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은 생명이다
장수군에서 낸 ‘환경공동체활동 2021 공모사업’에 지원을 했다. 총 300여 마을 중 우리 마을인 산서면 진전마을을 포함한 5개 지역이 선정됐다. 우리는 활동 주제를 ‘환경은 생명이다’로 정하고, 사업내용은 보와 도랑 흙 쳐올리기, 쓰레기 분리수거, 재활용 쓰레기장 이동설치, 농약병 및 농사용 비닐 수거 그리고 자연 수세미 만들어 공급하기 등으로 정했다.

마을회관 앞마당에 덩그러니 놓여 꼴불견이던 재활용 쓰레기장은 철근으로 만들어진 탓에 무게가 500㎏쯤 나갔다. 이를 옮기려면 대형 크레인이 필요했다. 어디에 옮길 것인가. 그 작업 중 ‘장소’가 문제가 됐다. “마을 어귀는 흉하다”, “내 논 옆에는 쓰레기가 날리니 안 된다”, “우리 조상 묘 앞에는 선조께 예가 아니다” 등 모두 자신에게 해가 온다는 생각에 꽉 잡혀 있으니 일단 거부하고 본다.
 

새롭게 조성한 분리수거장에서 마을 주민들이 함께 분리수거를 하고 있다.
새롭게 조성한 분리수거장에서 마을 주민들이 함께 분리수거를 하고 있다.

‘난감하네!’라는 말은 이때 쓰는 한숨 같다. 일촉즉발, 나는 천지영기 아심정을 외웠다. 그리고 지도자로서 결단을 내렸다. 반대자에게는 이해와 협동의 공동체 의식이 열리도록 노력했다.

나는 반대자들에게 ‘우리’라는 공동체의 의미와 새마을 운동의 자주·자립·협동 정신을 알기 쉽게 이야기하며 이해시켰다. 그렇게 했더니 누구도 괜히 혼자서 엉뚱한 생각을 내놓을 수 없는 분위기가 됐다. 

너나없이 “여기가 적당한 장소구먼요” 하는 공감. 재활용 쓰레기장은 마을 어귀에 위용을 뽐내며 의기양양하게 옮겨 서 있다.
 

어머니의 삶에서 깨달은 ‘수세미 혁명’
‘물고기, 새, 심지어 코끼리 배에도 비닐, 나일론, 플라스틱 등이 나오는데, 그걸 보면서도 사람은 왜 대비를 하지 않고 편의주의로 나아가는가?’

이에 대한 염려로 진전 환경공동체가 함께 문제의식을 느끼며 일할 거리를 찾던 어느 날. 옛날에 어머니가 쓰시던 짚과 새끼로 만든 수세미가 떠올랐다. 무릎을 ‘탁’ 쳤다. 농촌에서 땅을 바탕으로 농민이 할 수 있는 일감을 찾은 것이다.

귀향 첫해에는 게이트볼장 입구를 그렇게 다녔어도 자연 수세미가 안 보이더니, 이제는 눈에 보였다. 외면받고 있는 수세미 열매를 따서 포대에 담아 마을회관으로 가져왔다. 회관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가공해 주부들이 주방에서 사용하도록 나눴다. 이듬해에는 개인적으로 심고 가꿔온 수세미를 주민들과 함께 가공해 나눠 썼다. 

단박에 성과는 기대하지 않지만, 2년 동안 직접 실천해보면서 가능성을 발견한다. ‘이것을 이해하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먹고 사는 것에 가까운 주방 혁명, 수세미 혁명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이다.
 

마을 주민들과 함께 수세미를 수확하는 모습.
마을 주민들과 함께 수세미를 수확하는 모습.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공동체적 환경운동이 절실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장수군청 환경지도과 행정요원을 만났다. 나는 “농촌의 특성을 살려 자연 수세미를 가공해 주방의 수세미 혁명을 일으키자. 이것도 환경이 생명임을 자각, 실천하는 생명 운동 중 하나가 아니겠냐?”고 말했다.

날씨가 제법 풀렸다. 지금부터는 마을 부엌의 부지깽이마저도 일손으로 필요할 정도로 바쁠 때다. “이곳에 누구든지 작업복에 삽 한 자루 둘러메고 휘파람 휘날리며 오세요. 환영합니다.” (3~5월에 심을 자연 수세미 씨와 해바라기 씨를 원하는 독자분은 연락 바랍니다.)

 

진정한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주민자치위원회 고동금 위원장에게 강의 요청이 왔다. “워크숍이 있는데, 인문학 강좌를 해달라”는 것이다. 기꺼이 승낙한 후 제목을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정했다. 강의는 면사무소 대강당에서 한 시간 정도,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나는 ‘사람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다른 존재와 차이점은 어떠하고 왜 사람이라고 자부하는가?’에 대한 화두를 먼저 던졌다. 그리고 인간학적으로 다양한 사람의 양태를 전개했다. 특히 유희적 삶에 취한 요즘 사람들에 대해 재미있게 얘기한다. 이 방법론은 교역 생활 53년 동안 매년 총부 설교를 준비했던 경험이 토대가 됐다. 강의는 PPT(파워포인트)를 영화의 한 편처럼 설계한다.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를 주제로 면사무소에서 인문학 강의를 진행했다.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를 주제로 면사무소에서 인문학 강의를 진행했다.

이번에는 ‘양파 심는 여인’을 등장시켰다. 대중은 ‘야 저분이? 왕년에 어려웠던 분인데, 아~ 이렇게 여기서 화제의 인물로?’라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땅을 딛고 서 있는 저 여인! 하늘을 바라보는 저분 다 아시죠? 남편도 있고, 큰 애가 이번에 아들을 낳아서 할머니가 됐어요. 이제 저 여인은 어머니, 부인, 할머니로 떳떳하게 존재합니다” 하며 이야기의 운을 뗐다.

이어 “하루는 둘째 아들을 제게 데리고 와 귀농하겠다고 해서 농부 확인서를 작성해줬습니다. 농심(農心)으로 속이 꽉 찬 사람이 됐습니다. 땅을 딛고 하늘을 우러러 의지하며 참 인간으로 사는 저 여인에게 우리 박수를 보냅시다. 농심은 천심(天心)이요. 인심(人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농심으로 가득 찬 존재입니다”라고 했다. 

이렇게 강의를 통해 ‘사람이 있어야 할 곳에 없는 현실’을 함께 개탄하면서 ‘진정한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를 같이 찾았다. 그동안 청중들은 강사인 나와 눈 한번 빗나가지 않은 채 진지한 시간을 이어갔다.
 

마을 어귀의 보와 도랑의 흙 쳐올리기 작업하는 모습.
마을 어귀의 보와 도랑의 흙 쳐올리기 작업하는 모습.

[2023년 3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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