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미술관 전관 개인전 ‘예당 한소윤 서화전’ 감동과 화제
16.8m 대작 ‘흥타령’ 등 고전의 깊이와 한글의 가능성 선보여
한글의 매력은 ‘단순’과 ‘간결’, 궁체에는 아름다움의 힘

[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인사동은 물론 문화예술계의 화제인 예당 한소윤 작가(법명 정란․김세연 교무 정토)의 개인전. 백악미술관 전관에서 3월 16~22일 열린 ‘예당 한소윤 서화전’은 개관 직후부터 미디어와 SNS에 ‘놓치지 말아야하는 전시’로 언급됐다. 서예가 선비적이고 근엄한 느낌이라는 분별을 단숨에 뛰어넘는 이번 전시는 한글 고전의 깊이와 한글 서예의 무한한 가능성 선보였다는 평가다. 

‘놓치지 말아야하는 전시’로 꼽혀
이번 전시는 작가의 실력 뿐 아니라 소재 자체로도 화제였다. 한글이 민중의 문자로 퍼져나가던 당시 귀하게 쓰인 한글 고전 <음식디미방>, 소설 <장풍운전>, <소대성전>을 옮겨오거나, 민요 ‘사철가’와 가사 ‘봉선화가’ 등 우리 음악을 춤추듯 담아냈다. 오랜 필력을 가진 젊은 서예가의 작품들은 한글 고전의 지혜와 한글의 미학을 담고 관람객들을 맞았다. 

특히 발길과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은 ‘흥타령’. 가장 큰 사이즈의 화선지를 붙여 16.8m 길이로 써낸 대작으로, 미술관 긴 벽을 채우고도 자리가 모자라 코너를 돌았다. 이 위에서 춤을 추지 않았나 할 정도로 리듬감 넘치는 이 작품에는 사실 작가의 ‘팬심’이 들어있다.

“어느날 JTBC의 ‘팬텀싱어’를 봤는데, 그 중 소리꾼 고영열이 부른 ‘사철가’에 빠졌어요. 듣고 또 들으면서 ‘이걸로 작품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다 이 큰 작품을 하게됐죠. 숫제 팬심이 만든 작품입니다.”

인사동 백악미술관, 그것도 1~3층 전관 개인전은 서예가라면 누구나 바라지만, 그 권위와 명성에 걸맞기는 쉽지 않다. 작품도 다양해야 하고, 작가 자신의 성장도 이뤄내야 하며, 무엇보다도 갤러리를 수없이 오가며 모든 것을 ‘직접’ 조율해야 한다. 같은 서울에 있는 작가들에게도 쉽지 않은 규모. 스승이며 선후배 서예가들이 그에게 혀를 내두르는 이유다.

“백악미술관 전시를 마음먹으니 걸리는 게 많더라고요. 작품을 하기 위해서는 강의를 줄여야 하는데, 그러려니 생계와 중학생인 자녀가 걱정됐죠. 하지만 덕분에 더 간절하게 매달려서 한 것 같아요.” 

지난 반년 동안 그는 새벽 3시에 잠들어 아침 6시에 일어났다. 꼭 해야하는 강의 외에는 종일 작업실에 살았고, 자녀 하교에 맞춰 종이와 붓을 싸들고 집에 왔다. 잠도 쉼도 아깝고 치열했던 두 계절. 지칠 때면, 도반 정토들과 남편 김세연 교무의 한마디에 힘을 얻었다.

“정토 언니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정말 큰 힐링이었어요. 그땐 ‘언니들 덕분에 산다’고 했을 정도니까요. 또 힘들다고 하면 남편이 ‘그렇게 힘들면 내가 대신 써줄게!’ 해요. 헛웃음이 나오죠. 근데 그게 또 큰 위로가 됐어요.” 
 

봉선화가 41×76㎝
봉선화가 41×76㎝

내리 8시간 글씨 쓰던 초등학생
그는 11살에 첫 묵향을 맡았다. 부모님이 보기에 ‘하도 선머슴아 같아’ 먼저 피아노학원에 보냈는데 땡땡이치는 게 일상이었다. 차선책으로 서예학원에 보냈더니, 이번에는 아이가 당최 집에 오지 않았다. 가보면 교사며 간호사, 군인 등 어른들 사이에 앉아 글씨를 쓰고 있었다. “다들 귀여워해 주니 그게 좋아 맨날 갔다”는 그. 매일 학교가 끝나면 달려갔고, 쉬는 날이면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내리 썼다. 붓이 가르쳐준 건 서예 실력만이 아니었다. 몇 시간이고 앉아서 집중하는 ‘엉덩이 힘’도 그때 생겼다.

그 뒤로 원광대학교에서 서예학 학사부터 박사까지 내리 한 길. 스승으로부터 사사한 그는 이제 후학을 이끌며 한글 서예가이자 한글서예이론가로 우뚝 섰다. “그렇게나 맡았는데도 먹을 수 있다면 먹을 수 있을만큼 먹향이 좋다”는 그. 우직한 우리 시대 서예가요, 천상 ‘글씨꾼’ 아닌가 싶다.

“내 마음이 요란하면 붓이 순하게 가지 않아요. 붓은 속일 수 없죠. 그게 붓이 가진 힘입니다. 그래서 서예를 수양적인 예술이라 하는데, 이 점에서 원불교와 잘 맞죠. 스승님들 말씀처럼 화격보다 인격을 먼저 갖추고, 저 자신을 다듬는 데는 신앙이 큰 힘이  됩니다.”

그러고보니 이번 개인전에서 ‘일원상서원문’ 쓸 때는 좀 달랐다고 말하는 그. 작품을 할 때는 늘 음악을 잔잔히 트는데, 이번에는 왠지 고요하고 싶어 음악은 커녕 문도 다 닫았다. 그랬더니 마음도 글씨도 더 편해지더라는 것. 글씨는 중심과 기준을 잘 잡는 게 중요한데, 그 명확한 취사와 평정심, 적공의 힘도 글씨 하나하나에서 다시 배우고 공부한다.

화선지를 넘어 ‘세상’ 위로할 서예
“서예가로서, 그리고 한글서예이론가로서도 어깨가 무거워요. 서예 중 이론 하는 사람은 참 적고, 서예 이론 중 한글 하는 사람은 더 적거든요.”

한글서예이론 박사 중 가장 젊은 한 작가. 세계가 K-컬처를 통해 K-문자에도 관심을 두는 이때, 그가 말하는 한글의 매력은 뭘까. “한글은 조형적으로 단순하고 간결해요. 또 예쁜 것을 보면 누구나 좋아하는데, 한글은 아름다움도 큰 힘이죠. 특히 궁체는 볼 때도 쓸 때도 늘 그 아름다움에 감탄해요.”

허나 그의 꿈은 미학에만 머물지 않는다. 뱅크시(Banksy)처럼 사회적 메시지를 담으면서도 의미와 재치를 갖춘 작품을 하고 싶은 것. 전쟁으로 무너진 벽에 평화로웠던 일상과 활기차게 운동하는 어린이를 그린 뱅크시처럼, 서예 역시 화선지를 넘어 거리로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시대의 아픔을 위로하며, 공감할 수 있는 사회문화예술로서의 서예. 그의 손에 어린 온기가 얼마나 따뜻한가. 그 마음의 붓이 세상을 품을 날이 머지 않았다.

[2023년 3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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