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세정 교도.
두세정 교도.

[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원기79년(1994) 4월 7일. 입교하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입학식을 기다리며 가방을 안고 잠든 어린아이처럼, 그에게 그날은 ‘입교식’이기보다 ‘입학식’과 같았다. “원불교는 마음공부 하는 종교랬어요. 교무님께 처음 <원불교 교전>을 받아 공부하는데 얼마나 재밌던지….” 교복을 입으면 그 학교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되지 않던가. 처음 받은 교전이 그에게는 꼭 ‘교복’과 같아서 읽으면 읽을수록 ‘원불교인’이 되어감이 기뻤다. “원불교 공부가 나의 허전함을 채워준 것 같아요.” 공부에 대해 늘 허기짐을 느꼈던 두세정 교도(도안교당)은 그렇게 ‘원불교’라는 학교에서 ‘소태산 대종사’라는 스승을 만났다.

학창시절에도 공부하기를 좋아했던 두 교도. 하지만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 탓에 원하는 만큼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 “그 시절에 어른들은 ‘여자가 많이 배워서 어디다 쓰냐’고 하셨죠.”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여성 교무님들을 보게 됐다. “원 없이 공부하고, 주체적이고…부러웠던 것 같아요.” 

그로부터 몇십 년 후, 이사 온 동네에서 우연히 박지선 교무와 인연이 닿았고 그렇게 교당을 나가게 됐다. “공부를 하면서 천지보은이라는 것을 배웠어요. 그때부터 봉공 활동을 다녔는데 그게 그렇게 즐겁더라고요.” 태안 기름 봉사로 봉공 활동을 시작해, 봉공회장직까지 맡았던 그. ‘누군가를 도우러 가는 일’은 꼭 수학여행을 가는 것처럼 행복했다. 교무님에게 그 마음을 말했더니 그것이 곧 ‘감사생활’이라는 감정이라 했다. 

물론 그에게도 경계의 순간이 있었다. “옛날 같으면 원망스러웠을 텐데 하나도 안 밉더라고요.” 그저 ‘이게 다 업이구나’ 하니 끓던 속이 가라앉고, ‘내가 달게 받아야 할 일이지’ 하니 살아갈 힘이 다시금 저 아래서부터 솟아났다. “이게 다 나를 공부시켜준 원불교 덕(분)이고, 소태산 대종사님 덕(분)이지요.” 

두 교도는 여행을 갈 때도 교리공부와 감각감상, 일기를 챙긴다. “이렇게 (저승)갈 때까지 공부하면 이생에 많이 못 했던 공부, 다음 생에 전무출신 돼서 더 할 수 있겠지요?” 올해로 여든셋의 나이지만 모범생처럼 늘 공부길을 고쳐매는 그의 미소는 꼭 여고생처럼 싱그러움 그 자체다.

[2023년 4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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