름, 정유리 연기강사는 TV 앞에서 툭 눈물을 쏟았다. 오래 아끼고 지도해 온 제자의 빛나는 순간, 그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사실 저는 다른 마음도 있었거든요.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혹은 ‘이대로 내 경력이 끝나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그런 두려움이요.” 

스포트라이트 아래서 아역배우며 청소년․아이돌 연기자를 가르치던 화려한 모습은 오간 데 없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은 늘어진 셔츠에 떡진 머리를 한 갓난아기의 엄마였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고 그만큼 우울도 깊었다. 지칠 때마다 정유리 강사(법명 혜성․구리교당)는 자주 과거를 떠올렸다.
 

많은 드라마에 정유리 연기강사의 지도와 노력이 담겨있다. 
많은 드라마에 정유리 연기강사의 지도와 노력이 담겨있다. 

밤 12시까지, 머리를 감다가도 받는 전화
그는 연극영화과 시절부터 연기지도를 시작해 14년 경력에 달한다. 정교사 연극영화 교직자격증과 스피치 자격증, 논술자격증으로 학교는 물론 성북문화재단, 삼성전자 등에 출강했다. 학교나 단체수업을 빼고도 학원이나 개인지도로 만난 학생만 어림 몇백 명이 그의 손을 거쳐갔다. 특히 청소년․아이돌 연기자 지도에 탁월해, 그가 참여한 작품은 최근작으로만 봐도 ‘신과 함께, 지금 우리 학교는, 백두산, 비상선언, 킹덤, 속아도 꿈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이른다. 

“연기지도는 강의로만 끝나지 않아요. 특히 청소년 연기자들은 다양한 이유로 수시로 전화를 하거든요. ‘쌤, 저 화장실인데요. 떨려서 오디션 못 들어갈 것 같아요’ 같은 전화도 늘 받죠.”

그는 아무 때나 고쳐지는 쪽대본이 나와도 밤 12시까지는 전화를 받는다. 머리를 감다가도 수건을 둘둘 말고 영상통화로 상대역을 해주고, 슬럼프에 빠진 연기자를 데리고 일부러 사람 많은 곳을 찾기도 한다.

“실패가 거듭되면 ‘아무도 나를 모른다’는 좌절감이 생겨요. 그럴 때면 사람들이 알아볼만한 곳에 가서 제가 매니저인양 극진히 모셔줍니다. 그리고 ‘네가 이런 연기를 했을 때 나를 울렸어’라며 최고의 연기를 되짚어줘요. 그렇게 자신감을 살려주는 것도 제 몫이죠.”

1년 반 만에 돌아온 현장의 얘기
‘애들이 있으니 내가 있었다’고 말하는 그는 오래 전부터 이미 엄마의 마음이었다. 그 때문일까, 아이가 돌쯤 되자 제자들이 날이면 날마다 연락을 해왔다. “쌤, 이제 아기 좀 크지 않았어요? 돌아오세요.”, “저 하는 거 옆에서 봐주기만 하세요.” 제자들에게 오히려 치유를 받았다. 그가 1년 반만에 현장으로 돌아온 배경이다.

“요즘 그런 얘기를 많이 들어요. 아이들은 오디션이 없다는데, 감독들은 쓸 애들이 없다고들 하죠. 이제까지의 연기들이 너무 틀에 박혀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교환 씨 같은 날 것 느낌의 배우들이 눈에 띄죠. 그래서 제 수업에선 같은 상황이라도 연기를 다르게 해보도록 해요.”

사실 그는 혹독한 편이다. 칭찬부터 들으면, 못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받아들이기 어려워서다. 그는 다양한 자극을 주고 받는다. 듣기만 해도 이른바 ‘기빨리는’ 이 일을 어떻게 오래 하는 것일까. 그의 대답이 명료하다.
“이게 너무너무 재밌는데, 감사하게 돈도 주더라고요. 그럼 안 할 이유가 없죠!”
 

많은 드라마에 정유리 연기강사의 지도와 노력이 담겨있다. 
많은 드라마에 정유리 연기강사의 지도와 노력이 담겨있다. 

시어머니와 눈 찡긋 ‘오예, 이제 됐다!’
이쯤되니 원불교와의 인연이 퍽 궁금하다. 교생할 때 만난 연기교사 남편(김민준 교도)과 연애하던 시절, 고향집에 낚시하러 가자길래 겁도 없이 김해까지 따라갔다. 잘 놀고 잘 잔 다음날은 일요일.

“유리야, 멋진 카페 갈건데 그 전에 교당에 들렀다 가자. 근데 혹시 바지는 없니?”

화려한 꽃무늬 원피스 밖에 없다 하니 지금의 시어머니(김정임 교도·동진주교당)가 바지 하나를 내어줬다. 그렇게 따라간 김해교당에서 천진난만하고 씩씩하게 성가를  불렀다. 시아버지(김성권 교도)가 짐짓 말했다. “얘야, 일원가정을 이뤄야한다.” 그 자리에서 입교까지 했다.

“남편과 함께 교당에 다니다 코로나19 때 임신하면서 못갔어요. 그 사이 이사를 왔는데 가까이 구리교당이 있더라고요.”

그가 먼저 가보고는 남편에게 권유하기를 몇 번, 결국 시어머니가 구원투수로 나섰다. 구리교당에 전화해 ‘아들 집 일원상 봉안식을 해야한다’며 직접 올라와 동정수 교무를 집으로 모셨다. 그리고 그날, 남편은 “어쩐지 향내가 다르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눈을 맞추며 찡긋했다. “오예, 이제 됐다!”

이제 온 가족이 교당에 다니겠다, 정강사는 또 다른 꿈을 꾼다. 이윤택 연출가가 쓴 연극 ‘이 일을 어찌할꼬!’ 시나리오를 구입해 읽고는 ‘원불교를 세상에 알리고 문턱을 낮출 공연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교무님께 물어보니 연말 교당 행사인 삼학페스티벌에 올려보자고 했다. 

“1등 상금이 30만원이나 돼요. 이렇게 재밌는데 돈까지 주다뇨? 꼭 해야죠.”

힘들때마다 성가 ‘이 마음 그늘질 때 불을 켜주고’를 부르며 ‘법회에 나가리라’ 다짐했던 정 강사. 많은 연기자들을 알뜰살뜰 길러낸 ‘연기 일타강사’로서 그는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진 인생 2막을 열었다. 안으로 밖으로 날개를 펼칠 그의 활약, 그 종횡무진을 기대해보자.
 

 많은 드라마에 정유리 연기강사의 지도와 노력이 담겨있다. 
 많은 드라마에 정유리 연기강사의 지도와 노력이 담겨있다. 

[2023년 3월 8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