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귀도 교도,
원불교신문사에 언론문화 발전기금 전달
구로교당 창립유공인, 제5회 감찰원 특별미행상 ‘법규준수상’ 수상

이귀도 교도.
이귀도 교도.

평생 원불교의 발전을 위해 마음을 나눠온 숨은 공덕주의 마지막 정재가 3월 20일 원불교신문사로 전달됐다. 정재를 희사한 이는 지난 2월 11일 열반한 이귀도 교도(향년 90세). 

이번 희사는 이 교도가 열반을 앞두고 “내 앞으로 나온 기초연금이 있을 텐데, 그 돈을 한 푼도 남기지 말고 그대로 공가(公家)에 써달라”는 유언을 유현정·유현실 원로교무에게 남긴 데서 이뤄졌다.

이 교도는 구로교당 창립유공인으로, 원기48년(1963) 남원교당에서 입교해 법명을 받은 후 ‘지금부터 내 갈 길은 오직 소태산 대종사께서 밝혀주신 법을 따라 신앙생활 하는 것’이라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유현정 원로교무는 “이 교도님은 원기50년(1965) 생활 터전을 서울 구로동으로 옮긴 후 원불교 교당을 찾아다니던 중 ‘용산에 원불교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교당(당시 용산교당)에 찾아왔는데, 교당을 다시 만난 것이 너무 반가워서 간판을 붙잡고 울었다고 한다”며 “당시 구로동에서 서울교당은 버스로 2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였는데, 5년간 무결석상과 4종의무이행상을 수상할 정도로 교당 생활에 최선을 다하신 분”이라고 전했다. 유 원로교무와 이 교도의 인연은 이때 비롯됐다.
 

당시 구로에서 채소도매장사를 하던 이 교도는 구로동에 교당 설립을 염원하며 서울교당에 출장법회를 요청, 원기58년(1973) 서울교당의 연원으로 구로교당이 창립되는 데 기여했다. 

원기70년(1985)부터는 중앙총부 옆에서 공부하겠다는 서원으로 북일교당으로 옮겨 주무와 단장 등으로 역할 하다가, “사가생활을 놓고 공가생활을 하고 싶다”며 허허벌판이던 초창기 원광상록원에 입주해 부군(故 한계원)과 함께 길을 내고 밭을 일구는 등 원광상록원의 자립 기반을 다졌다. 원기78년(1993)년에는 제5회 감찰원 특별미행상 ‘법규준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원기90년(2005) 원광효도마을 수양의집으로 거처를 옮긴 이 교도는 3년 전부터 익산원광효도요양병원에서 입원치료하던 중 열반에 들었다.

유현정·유현실 원로교무는 “이 교도님은 다니는 교당마다 주무, 순교 등의 역할로 공가 살림에 온통 바치는 삶을 살아왔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중국교화를 위해 5천만원, 열반을 앞두고는 1천 5백만원을 교단사업 곳곳에 흔쾌히 희사한 바 있다”며 “누가 알아주든 몰라주든, 또 남이 무시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오직 이 법으로 마음을 다지며 공부, 사업, 기도로 일관되게 생활한 공도자”라고 소개했다. 또 “원불교를 세상에 알리고 전하는 역할을 담당한 원불교신문사가 ‘원불교를 만난 기쁨’ 속에서 살아온 이 교도님의 공덕을 잘 이어가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원불교신문사는 정재에 담긴 뜻이 널리 미칠 수 있는 기획 지면 등을 준비해 선보일 예정이다.
 

[2023년 3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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