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학 교구장
황성학 교구장

[원불교신문=황성학 교구장] 4월은 원불교의 최대 경축일인 대각개교절이 있는 달이다. 대각개교절은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과 원불교의 개교와 모든 구성원들의 공동생일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노대종교인 불교나 기독교에서는 성탄절을 가장 크게 경축하고 있는데 원불교에서는 ‘왜 성자의 오신 날은 크게 기념하지 않고 소태산 대종사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날을 가장 큰 경축일로 기념하는가’다. 

나는 그 이유를 선후천의 ‘성자관의 차이’ 때문이라고 본다. 과거 선천(先天)시대의 성자들은 절대권위의 유일(唯一)한 성자였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중생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성자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어서는 안 되었다. 선천시대의 성자들은 이 세상에 올 때도 이 세상을 떠날 때도 우리와는 근본부터가 다른 위대한 성자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오신 것 자체가 우리들에게는 큰 축복이고 영광인 것이었다. 

나의 이러한 견해와 같은 생각을 성서신학의 1인자 정양모 신부(다석학회장)도 <중앙일보>(2020년 4월 23일자) 백성호의 현문우답에서 밝힌 바 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 그리스도는 동정녀의 몸을 빌려서 왔다고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석가모니 부처님은 마야 부인의 옆구리를 통하여 태어났으며, 예수께서는 3일 만에 승천했고 석가모니 부처님은 열반 후 가섭이 늦게 도착하자 관 밖으로 발을 내보였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들은 어두운 시대 중생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귀의케하여 마음의 평안을 얻게하는 데 긍정적 역할도 했다. 그러나 대산종사께서는 “과거의 성자들이 모두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특별한 행적으로 출생하심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본의 아니게 후대 성자들이 근본적으로 나올 수 없도록 그 앞길을 막으신 점이 없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면 후천개벽시대의 성자상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개벽시대는 크게 한판이 뒤바뀌는 세상이다. 선천시대는 어두운 시대, 차별의 시대였다면 후천시대는 밝은시대, 평등시대로 대별된다. 그러므로 후천개벽시대는 권위와 차별이 없어지는 사회이기 때문에 성자상 또한 우리 일반 대중과 특별히 달라야 할 이유가 없다.

후천개벽시대의 성자인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당신의 출생을 신비스럽게 기록하는 것을 철저히 금기시했다고 한다. 실지로 <원불교교사>에는 소태산 대종사의 탄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대종사의 성(姓)은 박(朴)씨요, 이름은 중빈(重彬)이시오, 호는 소태산(少太山)이시니, 원기 전 25년 1891년 음 3월 27일에 한반도의 서남해안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 영촌마을에서 탄생하시어 이웃마을 구호동에서 성장하시었다. 부친은 박회경이시오, 모친은 유정천이시며 신라 시조왕 박혁거세의 후예이시다.’ 
 

소태산 대종사께서 대각 후
당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지 않은 것은
뒤를 이어 수많은 불보살이 배출될 수 있도록
그 길을 활짝 열어주신
대자대비심의 발로라 할 수 있다.

너무나도 평범한 기록이다. 후천개벽시대는 성자라고 해서 특별히 다르게 오고 특별히 다르게 가지 않는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구원겁래의 서원으로 이 세상에 오셨지만 일반사람들과 특별히 다르게 오지 않았다. 우리의 이웃집 아저씨와 같이 평범하게 오셨다가 가실 때도 평범하게 가셨다. 성인과 중생은 오실 때부터 그 종자가 다르지 않다. 그러기 때문에 과거 부처님도 일체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하셨다(一切衆生皆有佛性). 누구나 불성을 회복하면 부처가 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중생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후천개벽시대에는 성자의 오심이(聖誕)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깨달음(大覺)이 중요하게 된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평범하게 왔지만 구도의 정성을 놓지 않고 정진하고 적공해서 대각(大覺)을 이뤘다. 이 대각의 의미는 소태산 대종사의 개인적 깨달음이지만, 우리 모두의 깨달음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에게 ‘누구나 불성을 회복하면 대각을 할 수 있고 여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십대 후반에 처음 원불교를 접했을 때 소태산 대종사께서 특별한 가문에서 태어나시거나 특별한 배움이 없으셨는데도 대각을 하셨다는 내용은 나에게 큰 용기와 희망이 됐다. ‘나도 열심히 하면 도를 깨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은 우리 모든 중생들의 축복이며 희망이다. 

대각의 달에 우리가 깊이 생각해볼 또 하나의 주제는 ‘신앙의 대상’에 관한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왜 당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지 않고 법신불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했을까? 일여래 천보살(一如來 千菩薩)로 대별되는 선천시대는 불상이나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상이나 성인의 영정사진 등이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분들은 하나같이 절대 유일하신 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여래 만보살(千如來 萬菩薩)의 후천개벽시대는 수많은 여래가 콩튀기듯 쏟아져 나오는 시기다. 이 시기에는 어느 특정인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순간, 그 분과 같은 분은 나올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소태산 대종사께서 대각 후 당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지 않은 것은 당신의 뒤를 이어 수많은 불보살이 배출될 수 있도록 그 길을 활짝 열어주신 대자대비심의 발로라 할 수 있다. 

원기 원년 음력 삼월 이십 육일에 대각을 이루시고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라고 했다. 이 대각 일성을 상징화하여 원기20년(1935) 총부 대각전에 법신불 일원상을 모신 것은 후천개벽시대의 신앙의 대상을 정형화함과 동시에 후천개벽시대의 주세성자인 소태산 대종사의 천여래 만보살의 꿈이 완성된 의미도 있다.

/대구경북교구

[2023년 4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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