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3년여를 지나는 동안 우리 일상에는 많은 변화가 일었다. 이 변화는 종교를 비켜 가지 않았고, 종교는 사람들과 멀어지지 않는 방법을 고심했다. 그렇게 온라인 종교활동이 본격화됐고, 이는 기술 발전과 함께 많은 면을 대치했다. 하지만 이제 코로나19 방역 조치가 대부분 해제 또는 완화됨에 따라, 종교들은 다시 고민에 직면했다. 그동안은 단순히 ‘대면과 비대면의 병행’이 고민의 주 초점이었다면, 이제는 ‘병행 필수’와 ‘대면 활동 회복’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양새다.

이에 <원불교신문>에서는 ‘온라인 종교활동과 온라인법회’를 주제로 좌담을 진행했다. 본 좌담에는 김인서 교무(반송교당), 강신오 교무(뉴저지교당), 문도원 교무(마산교당), 이진원 교무(서이리교당)가 참여했고, 총 2회에 걸쳐 게재된다.


(위부터) 김인서․강신오․문도원․이진원 교무.
(위부터) 김인서․강신오․문도원․이진원 교무.

법회와 교당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해야 할까.
김인서: 개인적으로는 지구 중심으로 법회 활동이 개편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법회개념에 대한 재정의가 가능하다. 현재의 편제, 즉 지금처럼 개교당주의인 상황에서는 법회 활동의 확장이 쉽지 않다고 본다. 또 현재 온라인 종교활동은 대부분 법회 위주로 활성화돼있는데, 온라인 기도나 온라인 가례도 필요하다. 온라인법회 출석은 교도 4종 의무와 연계되어 있으므로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출석 인정 여부를 출가 입장에서 교당의 유지, 또는 재가 입장에서 편리성 등으로만 판단하면 안 된다. 교당과 교단의 발전, 시대의 변화 등에 초점을 맞춰 고민해야한다.

문도원: 교당 활동에는 법회뿐 아니라 순교, 상담, 개인기도 등도 포함된다. 출가하기 전 대학을 다닐 때, 덕망 있는 교수님이 출석의 기준을 제시했다. ‘수업 시간에 질문을 하든지, 내 질문에 대답을 하든지.’ 학생들은 모두 수긍했고, 수업 참여도는 훨씬 올라갔다. 몸으로 법회에 참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도로서 훨씬 더 가치 있게 활동하려면 전화로든 법회 외의 요일에 방문하든 교무님과 문답 감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법회 출석이 법위 향상의 참고자료가 아니라 필수조건이 되는 부분은 개인적으로 못마땅하다. 종교활동은 대면으로 이뤄지는 게 가장 좋다. 하지만 교무님과 정신적 상호작용을 꾸준히 주고받고, 교당의 교화발전을 위해 일정 금액을 책임감 있게 지불하는 등의 멤버십이 이뤄진다면 대면·비대면은 중요치 않다. 더 많은 상호작용과 책임감이 법회 인정 요소에 포함될 필요가 있다.

이제는 질적 자원으로 승부 봐야

                                 - 강신오


강신오: 개교당주의를 벗어나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우리 교당에서 법회를 봐도 ‘우리 교도’, 이웃 교당에서 법회를 봐도 ‘우리 교도’로 인식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내 교당’ 또는 ‘내 교도’에서 벗어날 때 교단이 함께 성장할 수 있다. 법위사정을 법회 출석 유무로 평가하는 것에 대해서는 ‘오죽하면 법회로라도 성적을 산출하게 됐을까’를 생각해 보자. 그래서 이제 ‘우리가 왜 법회 출석을 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살피는 게 중요하다. 젊은 교도들은 ‘효용’을 따진다. 한두 시간을 들여 법회에 참석했다면 ‘얻어갈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시간과 돈을 투자해 교당에 가야겠다. 상시훈련의 내용을 문답 또는 진단받아야겠다’며 교당에 기꺼이 오지 않겠는가.

‘교화회복’에 대한 고민이 크다. 미래 교화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강신오: 포스트 워(War) 시대에는 산업과 종교 모두 부흥했다. 그런데 지금은 종교인구도, 대한민국 인구도 모두 줄고 있다. 이런 상황에 1980~1990년을 생각하며 ‘교도 수가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다’에 기반한 비전을 세운다면, 초점이 맞지 않는다.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이 줄면 당연히 재정자원도 줄어든다. 이런 때는 질적 자원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재가출가 교도 수가 줄어드는 것을 수용하자. 그리고 좋은 콘텐츠를 개발하는 데 힘쓰자. 그러면 종교로부터 이탈하는 사람까지 더 넓게만날 수 있다.
 

공부 상태 진급

입증에 대면 필수

            - 문도원


문도원: 높은 경제성장을 겪은 세대에게는 현재 모든 것이 ‘침체’라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늘어난 것들이 있다. 태권도, 필라테스, 요가, 헬스장 등이다. 헬스장에서 PT를 받으려면 별도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도 줄을 선다. 트레이너에게 ‘직접’ 교육받는 효과를 느끼기 때문이다. 삼성과 LG 대리점은 전국의 면면촌촌에까지 존재한다.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직접 만져본 후 사고 싶어 하니까. 결국 ‘대면의 힘’이다. 기본적인 내용이나 정보는 온라인으로 주고받을 수 있지만 어느 정도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직접 배움이 필요하다. 우리 공부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공부 상태에 대한 진급을 입증하려면 대면이 이뤄져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교당은 지난 일주일의 마음 상태를 점검하고 챙기고 공부 정도를 확인하고 점검받는 곳이 될 때 의미가 살아 난다.

이진원: 2019년에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는 않다’는 문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 말이 미래 종교가 나아갈 방향이 아닌가 싶다. 영성 추구에 대한 욕구는 지속되고 있고,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 예견하신 것처럼, 복잡다단한 세상에서 나를 지킬 수 있고 내가 나로 살아갈 힘은 결국 ‘영적 성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구에 맞춰 영적 성장을 도와주면서도 답답하지 않은 종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은 결국 ‘소통’으로 연결된다.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온라인 활동에 대한 니즈(Needs), 농촌에 맞는 니즈, 급변하는 사회에 발맞춘 니즈가 파악돼야 한다.
 

내가 나로 살아갈 힘,

‘영적 성장’에서 비롯

                - 이진원


김인서: 개신교의 경우 플로팅(Float -ing) 신도, 즉 SBNR 신자가 30%에 달하고, 그 30%는 온라인 예배를 본다고 한다. 이 30%는 ‘대면 활동은 하지 않지만 영성에 대한 욕구는 있는’ 비율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담론인 지역성과 신뢰성에 우리는 영성을 더해 ‘교당의 미래 담론’으로 삼아보면 어떨까. 이는 교화 회복 방향이기도 하다. 지역성은 교당, 교화단, 소그룹 활동(동아리 활동)을 통해 소통함으로써 상생상화하게 하는 것이다. 신뢰성은 교당 내왕시 주의사항과 일기 감정 등으로 회복하고, 영성은 기도와 가례 등으로 신앙과 도덕, 인성을 갖춰감이 될 것이다. 현재 ‘교당’이라는 말은 원불교의 교화현장을 대표하는 대명사로 쓰인다. 이 말은 ‘교당이 곧 교화현장의 정체성’이라는 뜻이다. 우리의 정체성은 소태산 대종사께서 교단 최초의 교당인 구간도실 상량문에 쓴 구절에서 찾을 수 있다.

교당이 가족 역사 잇는 곳 될 수 있어

                   - 김인서

‘대명국영성소 좌우통달 만물건판양생소(大明局靈性巢左右通達萬物建判養生所).’ 즉 교당은 크게 밝은 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정신개벽을 주재하는 집으로서 우주 만물을 상생상화하게 하며 상부상조하는 선연으로 살려 나가는 곳이다. 더불어 교당이 각 가정과 함께 그들의 역사를 잇는 곳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은 동네 친구도, 골목길도 없다. 그 자리(고향)를 교당이 대신함으로써 미래 세대에게 ‘교당=고향’으로 자리매김하면 좋겠다. 내가 태어났을 때 할머니가 올린 기도문, 내가 사춘기를 잘 넘길 수 있도록 어머니가 올린 기도문 등이 교당에 남아있는 것이다. 가정의 가풍과 역사가 교당 역사와 함께 흐른다면, 미래 세대를 흡수할 수도 있고, 대명국영성소로서의 역할도 해내리라 본다. 미래 시대 원불교의 역할은 메타 종교, ‘종교 중의 종교’다. 

[2023년 3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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