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기쁨이 천지를 수놓았다.
잠잠하던 대자연이 다시 일어서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분주해졌으며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대지 위로 쏟아져 나왔다. 천지에 이처럼 복잡하고 분주한 달은 없을 것이다. 이때를 맞춰 새 시대 새 성자 소태산 대종사가 깨달음을 이뤘으니, 아마 대지의 기운과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될 무위자연의 시기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원불교의 4월은 그 어느 때보다 은혜롭고 기쁨이 가득하다. 

하지만 지금 세상, 물욕에 찌든 인간 중심의 사회는 물질적으로 풍족해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오히려 마음의 가난은 깊어져 원망의 병이 점점 도지고 있다. 풍요 속의 가난은 사람들을 더 깊은 시름에 빠트리고, 원망병은 전염성 강한 바이러스가 되어 사람들을 고통의 바다로 몰아넣는다. 이는 주고받는 순수의 관계가 아닌 빼앗고 뺏기는 역수의 관계가 원인이기도 하다. 물질에 눈을 뜬 인간의 본성은 늘 남의 불행을 먹고 사는 일에 익숙해지고 어느 순간 그걸 당연시함으로 인해 모질어졌다. 그래서 4월의 성자는 또 슬픔에 가득 잠긴다.

지금 지구촌 곳곳은 긴장이 완연하다. 신냉전시대로 일컬어지는 강대국 간의 힘겨루기가 자칫 인류를 파국으로 치닫게 하지 않을지 두려운 수준이다. 여기에 자국의 이익을 위해 살상을 멈추지 않는 참혹함이 우리를 우려스럽게 한다. 한 나라를 이끌어 감에 있어서도 지도자들의 권력욕은 서로를 냉대함으로써 국민들을 무기로 삼는 분열과 혼란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이런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인들 어찌 온전할까. 서로를 냉소함으로써 자기 출세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잘못된 가치관이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이 잘못을 바로잡아야 하는 종교인들 역시 배금주의를 숭상함으로써 신뢰를 잃어 많은 사람들을 진리적 냉담자로 만듦으로써 길을 잃었다.

정신을 차려보면, 우리 원불교 역시 지금 어려움에 처해 있다. 장기간의 교화침체가 자신감을 잃게 했고, 우리끼리의 온정주의가 자칫 불의와 타협함으로 인해 서로간의 불신을 조장했으며, 종교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구도와 구원에 대한 관심을 세속적 논리로 채움으로 인해 스스로를 비하하는 일이 파다해졌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모든 책임을 타인에게 미뤄버리는 습관이 일상화 된다는 것이다. 신과 분과 의와 성이 설 자리를 불신과 탐욕과 나와 우로 채운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래서 지금은 천불만성의 주인공이 나로부터 비롯됨을 명심해야 할 때다. 처처불상, 모두가 부처님이라 했으니 만인부처의 시대를 우리는 맞이하고 있다. 그러니 이젠 우리가 소태산이 되어 청년 소태산의 꿈을 이뤄가야겠다. 오지 않을 미륵을 기다리듯, 언제까지 80년 전에 떠난 소태산만 기다리며 책임을 미룰 것인가. 대각개교절이다.

[2023년 4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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