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몸은 공물이니 닿는 대로 베풀리라’

은타원 서세인 원정사
은타원 서세인 원정사

[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은타원 서세인 원정사(恩陀圓 徐世仁 圓正師)가 3월 18일 열반에 들었다. 은타원 원정사는 ‘공부는 마음공부가 제일이듯 교화는 덕화가 제일’이라며 늘 베푸는 삶의 자세로 임하는 곳마다 교육과 교화사업에 열성을 다한 삶을 살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교육자 페스탈로치의 생애에 감격해 교육자가 되기를 꿈꿨던 은타원 원정사는 11세가 되던 해 소태산 대종사가 부산에 왔을 때 ‘생불님을 뵈러 가자’는 어른들을 따라 나섰고, 그렇게 소태산 대종사를 처음 만났다. 원기27년(1942) 4월 총부에 도착한 은타원 원정사의 인사를 받은 소태산 대종사는 “조그맣게 생겼어도 뜻이 크구나” 하며 양도신 선진에게 은타원 원정사를 보냈다. 

이후 유일학림 1기생으로 출가의 길을 나선 은타원 원정사는 원기34년(1949) 좌포교당 교무를 시작으로 신흥교당, 도양교당, 오수교당, 영도교당, 일본교구 교무, 원기51년(1966) 총부(현 교화훈련부) 순교무, 김천교당, 동래교당 교무, 정읍교구장 겸 정읍교당 교감교무(현 정읍지구), 미주서부교구장 겸 나성교당(현 로스앤젤레스교당) 교감교무로 봉직하다가 원기76년(1991) 정년퇴임했다.

열반소식을 접한 전산종법사는 “부임지마다 교육과 교화를 병행해 재가출가 인재를 길러냈고, 특히 환갑을 앞두고 ‘미국으로 가라’는 대산종법사의 말씀을 ‘세계 교화의 중심에 대종사님 법 전하라’는 종명으로 두 마음 없이 받들어 미국 서부지역에 꾸준히 법종자를 심었다. 또 ‘이 몸은 공물이니 닿는 대로 베풀리라’ 했던 서원을 국내·외 곳곳에 실천하며 전신불사의 오롯한 전무출신의 삶으로 응한 그 일생은 교단 만대의 큰 사표가 될 것”이라고 심축했다.

은타원 서세인 원정사의 세수는 97세, 법랍 80년 11개월, 공부성적 정식출가위, 사업성적 정특등5호, 원성적 정특등으로 원불교 교단장으로 장례의식이 진행됐다. 종재식은 원기108년 5월 5일 중앙총부 반백년기념관에서 거행된다.

[2023년 3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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