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온 나무 기억하세요? 이 나무를 보러 하루에 1천명이 왔어요. 뭘 공부해서 알고 오는 게 아니라, 직접 보고 사진찍으러 멀리서도 옵니다. 이제는 건물 하나, 조형물 하나도 SNS를 타고 핫플이 되는 세상입니다. 그럼 우리도 생각해봐야죠. 비교도들이 익산성지에 온다면, 과연 소태산대종사나 교사를 알고 올까요? 성지에서 무엇을, 어떤 이야기로 내보일지 생각해야죠.”

기자의 집요한 질문에 어렵게 입을 뗀 이 사람, 외식․관광과 축제 마케팅을 이끌어온  김윤 교수(법명 호상․경장교당 교도회장)다. 3년 넘는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 관광과 축제가 다시 살아나는 가운데, 그의 조언은 가장 전문적이면서도 교단을 향한 애정이 담겼다.
 

1년에 800여 개의 축제 열리는 나라
그가 자문과 평가위원 등으로 활동했던 현장을 다 헤아리기 어렵다. 가깝게는 이천도자기축제와 이천쌀문화축제 등이 있으며, 전국체전, 평창올림픽, 여수세계박람회, 경기도자세계비엔날레 등에도 그의 손이 닿았다. 특히 한국관광공사와 경기도 문화관광축제 등에서는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좋은 축제를 선정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축제를 하는데 기획서를 쓰거나 연구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축제가 수준이 높아지고 늘어나면서 1년에 800여 개의 축제가 열리는 나라가 됐죠.”

코로나19 이전에는 매일 2개 이상의 축제가 열리던 대한민국이 다시 기지개를 펴는 지금 꼭 그에게 들어야 하는 이야기. 좋은 축제란 무엇인가.

“들여다 보면 크게 두 가지예요. 역할과 예산을 여기저기 나눠준 축제와 전문가들이 전체적인 플랜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간 경우죠. 당연히 후자가 더 많은 관람객과 영향력을 만듭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수준이 그만큼 높아요.”

‘신심이나 희생이 아니라, 전문성으로 해야할 일’이라고 딱 잘라 말하는 그. 다만 제대로 된 축제나 관광상품의 파워는 상상 그 이상이라 조언한다. 좋으면, 산을 넘고 강을 건너서라도 모여드는 세상인 것.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조각조각 나눠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투자가 필요하다. 

그도 한 때는 논문 등 자료를 한아름씩 싸들고 중앙총부를 찾거나, 여러 질문에 정성을 다해 답하기도 했다. 허나 그동안 세상이 바뀌니 ‘판’도 달라졌고, 그도 은퇴를 앞둔 노(老)교수가 됐다.
 

외식․관광․축제 마케팅 권위자,
대한민국 축제의 산증인

젊은 세대 이해한 교화,
시대 변화에 맞춘 축제 필요 

우리의 교화나 축제는 10년 전과 다른가?
“세상이 얼마나 변했냐면요, 기숙사 사감들이 ‘3년을 코로나 시대에 살아온 학생들이 이상하다’고 해요. 예전에는 복귀 시각을 넘겨서 문제였는데 이제는 밖을 안 나가서 걱정이라고요. 고등학교 시절 내내 마스크 쓰고 자란 세대들은 비사회적이고 수동적입니다. 이렇게 세상이 변했는데, 우리의 청소년교화나 축제는 10년전과 얼마나 달라졌나 돌아봐야죠.”

몇 가지 조언을 더 청했더니 그가 ‘맑고 밝고 훈훈하게’를 꼽으며 말했다.  뜻도 좋고 어감도 좋지만 지금 시대에서는 너무 길다는 것. ‘마음공부’에 대해서는, ‘~하자’, ‘~해야한다’ 같아 어려운 느낌이라고 했다. 게다가 너무나 많은 종교와 마음 관련 기관에서 갖다 쓰는 표현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르치는 느낌이 아니라, ‘원불교가 추구하는 가치관’이나 ‘원불교에 오면 가질 수 있는 상태’를 담는 것을 제안한다. 이 말에 기자는 ‘마음낙원’을 떠올렸다.

“원음방송이 정말 영향력이 큰데, 활용에 대해선 좀 아쉬워요. TV 프로그램이 대체로 정적이라 원불교도 그렇게 보일 수 있거든요. 라디오에 나오는 가수들로 ‘보이는 라디오’를 하거나 다양한 스타강사를 키워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요즘은 1분 안쪽의 짧은 영상(릴스, 쇼츠) 시대라 포인트만 잘라 내보내는 것도 좋죠.”
 

김윤 교수와 그의 아내 황은상 교도.
김윤 교수와 그의 아내 황은상 교도.

은퇴 후 , 아내 아침 차려주기와 자급자족
교단과의 인연은 어떨까. 특이하게도, 그는 세 번만에 이 회상에 깃들었다. 

“초등학교때 아버지 발령으로 1년 동안 임실에 살았어요. 그때 엄마 따라 교당에 갔는데 멋진 한옥집에 소나무가 있었고, 그 위에 학이 많던 게 생각납니다. 두 번째 인연은 남성고등학교 시절, 군대에서 순직한 형의 천도재였습니다.”

그로부터 그는 한참이 지나 비로소 세 번째 걸음을 하게 된다. 어쩌면 ‘삼고초려’ 같은 ‘삼고교당’. 결혼도 하고, 아이 둘까지 얻은 후였다. 일도 잘 안 풀리고 가정사도 요란하자 부부가 함께 종교를 가져보자고 했고, 처음에는 성당을 찾아갔다.

“성당을 오가는데, 아내(황은상 교도) 얼굴이 그닥 좋지 않았어요. 억지로 오는 느낌이랄까요. 그때 사촌누님(조덕운 교도)이 경장교당으로 이끌었습니다. 어영부영 좀 다니다 보니 하필 그때 피아노 반주자가 비더군요. 마침 피아노 전공인 아내가 그 자리를 맡게 됐죠.”

그는 아내의 행복한 얼굴을 보며 교당에 빠르게 마음 붙였다. 아내는 반주자로, 자신은 합창단원으로 함께 한 군산원음합창단도 좋은 계기였다. 매주 연습에 3040 젊은 부부 40~50명이 모였다.  합창도 합창이었지만 함께 공부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시민문화회관에서 단독공연도 열었고, 군산 4대종교 합창제에도 나갔다. 그가 “그 인연들 다시 다 만나고 싶다”며 빙그레 웃는다. 

“4년 전 교도회장을 맡으며 어깨가 무거워졌어요. 다가올 경장교당 40년도 준비하고, 수요공부방, 등산동호회 등 코로나19 이전의 활동도 살려가고 있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퇴직 후 일상은 무엇일까. 다른 건 몰라도 두 가지는 꼭 하고 싶단다. 매일 아내에게 아침 식사를 차려주는 것과 마당 텃밭 농사로 자급자족하는 것. 
은퇴 후가 더 재밌을 그의 인생 다음 장이 퍽 궁금하다.

[2023년 4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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